딸의 도리와 며느리의 의무 사이

딸의 도리와 며느리의 의무 사이, 나는 기꺼이 '무심'을 선택했다

by 박지숙

살면서 '착한 딸'이라는 프레임은 때로 족쇄가 된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의 즐거움을 위해 푼돈을 모아 가져다드렸지만, 정작 기숙사를 나와 원룸을 구해야 할 때 내 손에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혼할 때 들어온 축의금조차 내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자식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내가 일하는 병원에 부모님을 입원시켜 인공관절 수술부터 대장암 수술까지 지극정성으로 살펴드렸다.

병원비를 형제들이 나누어 냈을지언정, 입퇴원 절차를 밟고 예후를 살피며 온 마음을 쏟아부은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 헌신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부모님은 몸이 조금만 아파도 가장 먼저 나를 찾았다. 전문가인 딸이 곁에 있다는 안도감은, 반대로 딸인 나에게는 묵직한 '부담감'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 부담감이 임계점을 넘은 것은 내 삶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시어머니의 치매와 방광암이 겹치며 나의 일상은 지옥으로 변했다. 입퇴원을 반복하는 시어머니의 간병을 도맡으며 나는 심신이 완전히 소진(Burn-out)되었다. 하필 그때, 나의 엄마도 몹시 아팠다. 평소라면 열 일을 제쳐두고 달려갔겠지만, 그때의 나는 엄마의 아픔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나는 바쁜 척, 무관심한 척하며 친정의 연락을 외면했다. 누군가는 비정하다 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내가 살기 위한 처절한 '방어기제'였다. 나 하나 건사하기 힘든 폭풍 속에서 친정 엄마의 짐까지 짊어지는 것은 나를 벼랑 끝으로 미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돈'이라는 현실적인 잣대가 나를 더 답답하게 만든다.

남편은 시어머니의 병원비를 아들인 본인이 내야 한다며 하나뿐인 시누이에게는 돈을 받지 않았다. 그 논리는 그대로 우리 친정에도 적용되었다. "처가댁 병원비는 아들인 처남이 내야지." 남편의 그 확고한 프레임은 역설적이게도 내게 묘한 해방감을 주었다. 나 또한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너무나 버거웠기에 남편의 그 뜻에 슬쩍 기대어 친정의 병원비 부담을 모른 척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질문이 멈추지 않는다. '내가 정말 잘못하고 있는 걸까? 딸로서 이래도 되는 걸까?'

계속해서 내가 책임지다 보면 결국 내가 먼저 쓰러질 것 같은 공포, 그리고 남편이 친정에 조금도 보태려 하지 않는 서운함과 단호함이 뒤섞여 가슴을 답답하게 조여온다.


나는 이제 나 자신에게 말해주려 한다. 이 답답함은 내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과하게 애써왔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성인군자가 아니다. 무한한 에너지를 가진 기계도 아니다. 시댁의 간병과 친정의 부양 사이에서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용량은 정해져 있다. 내가 지금 친정에 거리를 두는 것은 부모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내 가정을 지키고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선을 긋는 과정이다.

"아들이 해야 한다"는 남편의 말은 차갑지만, 한편으로는 딸인 나를 영원한 희생의 굴레에서 해방해 주는 면죄부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면죄부를 염치없게라도 붙잡고 싶다. 그래야만 남은 내 인생을 소진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도리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옥죄는 일을 이제는 멈추고 싶다. 내가 행복해야 부모도, 자식도 돌볼 수 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이제는 실천해 보려 한다. 비록 마음 한편이 무겁더라도, 나는 오늘 나를 위해 조금 더 '이기적인 무심함'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이 긴 터널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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