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사람의 손
어느 날, 한 어르신의 보호자가
입소비를 결제하러 요양원에 왔다.
다른 보호자들은 가족과 함께
일주일에 한두 번씩 쉼 없이 찾아오지만
이 보호자는 어르신을 맡긴 뒤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입소비를 결제하고
누가 부를까 황급히 자리를 떠나는 사람.
그날은 용기를 내어 물었다.
“어르신, 안 보고 가세요?”
보호자는 “잘 있겠지요 뭐.”
짧게 말하며 그냥 가려 했다.
나는 돌아서는 그의 등을 향해 덧붙였다.
어르신은 식사도 잘하시고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시며
요즘은 꽤 즐겁게 지내고 계신다고.
그 말에 보호자는 잠시 멈춰 서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그리고 다시 돌아섰다.
그때 보였다.
손톱 위, 손가락 끝에
무수히 박혀 있는 까만 점들.
“보호자님, 손은 왜 그러세요?”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답답해서 바늘로 손을 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눈이 붉어졌다.
남편이 얼마나 무심했는지,
밖에서는 그렇게 좋은 사람으로 살았지만
집에서는 늘 말이 없고
마음은 더 없었다고 했다.
만 예순셋.
아직 너무 이른 나이에
남편은 치매에 걸려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게 되었다.
아이들 때문에 헤어질 수 없었고
그 많은 시간, 가슴을 치며 버텼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남편을 보지 않고 가는 건
자신이 할 수 있는
아주 소심한 복수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입소 당시의 어르신이 떠올랐다.
텅 빈 눈빛, 덥수룩한 수염,
손목에 선명하게 남아 있던 끈 자국.
요양원의 돌봄 속에서
어르신은 달라졌다.
깨끗한 옷을 입고
따뜻한 식사를 하며
사람의 시선을 받는 얼굴로 돌아왔다.
눈빛도 조금은 편안해졌다.
하지만 가족의 시간은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있었다.
잠깐만이라도 보고 가시라 했을 때
아내는 어르신 앞에 섰다.
그리고 쌓아두었던 말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내가 누군지 알아?”
어르신은 아내의 이름을 말했다.
알아본 것이다.
하지만 그 눈에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이 함께 담겨 있었다.
아내는 깊게 한숨을 쉬고
아무 말 없이 돌아갔다.
그날 이후로
나는 종종 그 보호자의 손을 떠올린다.
남편의 손이 아니라
바늘로 스스로를 찔러야만
숨이 트이던 아내의 손을.
치매는 한 사람의 기억을 지워가지만
그 곁에서 버텨온 사람의 시간은
지워주지 않는다.
요양원은 어르신을 돌보는 곳이지만
가끔은 가족의 상처가
훨씬 늦게 도착한다.
손가락의 바늘자국처럼
사랑도, 원망도, 책임도
아주 작은 구멍으로 남아
아직 아물지 못한 채
조용히 피를 흘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