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목말라있다
목말라있었다. 지식에 특히나. 대가가 그린 작품을 보고 평가 아닌 감상을 제대로 하고 싶었기 때문에 지식과 지혜가 필요했다. 그래서 매일 미술사에 관한 내용을 파악하면서 대가들의 그림에 대한 깊숙한 내용을 파악하고 싶었다. 다시 만일 내가 피렌체 우피치 박물관에 가서 그 작품들은 본다면, 그 작품에 대한 이해도와 감상평이 더 깊어져있기를 바랐다. 내가 한번도 가지 않은 박물관도 마찬가지이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수백장, 수천장의 그림과 조각상들을 보면서 화가의 이름도 알고 싶다. 그리고 그 시대의 풍과 그 시대에 풍미했던 분위기 등 개인적인 동향까지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집중해서 암기하려고 노력했고 결국에는 나의 이기심과 지식에 대한 열망이 파멸까지 이르고 말았다. 이는 내가 감상을 위한 것이 아닌 그저 그림에 대한 지식의 재확인을 하고 싶었던 모양새였다. 그래서 나는 또 다시 책을 첫장부터 펼쳐서 읽었다. 이번에는 그림감상과 화가의 이름을 암기하는 대신 그림을 위주로 살펴보고 책의 설명을 하나하나 음미했다.
음미하고 나서 또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시대의 풍이 무엇일지. 들레쿠루아? 오히려 외설적인 클림트? 아니면 로코코 양식의 그림들과 신고전주의의 화풍이 나에게 더 잘 들어맞는건가? 그러다가 결국에는 파멸의 현대시대까지 오면서 초현실주의의 그림을 가장 좋아한다는 점이 상기되었다. 고등학생 때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의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들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뒤샹의 샘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들면 들수록 결국 예술의 경계가 흐트러지면서 뒤샹의 샘 또한 흥미로웠다. 나는 계속해서 목말라있었다.
세계사를 훑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되었다. 음악사도 궁금해지고 결국에는 세상의 전세가 어떻게 흘러왔는지까지 궁금증이 퍼졌다. 과거 고대 이집트와 황화문명, 그리고 유럽의 엎치락뒤치락의 로마전세와 비잔틴 미술까지 모두 궁금해졌고 결국에는 또 다시 파멸의 길에 오르게 되었다. 나는 수없는 책들을 검색해서 찾았다. 결국에는 모든 것을 섭렵하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교육때 열심히 암기했으면 되었을 것인데 그 책망이 10년이 지나서 후회로 다가왔으니 얼마나 서러운가. 그리고 나는 또 목 말랐다.
세계사 동양사 그리고 철학까지 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생각했던 모든 것들과 고전 문학사들의 분위기 모든 시대에 살았던 시민 하나하나의 삶이 어느정도의 고달픔으로 아파왔는지 말이다. 그 당시에 정신적인 문제가 있더라도 마녀사냥을 통해서 죽음으로 이어졌던 사회도 있었고, 사람을 고치기 위해서 가두기도 했으니 말이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 또한 명확하게 칼 같았기에 마치 북한의 획처럼 그어서 정치적으로도 싸웠으니 말이다. 나는 그런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기에 인종마다의 다른, 계급마다의 다른 세계가 어떻게 펼쳐졌을지 궁금했다. 그중 네덜란드의 유전병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도 궁금하다. 이젠 궁금증이 너무 많아서 샐 수 없을 지경이다.
경우에 따라서 글이 난잡하게 표현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이 아마 이 글이 아닐까 싶다. 나의 목마름은 끊임없고 현대까지 내려와서 결국에는 표현되는 그림과 음악과 예술의 경계는 다 모호해져버렸다. 그러니 명확했던 시대의 아픔을 대신해서 공부하고 싶다. 명확함에서 모호함으로 변한 2024년. 우리가 상업적으로 흥행하기 바라는 영화에 예술적인 가미가 들어가기를 원하듯이(그것은 용광로에 모든 것을 넣어서 녹여버린 혼합물)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의 삶이 여유가 있는데다가 현실적인 문제를 싸우는 것을 원하는 것 같다. 현실의 예술품이 되기를 바라는 사회로 빗어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그 예술품으로 다가가기 위해 목마른 것 같다. 오늘도 책을 읽고 오늘도 영화를 보며 오늘도 전시회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