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살

by 후드 입은 코끼리

살다 보니 나는 목수로 지낸 지 어엿 32년이 되었다.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상업학교에서 공부하며 기술을 배워 남들보다 빠르게 자리를 잡았지만, 지금은 그 빠른 자리매김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화려했던 20대 시절, 돈을 버는 대로 족족 쓰면서도 저축을 해도 남아돌았다. 건당으로 큰 액수의 돈을 받았고, 손재주가 있다는 이유로 소문이 나서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클럽이나 모임을 나가 한턱 쏘기 바빴다. 취준생이었던 친구들에게 나는 단비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그들은 언젠가는 나처럼 살 것이라 다짐하며 지냈다고 이제야 터놓고 말한다.

그런데 지금은 전세가 역전되었다. 목수인 나는 나이가 지긋이 들어 손가락 떨림이 심해지고, 손재주도 사라져 가고 있다. 나를 찾는 사람들은 줄어들었고,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없어지면서 손가락만 빨며 지내는 일이 많아졌다.

친구들은 그 사이에 대기업에 취직해 번듯하게 살고 있다. 결국 원하는 서울의 30평대 아파트를 장만하고,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느라 뒷바라지하느라 바쁜 모양이다. 나는 자식이 없다. 아내는 있지만, 그래도 자식은 없다. 둘이서 오순도순 살자고 했지만, 지금 와서 후회하고 있다. 자식이 있었더라면 금슬이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서로 앙숙으로 지낸 지 어엿 10년. 이제는 같이 사는 것이 지긋지긋하다며 아내도 오전이면 밥벌이를 하러 나갔다가 저녁 늦게 잠만 자러 들어온다. 우리는 그렇게 한 침대에서 자는 것 말고는 만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대화도 없었다. 서로 아침도 안 먹겠다고 다짐하며 멀어지고 있는 우리를 보면 이혼이 맞는 것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든다. 하지만 나는 혼자 살기 외로워 차마 이혼이라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아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결국 우리는 서로 부딪치는 것 하나라도 있어서 살아가는 중이다.

50살이 되면 지천명이 된다고 했는데, 나는 왜 세상의 이치를 모르겠다. 목수일을 하며 많은 인테리어 시공을 다녔고, 하루 밥벌이를 해냈지만, 이제는 늙어서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나의 존재감이 세상 속에서 지워지는 것만 같다. 나는 어떻게 해야 돈을 벌며 살지 고민이다. 이른바 '2잡'을 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찰흙 같은 어둠 속에서 밝은 조명 하나 없이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그러다가 새해 전날, 친구들에게 새해 인사를 전하면서 1월 5일에 다들 한 살씩 더 먹고 만나자는 모임 약속이 잡혔다. 나가기는 싫었지만, 근황을 모른 지 5년이 넘었다. 총 5명의 친구들인데, 그들의 인생이 나처럼 어둡고 녹슬었을지 궁금해서 나갈 수밖에 없었다.

신림동의 한 고깃집에 들어갔다. 삼겹살을 숯불에 굽는 냄새가 벽까지 배어 있던 허름한 작은 집이었다. 양복을 번듯하게 입은 두 친구와 배가 나오지 않은 근육질의 친구들까지, 다들 화기애애하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

"동구 왔다!"

그들은 나를 보고 벌떡 일어나 껴안고 잘 있었냐고 물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배가 나오고 찢어진 자주색 니트를 입은 모습으로 확연히 대비되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보고 웃으며 동구는 안 본 새 늙었다며 놀리기도 했다. 그 말이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다. 5년이라는 시간은 주름이 하나둘 더 생기기에 충분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들은 팽팽하게 보톡스를 맞은 듯한 반듯한 얼굴들에 명품 시계를 하나씩 차고 있었다. 나를 반갑게 맞이하며 자리에 안내해 주었다.

다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느라 바빴지만, 무엇보다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긴 했다. 그러나 물어보기 서툴러 다들 눈치만 보고 있었다. 한 친구는 지금 자식이 고2라 곧 고3 준비를 위해 돈이 한 달에 200만 원은 족히 든다며 등골이 휜다고 했지만, 얼굴은 밝았다. 자식이 전교권에서 놀고 있다며, 아이가 눈 밑에 다크서클이 있어도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자식이 주는 행복을 받아먹으며 살고 있었다.

다른 친구는 10년 늦깎이로 의사가 되어 이제서야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 가장 부유해 보였다. 시작은 늦었지만, 결국 창대한 꿈을 성취해서 그런지 눈빛이 살아 있었다. 그의 전공은 성형외과로, 매일 수술하느라 바쁘다고 했다. 그는 건마다 받는 수입을 자랑하며 이야기했다.

그들의 직장 이야기와 자식 이야기, 아내 이야기까지 반찬 삼아 이야기하며 소주도 한 잔씩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가 나에게 불쑥 골프를 치냐고 물었다. 그러자 다들 숙연해졌다. 이상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나는 골프 같은 거 안 쳐. 하도 일이 많아서. 하하."

"그렇지, 일이 많으면 라운딩 다니기 힘들어."

누군가 계속 눈치를 줬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끼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적어도 만나서 골프를 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여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집에 돌아와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니 그들의 놀이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나는 분노했지만, 그들이 말한 대로 놀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한 달에 30만 원을 사용하며 사는 나에게 골프는 사치였다. 결국 눈물이 한 줄기 떨어졌다. 어릴 적 놀이터에서 놀아주지 않는 형아들을 부러워하며 쳐다봤던 적이 있었는데, 50살에도 같은 기분을 느끼다니... 나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잠에 들었다. 그렇게 나는 지천명에 도달하지 못한 채 잠에 빠졌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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