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수가 들어섰다고 이렇게 파란만장한 삶을 살 줄이야. 사실 내 잘못이 절반 이상이긴 하다. 그래도 그렇지, 이런 식으로 나에게 뒷통수를 가격할 줄이야. 그래도 아이를 위해 우리는 모든 것을 묵인하기로 했다. 나는 내 잘못이 있어서, 그리고 그 사람도 잘못이 있어서 우리는 서로 죄인이어서 그렇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하느님의 자녀는 원래 죄인이기 때문에.
나는 20대 초반에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초반에는 어렸던지라 아니면 세상 물정을 몰랐다고 해야 할까. 나는 팀장님과 불륜을 저질렀다. 그 당시에는 카리스마 있고 나이가 많은 멋진 남성을 몰래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다가, 그것이 극도로 커지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 마음이 드러나게 되었다. 게다가 그 마음을 팀장님도 받아주었다. 우리는 시시콜콜하게 다른 직원들과 점심을 먹었지만, 식탁 밑에서는 발장난과 사랑의 눈빛을 보내느라 온갖 추태를 다 부렸다. 그러다 어느 날, 구청으로 팀장님의 아내가 우리 팀에 들어오더니 벌컥 화를 냈다. 사실 그렇게 화낼 일인지 몰랐다. 우리는 그저 순수한 사랑을 했을 뿐이었고, 그 아내가 그 사랑을 주지 못해서 벌어진 해프닝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몸도 섞지 않았다. 그저 탕비실에서 몰래 손을 잡아본 것이 다였다. 그런데도 나에게 많이 기울어진 팀장님은 내게 많은 업무적인 혜택을 주기 위해 조금씩 배려해 준 부분이 있었다. 그것이 소문이 나서, 다른 팀에 일하던 사모님이 알게 된 것이었다. 물증이 아닌 심증으로 나는 불륜녀로 찍히고 말았다.
20대 초반, 커뮤니티에서 난리가 났다. 별별 소문이 다 나기 시작하고, 내 신상은 온갖 곳으로 퍼져 대인기피증이 생겼다. 나는 누가 나를 알아볼까 봐 항상 캡모자를 쓰고 다녔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인사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도 몇 년이 지나자 사람들이 그 소문을 쉬쉬하게 되었고, 나 역시 마음이 단단해져 다시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20년을 일하다가 마흔 살이 되었다. 다른 친구들은 시집갈 때 나는 축의금을 보내느라 바빴다. 그리고 여행을 다니던 그 시기에 나는 혼자 돈을 꿋꿋이 모아 작은 빌라 하나를 매입했다. 부동산과 주식투자로 인해 조금씩 넉넉한 삶을 살 무렵이었다. 나는 소개팅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조금씩 마음이 봄바람처럼 설레기 시작했다. 나는 첫 소개팅 남자를 보자마자 반해버렸다. 그는 조금 못생기긴 했지만, 나와 웃음 코드가 너무 잘 맞았다. 그가 하는 말들은 대부분 옳았고, 나 역시 그 말에 동의하며 장단을 맞추다 보니 자연스레 사귀게 되었다. 3개월쯤 지나 그의 직업이 성형외과 의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잭팟이 터진 것이다. 못생긴 얼굴도 후광처럼 빛나 보이면서 얼른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제야 내 결혼 상대가 맞아떨어지는구나 싶었다. 더 이상 일을 생업처럼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남자친구를 더 사랑하게 되었고, 나는 혼전임신을 하게 되었다.
결혼식을 서둘러 준비했다. 2년간 사귀고 우리는 3개월 된 태아와 함께 버진로드를 걸었다. 시어머니는 못마땅해했지만,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는 극진히 나를 대접하며 용돈까지 주었다. 그때 회사 사람들의 얼굴은 온통 욱신거렸다. 저렇게 공무원이 신분 상승을 하다니, 아이를 인질 삼아 결혼하다니 하는 식의 말들이 오갔다. 그래도 나는 고급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린 것에 만족했다.
아이를 낳고 행복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불륜녀 타이틀에서 꽃뱀 타이틀로 옮겨갔지만, 내 삶은 호화로워졌다. 남편은 아들을 낳아줘서 고맙다며 명품을 선물해 주고, 유럽여행부터 미주 여행까지 함께 다녔다. 나는 조직에서 오래 일한 덕분에 눈치 보지 않고 휴가를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5년간 행복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어느 날, 남편 병원에 팀장님의 사모님이 찾아와 난동을 부렸다. 남편은 며칠 뒤에야 그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는 나에 대해 생각해 봤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며 별일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며칠 뒤 공무원 커뮤니티에서 나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며 분노를 삼켰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남편 앞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나는 정말 내가 그렇게 잘못했을지 몰라도, 그 낙인이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그러자 남편이 내 등을 두드리며 앞으로도 나를 믿고 살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고 울다가 잠들었다.
그날 저녁 이후로도 우리는 평소처럼 지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나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30살 연상의 사람과 말이다. 나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병원 간호사들이 "사모님"이랑 "두 번째 사모님"이라는 말을 번갈아 하며 입단속하는 걸 듣고 눈치채기 시작했다. 결국 여러 가지를 파헤쳐 본 끝에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48살, 그리고 우리 아들은 유치원에 다니는 6살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울음을 삼키며 회사에 나갔다. 회사는 아직 내 사생활을 모르는 듯했지만, 이 사실이 유포되면 나는 정신적으로 무너질 것만 같았다. 나는 도대체 왜 이렇게 힘든 삶을 살게 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자포자기 상태로 일을 이어갔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태연히 생활하다가, 아들을 위해 이혼은 바라지 않는다며 같이 잘해보자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남편의 외도 상대가 너무 궁금했다. 30살이나 나이 많은 그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면모로 내 남편을 꼬셨는지 알고 싶었다. 알고 보니 그 상대는 다름 아닌 나의 옛 팀장님의 사모님이었다. 그 사모님은 병원의 뒷조사를 핑계로 성형외과에 자주 드나들며 남편과 사담을 나누다 결국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남편 또한 "당신도 외도가 있었듯이 나도 외도 한 번쯤은 눈감아 달라"고 빌었다.
나는 49살이 되었고, 내 삶이 아홉수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아들을 위해서라도 이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무너지고 말았다. 회사를 그만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면서 방황했다. 이혼이 남들 말처럼 흠이 아니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너무 큰 흠처럼 느껴졌다. 남편에게 의존하다가 다시 독립하려니, 아이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모성애가 깊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아이 앞에서 약해지다 보니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런데도 아들은 언제나 내 편이었다. 동시에 자신의 아빠 편이기도 했다. 우리는 아들을 위해 죄인이 되기로 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죄인으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