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나의 우울증 시작은 오래전부터인 것 같다. 셀카를 찍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자신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에서 놀랐었는데 그때부터 우울증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예쁘고 밝고 명량한 성격을 가진 나였다. 근데 어느날, 정확하게는 기억나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5학년 초기였던 것 같다. 그때 당시에 왕따를 당하면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고 못생겼다고 생각했다. 그건 초등학교 때 남자얘들이 나를 주먹다짐하고 죽어라 팼던 기억과 욕설로 귀를 얼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후 나는 내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다. 모두가 말하는 "오크"가 손쉽게 셀카로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그 때 부터 나는 셀카를 찍기 두려웠다. 원래 나는 어렸을 적부터 독창적이고 화려하고 웃음을 잘 지었던 아이였는데 그럴수록 주위 남자얘들이 나를 주먹으로 팼다. 그 아픔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서 그 아이들을 만난다면 잘 살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악담을 퍼붓고 싶다. 그들이 나에게 준 상처가 20년이 지나도록 아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때 욕설을 배운 시기부터 나는 매일매일 샹년, 시발년, 개같은 년이라고 칭해졌다. 화장실에 불려가서 단체로 얘들이 나를 욕하면서 너 같은 벌레는 사라져도 된다는 식의 냉소적인 웃음으로 나를 대했다. 그렇게 나는 황당해하면서 웃음으로 무마하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나는 끝까지 웃는 캔디가 되고 싶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그들에게 상처를 받지 않은 척 노력했다. 담임도 그래서 내 상처를 몰랐고 하물며 가까운 엄마도 몰랐다.
그런데 지금 30살이 된 지금 회자해보면 그 때 내가 사과를 받았더라면 이렇게 아파하고 있지 않았을텐데 싶다. 그 20명 남짓하는 5학년, 6학년 남자얘들, 여자얘들 모두에게 잘 살고 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기도로 이 글을 전개하고 싶다.
누구나 독특하다. 그 이유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되고 절대로 기가 눌려서는 안된다. 내 시대에는 학교폭력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근데 지금보니 엄청난 일을 겪고 왔었구나를 알아차렸다. 그 얘들은 사회에서도 그렇게 악하게 지내고 있을까 싶다. 악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남들에게 악하게 지내다가 사회에서 벌받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전혀 개과천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시작에서 이야기하고싶다.
내 우울증은 거기서부터 시작인 것 같다. 어느 순간, 나는 밝음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 밝음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 없어서 방어기재로 남은 채 살아갔다. 태어난지 어엿 30년째, 아직도 웃음은 방어기재로 사용되고 있다. 재미있지도 않은 일에 웃어주고 어이없는 일들에 있어도 웃어주고 내 진짜의 모습을 보이기 싫을 때 웃는다. 그리고 더더욱 어릿광대가 된다.
그렇게 나는 조증을 얻었다. 과하게 웃어주고 과하게 행동하고 과하게 소비하다보니 뭔가 나아지겠지라는 희망으로 살다보니 조울증의 경계를 왔다갔다하면서 살고 있다. 그렇게 나는 살면서 뭔가를 해내겠다고 일을 시작했고 가장 저급한 9급 신분으로 일을 하고 있다.
언젠가는 나는 그 저급한 9급을 탈출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저급하다고 표현을 쓰겠다. <더 글로리>에서 나온 사라가 말했듯이
"9급 공무원 나부래기는 꺼지세요."
아직도 못 밖히게 느끼는 그 한 줄이 나는 3년이 지나도록 왜이리 울릴까.
그렇게 울증, 조증, 그리고 내 신분을 공개했으니 뭘 더 공개할 것이 있을까 싶지만은 사실 아픈 것만 푼다면 이 브런치 스토리 연재를 시작하지 않았겠지.
나는 이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는 치유를 얻거나, 그리고 공감을 받고자가 아니다. 분노, 울분, 후회, 눈물, 무감각 이 모든 것들을 느끼고, 또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또 있지 않을까. 나는 작은 울분의 소리를 내고 싶어서 쓴다. 그리고 나아지지 않겠지만 계속해서 이 고통을 내 안에 쑤셔 넣기 보다는 그냥 기록하는 것도 뭔가 정리되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한다. 결국 나를 위해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읽어준다면 감사하지만, 그렇다고 읽지도 않고 공감을 눌러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에게 절대로 연민의 표현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불쌍하다. 등의 소리가 듣고 싶어서 시작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는 내 마지막 외침이다. 이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