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도 참고서도 종류별로 넘쳐 나는 데다가, 너무 흔해 제대로 대접조차 못받는 희한한 세월을 산다. 수능이 끝난 고3 교실, 산더미처럼 쌓여 버려지는 교과서와 문제집들을 보셨는가? 골치 꽤나 아파하는 학교 현장을 말이다. (후배들이 그중 쓸만한 것 골라 재사용하기도 하니 그나마 다행일까?)
그 때야 책 한 권으로 1년 버텨내며 곱게 곱게 마치 성경책쯤의 거룩함 부여해 잘 써야 했으니 애지 중지 귀한 목록 되어 좋은 세월 누렸잖은가?
새 책을 받아 온 날, 아버지는 일터에서 일부러 시멘트 포대 누런 종이 몇 장을 정성껏(?) 따로 챙겨 오셨다. 새 책을 보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최상의 도구였다. 새 학년 맞이 연례행사, 교과서를 정성껏 싸 주시겠다며. 건축 일을 하셨던 노동자이셨기에.
일본에서 나셨다 소릴 할머니께로부터 들었으니 실은 혼란의 시기 한글 교육이나 제대로 받으셨을지? 한데 당신은 비록 배울 기회조차 쉽지 않았을 테지만 자식만큼은 몸이 바스러지는 한이 있어도, 아니 그럴 줄 뻔히 알면서도 애쓰셨던 그 희생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 가 말이다.
그렇게 고생하신 부모님 덕에 당당하게(?) 교사가 될 수 있었고 훨씬 나아진 환경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나름 풍요로움을, 내 학창 시절과 비교해 가며 분명히 지켜볼 수 있었잖은가?
당신은 번듯한 집 한 채 평생 갖지 못하셨다. 늘 남의 집만 지어 주는 힘든 건축 노동에서 벗어날 순 없었지만 오로지 자식 배움에 어려움은 없도록 하겠다는 일념으로 매달리셨던, 굳은살 투성이의 그 손이 오늘따라 유난히 그립다. 하늘나라에 계시지만 꼬옥 잡아드리고 싶다.
아들이 받아 든 새 책, 촌스럽기(?) 이를 데 없는 누런 시멘트 포장지로 예쁘게 정성 들여 손수 싸 주시며 아버지가 자식을 위해 해 주실 수 있었던 최고의 선물을 해주시지 않았는가.
아이들과 함께 교사로 그 직을 수행할 때, 새 교과서 받아 들고는 좋아하던 아이들의 재잘거림 여전히 생생하다. 깨끗하게 잘 쓰며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각오로 세련되고 화사한 표지로 책을 싸던 모습이었으니. 정성이 듬뿍 담겼던 아버지 손길이 아련히 포개져 떠오름은 어쩌면 당연한 일아닐는지.
세련되고 멋진 책 표지가 아니면 어떤가? 그렇게 아버지의 사랑으로 옷 입은 교과서. 행여 뜯길까, 상할까 노심초사했던 그 교과서가 자꾸 내게 만남을 신청한다. 교직을 떠나 학생들을 못 본 지 2년이나 지난 지금도 말이다.
재활용 시멘트 포장지이지만, 아버지의 자식 사랑에 대한 최선이 듬뿍 묻은 교과서가 부쩍 아련하다. 말은 없으셨어도 뚝뚝 떨어지던 자식 사랑이. 일필휘지(一筆揮之) 명필 글씨로 책 표지 위에 꾹꾹 눌러써 주셨던 과목 이름, 국어, 산수가 아직도 어제 일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