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세를 즈음하여 -
꽃씨 하나가 나에게로 왔습니다.
얼마나 멀리 왔는지 모릅니다.
어느 만큼 날아왔는지 잘 모릅니다.
자기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었는데요.
여기 노란 꽃을 피웠습니다.
사진첩을 꺼내 보이며 수줍게 웃고 있는 모습
마실 나갔다가 돌아온 어머니 꽃입니다
낮은 땅에 기대어 서서
한여름 소낙비를 맞으며 내심 단단해지는 꽃입니다.
나의 예쁜 손주들이 요만큼 자랐습니다.
나에게는 든든한 울타리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매일 부딪치는 일상이 힘들 수 있어도
거뜬히 해냅니다.
씨앗을 품고 있으면 진통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뿌리부터 잎새까지 푸른 물을 품고,
때론 상처 나고 외롭기도 합니다.
누구도 눈여겨 주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조용히 바라 봄은 소리가 없어요.
날마다 넓은 지평선을 바라봅니다.
한 아름 눈부신 빛깔로 날아오를 것 같습니다
한없이 가벼워지라고 손짓을 할 것 같습니다.
풀밭에서 뛰어노는 손주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민들레 홀씨를 후~하고 날려 보냅니다. 고운 빛깔로 흩어져 날립니다.
나는 가끔 내가 살고 있는 이 동네에 민들레 홀씨로 날아온 걸 보면 신기한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이 동네가 좋아서 꽃을 피웠나 봅니다.
두 딸을 결혼시키고 가까이서 손주 셋을 돌 본 지도 어언 10여 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큰손녀가 중학생이 되었고, 손자, 손녀는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어쩌면 손주들도 돌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나이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딸 가족은 하는 일 관계로 손주들은 여전히 쉼터처럼 할머니 집을 오갑니다.
할머니는 날마다 따뜻한 밥을 든든하게 먹이고 싶어 합니다. 엄마, 아빠가 직장에서 마칠 때쯤, 그때 손주들은 자기 집으로 돌아갑니다.
손주들과 함께한 시간들은 꽤 오래되었어요. 아파트 내 어린이집에서부터 유치원, 지금은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까요.
몇 년 전 나의 생일 파티(61) 때 써 두었던 '민들레 꽃이라는 이름'의 글을 들려다 보면서 손주들과 함께 해 온 날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이야기로 다가섭니다.
모두가 아름다운 날들입니다. 기저귀를 갈았던 날들부터 한 걸음씩 세상을 향했던 설렘들이 그리워집니다. 다시 엿듣고 싶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사진 속의 이야기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그래, 이제부터 너희들의 이야기들을 써볼 거야, '
나의 손주들과 함께 산책길을 걷고 있습니다.
초록이 짙어지고 계곡의 물소리가 요란하게 들립니다. 모든 생명력이 힘찬 소리로 반깁니다. 푸르름이 한층 뽐내며 다가설 것 같습니다.
브런치에 처음 글을 올리면서 설렘으로 다가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