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거나 글 쓰는 걸 좋아하며 살진 않았다. 그저 직장생활에 필요한 만큼의 노력을 하며 글을 썼다. 신문 필사를 해보기도 하고 직장 후배들과 한동안 기사를 요약하고 생각을 정리해 써보기도 했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직장 보고서는 그런대로 쓰는 편이어서 기획과 홍보, 공보 파트에서 오랫동안 일해왔다.
1년 전 공직을 떠나면서 한 달을 그저 멍하니 보냈다. 나의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지 못한 아쉬움에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운이 좋았는지 이틀 만에 승인을 받아 브런치 작가라는 호칭을 얻고 글 쓰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내 안의 이야기를 어디에라도 쏟아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던 시기에 브런치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은유 작가는 생활의 기반이 흔들리고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면서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한다. 불안이 엄습할 때마다 몸을 구부려 글을 썼다고 한다. 그러면서 글쓰기는 자신이 지은 긴급 대피소라고 표현했다. 사실 나도 은유 작가랑 똑같았다. 두려움과 불안이 엄습할 때마다 글을 쓰면서 나를 다독였다. 힘들어하는 나를 외면하지 않고 처음으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모호한 감정과 너무 복잡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글로 정리하며 '괜찮아, 괜찮아질 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스스로에게 말을 걸며 편안해지길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머릿속에 떠다니던 잡다한 생각들 때문에 잠 못 들 때도 글을 쓰며 숨이라도 쉴 수 있었다. 그때의 글쓰기는 나를 나버리지 않고 살아내기 위한 처방전이었던 셈이다.
올 2월에 아는 작가분의 권유로 글쓰기 모임에 들어가 2개월간 글을 써본 경험이 있었다. 혼자 쓸 때보다 글을 많이 썼고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며 자극을 받는 경험도 했다. 같이 글을 써보자고 제안하신 작가분의 영향을 받아 갑자기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닷없이 출간 기획서를 만들고 그동안 썼던 글을 가지고 몇 군데 출판사에 원고 투고를 해봤다.
보낸 메일 대부분은 무반응이거나 부정적인 의견, 심지어는 나의 메일을 열어 보지도 않은 채 사장되어 버렸다. 인터넷으로 원고 투고에 대해 찾아보니 투고로 책이 나오기 힘들다는 내용이 많았다. 그 후 두세 군데에서 연락이 왔지만 사전 예약판매 등 조건부 출간 제안이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갑자기 웬 책 타령인지 괜히 섣부른 마음에 글도 못 쓰고 마음 앓이만 2주 동안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왜 글을 쓰는지 질문을 던져 봤다. 글쓰기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을 때 삶의 방향을 알려준 등대 같은 거였다. 퇴직하고 고립된 나와 마주 보며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거면 족하지 뭔 욕심으로 마음을 못 잡았을까 싶지만 그럼에도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오늘부터 예전처럼 다시 필사를 시작하고 좋은 책을 많이 보며 제대로 글쓰기 공부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차분히 앉아 책을 읽고 나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어휘를 배우고 우리나라 말을 다시 공부하면서 내 삶을 기록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