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기 없는 얼굴을 마주한 날

by 주아태


처음엔 단지 얼굴에 기름기 없이 바짝 마른 사람들이 신기했다.

반질반질하게 기름기 도는, 안색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인 병원 안에서

그 얼굴들은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것처럼 보였다.

강하게 마른 바랜 뺨, 세월이 선처럼 남은 이마,

그리고 무심한 듯 단단한 눈동자.


그들은 병원 공사팀이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묵묵히 무언가를 짓는 사람들.

하루 몇 시간씩 작업복을 입고 병원에 드나들었고,

나는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혹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들과 마주치곤 했다.


그때는 몰랐다.

왜 그 얼굴이 내 눈에 멋있게 들어왔는지.

왜 뚱뚱한 배를 내밀고 웃는 의사들보다,

탄탄하고 말 없는 그들의 몸이 더 인상적이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건 ‘순수 몸으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의 얼굴이었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시간,

팔과 다리를 써서 직접 감당한 하루하루가

그 얼굴에, 그 몸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걸 ‘생활 근육’이라고 부른다.

헬스장에서 만든 근육이 아니라,

매일 무거운 걸 들어 올리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작업화 속에서 발가락을 세우는 일로 만들어진 근육.

그런 근육은 별로 커 보이지 않지만

그 사람의 생애가 담겨 있어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노동을 ‘멋있다’고 생각하게 된 게.

그땐 존경해야 한다고까지는 생각 못 했지만,

적어도 ‘사라지면 안 되는 가치’라고는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노동이 없으면, 사람은 자기 안에서 망가진다는 것을. 몸을 안 쓰고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더 큰 부패로 이어진다는 것을.


나는 이제 누군가를 이해하고 싶을 때,

그 사람이 ‘일을 하고 있는가’를 먼저 본다.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인지,

자기만의 세계에서 썩고 있는 사람인지를.


그리고 나는 우리 엄마를 본다.

61세의 우리 엄마는 지금도 매일 일한다.

체력이 남아 있어서가 아니라,

일을 그만두면 삶이 끊어질까 봐 두려워서.


그리고 우리 엄마가 그렇게 열려 있는 이유는

단순히 성격이 좋아서가 아니라,

매일 외부 세계를 만나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일이라는 게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설명하진 않는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 안에서

스스로 존재하는 법을 배운다.

그런 사람은, 매끈한 얼굴보다 더 진한 무언가를 남긴다.

내가 기억하는 얼굴이 그런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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