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학원차를 타면 학원까지 20분쯤 걸렸다.
까만 봉고차는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아이들을 한 명씩 태웠고,
우리는 비슷한 시간에 모여 학원에 도착할 때까지 신나게 떠들었다.
학원차 멤버 중에는 자주 닭다리를 들고 타는 아이가 있었다.
식당을 하는 집 아들이었고, 항상 고급 간식을 들고 있었다.
뿌셔뿌셔가 신상이던 시절,
매번 다른 신상 간식을 들고 타는 친구도 있었고,
컵떡볶이 같은 걸 들고 타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매번 간식 없이 학원차에 오르는 ‘빈손파’들도 있었다.
나는 ‘빈손파’에 속했다.
학원차 안으로 맛있는 냄새가 퍼졌고,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면서도
먹고 싶단 욕망을 내비치지 않는
교양 있는 초등학생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문방구에 들러
내 용돈으로 사 먹을 수 있는 간식을 신중하게 골랐다.
100원, 200원으로 살 수 있는 간식들은
문어발, 불량식품, 구운 소시지 같은 것들이었다.
꿈의 간식처럼 보였던 닭다리는 무려 천 원이었다.
‘빈손파’였던 내가 닭다리를 사려면,
밭두렁을 열 번은 참아야 했다.
어느 날, 명절에 친척들에게 받은 용돈으로
큰맘 먹고 닭다리를 사 먹었다.
역시… 맛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친구가 들고 있던 닭다리보다는
왠지 덜 맛있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나는 다시는 닭다리를 사 먹지 않았다.
용돈이 여유로운 날에도,
나는 익숙한 간식들을 골라 입에 물었다.
내가 원래 먹던 것들이 더 좋았다.
큰 기대 없이,
가슴 떨리지 않고 편하게 고를 수 있는,
매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간식들이 좋았다.
그때 나는
“한입만,”이라고 뻔뻔하게 외치는 귀여운 초등학생은 아니었다.
그냥 조용히,
침을 꼭꼭 삼키던
수줍은 초등학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