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27

메모장 아카이브

by 주아태

2018년 여름에 메모장에 썼던 글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팔월의 마지막 날들은 덥고 꿉꿉했다.

메일로 받는 낯선 사람의 글을 보면서 나는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싶었다.

이리저리 불려 다니는 직장에서 나를 방해하지 말아 달라는 생각은 말도 안 되는 거였지만...

비가 올 거 같은 습습한 공기를 창문 건너로 보면서 자꾸만 짜증이 났다. 언젠가 평생을 사랑할 거라 다짐했던 친구와의 연을 가위로 싹둑 자르듯 끊어내고 나서 그에겐 간간히 나의 연락을 원하는 연락이 왔다. 나는 그가 더 이상 내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다.

길어봤자 알고 지낸 지 이년이었다.

많은 일이 있었고 정말 사랑했던 사람이었지만 나도 변했고 그도 변했다. 서로 다른 도달점을 목표를 하고 미친 듯이 달음박질한 것처럼.

처음엔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는 거리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가고 나는 그들을 밀어내는 것에 많은 시간을 썼다.

내가 어쩔 수 없이 곁에 둘 수밖에 없는 사람은 결국 부모님과 세 살 터울의 남동생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그들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사랑했다.

가족의 이름 안의 세 사람은 너무나 익숙한 외양과 목소리, 습관을 가지고 있었지만 비슷한 생각이나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나와 동생은 너무나 다른 가치관으로 다시는 안 볼 듯이 싸우곤 했다.

오히려 성인이 된 이후로 가장 부딪히지 않은 사람은 우리 아빠였다.

그는 나와 비슷한 구석이 꽤 많았다.

하얀 피부나 동그란 얼굴, 쌍꺼풀 없는 눈매 그리고 사람을 밀어내는 듯한 분위기가 특히 그랬다. 성인이 되고 독립을 한 이후로 나와 아빠는 엄마를 통해 간간히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아빠라는 사람을 생각할 땐 항상 조금 서글픈 느낌이 든다.

아빠의 생은 집과 옷을 만드는 가게가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아빠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아빠는 한낮이 다 된 시간에 일어나 점심을 먹고 옷을 만들다가 해가 지면 유달산을 오랫동안 걷다 내려왔다. 그 규칙적인 생활이 그에게 무슨 위안을 줄까..? 엄마를 생각해도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감정의 내용이란 게 조금은 달랐다. 엄마는 선천적인 인사이더였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받는 게 어울리는 사람..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 엄마는 아빠에게 분수에 넘치는 사람이다. 엄마가 아내로서 본분을 너무나 잘 해낸다는 점도 있지만 그녀의 인사이더 기질이 아빠의 아웃사이더 기질을 어느 정도 반감하게끔 만든다는 이유가 크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싫어하기도 했다. 아니 싫어한다기보단 혼자 있는 것이 더 좋았다. 어느 날 어느 자취생의 글을 읽다가 부모님 없이 혼자 잠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 무섭게 느껴졌던 스무 살의 밤이 기억났다. 기숙사에서의 첫날밤, 나는 부모님과 몇백 킬로 떨어져 잠에 든다는 사실이 너무나 슬프고 무섭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감정은 딱 하루로 그쳤다.

그 이후로 나는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해졌다.

어느 날, 내가 아닌 사람이 나보다 중요하게 여겨졌던 때가 있었고 그래서 그 인연이 끝이 나버렸을 때 끙끙 앓아가며 버텼던 적이 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을까..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정형적인 말들이 내 유일무이하다 생각했던 경험들을 그저 인간이라면 겪는 흔한 경험이라고 알려준다. 나는 그냥 흔한 인간이고 내가 생각해 낸 것들도 상당히 보잘것없는 것들이다. 나는 오히려 그 보잘것없고 평범한 생각과 경험들에서 큰 위로를 받는다. 내가 골몰히 생각하는 질문의 답들은 항상 내 주변에 있었고 아픈 일들을 겪어낸 내가 그것이 답이었음을 마침내 알아차린다. 그러면 무섭고 공허한 마음이 무척이나 나아진다. 나는 앞으로도 많은 답들을 그렇게 찾을 것이고 내가 겪는 아픈 일들이 답을 찾는 것에 원인이 될 것임을 알고 나니 아픔이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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