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를 읽고
책읽기는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경험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비록 간접경험이긴 하지만 말이다.
인간답다는 것이 무엇일까?
책은 서사를 통해 인간다움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통해 시대의 인간다움에 대한 또 다른 질문을 하기도 한다.
나의 책 읽기는 성인 이후에 어떤 목표에 의해 발발되었다.
책 읽기 자체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삶의 방황을 거치며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믿고 의심을 거두고 읽기 시작한 예이다.
선천적인 이끌림이 아닌 후천적으로 독서를 익힌지라 문학 장르는 좀처럼 쉽게 읽히지 않는다.
이야기 자체를 좋아해야 하는데 그런 성향은 아니라서 문학 장르는 우선적 독서 목록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하는 문학 소년소녀들은 어릴 적부터 닥치는 대로 소설을 많이 읽었음을 볼 수 있다. 예술계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이더라도 자신의 일에서 독보적 성취를 한 많은 사람들이 성년 전의 문학 독서가 자양분이 되었음을 본다.
독서라는 것이 쉽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인내심과 호기심을 타고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고 인내심과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범인들에 비해 사회적 성취도도 높았으리라 추측한다.
마시멜로 실험과 같이 호기심과 탐구심을 충족하기 위해 혹은 어떤 다른 가치를 위해 현재의 불편을 감수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부패방지법 '김영란 법'으로 잘 알고 있는 김영란 전 대법관으로 어릴 적부터 문학독서를 많이 하였지만 자신의 일과는 상관없는 쓸모없는 독서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탁월한 사람이기에 독서를 하는가? 독서가 탁월함을 만드는가? 아니면 동시에 되거나 일진대, 여하튼 책과 고귀한 인품은 같이 자라난다. 인품으로 자라나지 않으면 지성이 아니다.
사람은 생각을 통해 성장하고 생각에는 재료가 필요하다. 책은 생각을 위한 훌륭한 재료라고 본다. 책을 통해 지성을 쌓으면 질문은 다음 단계로 인간이 마땅히 되어야 하는바, 인성, 진리로 나가게 된다.
법과 문학이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싶지만 법 체계 역시 인간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중용의 덕을 기술한 것이다. 애덤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에서 이기적 인간을 제어하는 공정한 관찰자는 문학과 법학을 은유하는 마사누스바움이 말한 '시적 정의'의 문학적 감수성이나 연민과 관통하는 정서가 있다.
가장 특별한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처럼 보편성과 개별성을 모두 아우르는 것이 다원화된 시대가 요구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기계적 이분법을 깨트리고 개별성과 보편성의 조화를 내면화하는 것은 스스로의 직접 경험만으로는 부족하며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문학을 통해 한 면 만을 보는 것을 넘어 다양한 관점을 가지는 것, 균형감을 찾는 것, 문제의 핵심에 다가가는 것이 가능하다. 문학을 통해 탁월한 성취, 감추인 진리를 드러내는 창조가 가능했던 것이다.
우리는 진리를 찾아 평생을 떠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 등의 질문을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이렇듯 진리는 손에 쥐어지지 않는 것을 캐치해 내는 것, '진리는 상상의 문제'라고 어시스연대기를 쓴 미국 SF 소설가가 어슐러 르귄이 이야기한다.
문학은 상상력의 보고다. 따라서 문학을 가까이 함은 인생을 통해 우리가 알아내고자 하는, 아직 우리에게 미지의 진리인 그곳으로 향하는 다양한 시도, 연습을 하는 것이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기 때문에 소중한것, 철학과 진리에 기반한 궁극적 삶의 변화를 꿈꾸며 책장을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