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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 좀 아는 언니 Aug 25. 2024

존재적 삶을 살고 있는가?

최진석의 ‘건너가는 자’를 읽고 나에게 묻는다.

'소유적 태도는 과거의 이론과 굳은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세계를 통제하려고 한다.'


'자기가 가진 기존의 의미대로, 자신의 욕망대로, 자기 의도대로 세계를 잡아놓으려 하는 것이 소유이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자기한테 드러나게 허용하는 것이 존재이다.'


'더 채우기 위해 마음을 비우고 정확히 보기 위해 상을 짓지 않는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다. 유한한 인간이 세계를 품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항상 질문을 던져야 한다.  

 

세상은 우리가 알 수 없는 무한이며 세상과 생명의 속성은 변화이다.

그러나 세상을 우리의 생각 속에 가두려고 한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세상을 틀에 가두려는 것은 유한한 소유가 무한한 존재를 범하는 행위다.


세상은 현상이고 실체가 아닌 관계이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는 어떤 실체가 있는 것처럼 산다.

우리 생각 속에서 실체를 만들어 놓고 세상과는 상관 없는 나름의 세계를 만들어서 그 안에서 만족한다.  

  

자신과 과거의 전통에 의해 건축된 신념, 관습에 익숙해진 편리함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생각을 게을리한다.

이것이 소유적 삶의 형태다.






세계는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적, 관계적 속성이다.  

그래서 소유적 세계관과 삶의 방식은 건강하지 않다. 공기가 통하지 않아 숨을 쉴 수가 없게 된다.

소유적 세계관은 생성, 삶의 방식이 아니기에 썩어서 거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악취를 풍기며 독소를 내뿜는다.

존재적 세계에서 소유적 삶을 사는 것은 스스로를 병들게 만드는 것이다.

    

존재적 삶을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념, 관습, 시시각  쌓여가는 움직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한다.

공기가 통하지 않는 곳으로 스스로를 몰고 가는 편협함과 욕망과 이기심에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세계내 관계 역시 본질적으로 존재적 속성이 있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관계의 작동 방식 역시 소유가 아닌 존재,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반응하고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나 아닌 너라는 세계를 존재 자체로 인정하지 않는 소유적 관계는 권력을 내포한다.

힘과 불균형을 추구하는 것은 소유의 원리로 존재와 생성의 원리에서 멀어져 이 또한 썩게 되고  퇴화된다.


나는 썩어가는 소유적 삶을 살고 있는가? 숨 쉬는 존재적 삶을 살고 있는가?

왜 우리는 소유적 삶이 실체이고 진실이라고 여기고 있을까?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 살길임을 모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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