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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현 Sep 13. 2021

우리 도장, 이런 나. 정상인가요?

30대 여자의 유도 수련기 5


안녕하세요. 이번 주말에 아주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디씨인사이드의 유도갤러리에 <체중 80kg인 여자가 유도해도 되나요>라는 글이 올라오자 다른 갤러가 굉장히 진지한 답변을 달아 주었습니다.


당연함. 유도하면 나보다 10kg만 무거운 사람도 보면 그냥 부러움.


(원글 링크는 이쪽입니다.)


어쨌거나, 저 체급도 재능이라고 말하는 갤러의 진지한 마인드가 제게도 익숙한 것이며 글 자체도 좋아서 트위터에 캡처해서 올리고 밥을 먹고 왔어요. 그랬더니 엄청나게 리트윗이 되고 있더라고요. 천알티를 넘고... 만알티를 넘고... 진짜 놀랐습니다.


<무거운 몸을 가졌다=운동을 잘 할 수도 있다>는 개념 자체가 많은 사람에게, 특히 여자에게 이렇게나 낯선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습니다. 안타깝기도 하고, 이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이 유도라는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 같아 기쁘기도 했습니다!


해당 글에는 oocm/ookg인데 유도장에  봐도 되겠냐는 덧글도 엄청 많이 달렸더라구요. 인터넷에서 쏘아올려진 작은 !!!  분들   분이 유도장을 찾고  유도를 계속해 주실지 아직은 미지수지만... 지금 그리고 앞으로 유도를 시작하신 뉴비 분들이 낯선 체육관의 환경에 대해 고민하시는 점이 있다면, 그렇게  명이라도 유도인을  유치할  있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글을 씁니다. ( 들어올  노젓기~)



1. 유도장, 어떻게 골라야 하나요?


일단 가장 중요한 점은 이것입니다.


가까운 곳이 최고다.


낮잠 자다가 조금 늦은 것 같아도 망설임 없이 쓰레빠 신고 후다닥 달려갈(최소한 멀지 않은 거리 내에서 버스/전철을 탈) 수 있는 거리 내에 있는 곳이 최고입니다. 운동이라는 것이 아직 막 시작해서 정이 붙지 않았을 때는 한 번 안 나가게 되면 계속 안 나가게 되고, 그렇게 안 나가는 기간이 며칠에서 몇 주가 되고, 그러면 관성에 따라 이전의 운동 안 하던 생활로 돌아가게 되니까요.


네이버 지도에서 유도장/유도관을 검색했는데 가까운 거리 내에 유도장이 두 곳 이상이 있다? 그렇다면 당신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 셈입니다.


이전의 글에도 썼지만, 그래도 내가 다니는 도장이 어떤 곳인지는 눈으로 봐야겠지요? 해당 도장으로 전화를 걸어 수업시간을 알아보고, 수업을 참관해도 되는지 양해를 구하면 됩니다. 새로 돈 낼 관원이 오겠다는데 오지 말라는 도장... 세상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유도인의 성지, 일본 강도관. 여러분이 찾아간 도장은 아마 이보다는 훨씬 작을 것입니다. 실망하지 마세요.


도착해서 관장님께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수업시간이나 관원 수도 알아보고... 뭐 알못 입장에서 체크할 수 있는 게 얼마냐 있겠냐 싶으시겠지만, 그래도 처음 온 사람 입장에서 체크해 보면 좋을 점은 아래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군기 잡는 이상한 문화가 있지는 않은가?
관장이나 사범이 이에 동조하고 있지는 않은가?



도장에서 운동하시는 주변 성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특히 어린이가 많은 도장의 경우 지도자가 어린 사람이라는 이유로 말 혹은 행동으로 폭력을 행사하거나 기합을 주는 경우가 가끔 있다고 합니다. (지금이 2021년인데... 하지만 실화임.)


도장에 갔는데 미친놈 하나가 이상하게 굴면 그 놈만 무시하거나 그 놈과만 싸우면 됩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문화가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뉴비 입장에서 그걸 갈아엎기는 힘들죠. 다함께 하는 운동이 아닌 의미없는 기합, 어린 사람 윽박지르기... 이런 것에 반기 들기는 힘들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그냥 조용히 그 도장을 떠나는 편이 에너지 절약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특히 중요한 것. 신입이 못 한다고 해서 그걸 도와 주는 게 아니라 너는 왜 못 하느냐, 하는 식으로 혼내고 윽박지르는 지도자가 있다? 뒤도 안 돌아보고 탈출하셔야 합니다. 이 부분을 잘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더 잘 하는 관원이 더 못 하는 관원에게 조언을 주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람 개빡치게 하는 꼰대만 아니면 선생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수련하되 더 오래된 수련자의 말에서도 취할 건 열심히 취합시다.)


제가 지금까지 도장 몇 곳에 가 보고 느낀 바는, 어리고 못 하는 도장 내 약자를 가장 많이 신경 써 주는 지도자가 가장 훌륭한 지도자라는 점입니다.


(유도는 예시예종... 예로 시작해서 예로 끝난다...)



2. 오지게 못 하는 나, 정상인가요?


위의 조건에 따라 괜찮은 도장을 찾은 것 같습니다. 신입이라 아직 겉도는 것 같아도 사람들도 친절하고 유도도 재밌고 도복도 간지납니다... 그런데 하나의 문제가 있을 수 있죠. 나만 너무 못 하는 것 같고, 아무리 연습해도 발전이 없는 것 같을 수 있습니다. 분명히 매일매일 이렇게 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같은 말 어제도 들었고 오늘도 듣고 내일도 듣는데 도무지 내 몸이 따라 주질 않는 것 같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건 너무 당연합니다.


첫날부터 몇번 해보자마자 메치기 팍팍 들어가고 나보다 30kg 무거운 사람 다 잡아서 던져 버렸으면 당신은 지금 동네 도장이 아니라 진천선수촌에 있어야 합니다.


일본 유도 국대 감독, 이노우에 코세이의 선수 시절 주기술이었던 허벅다리걸기.


유도선수들에게는 주기술이라는 게 있습니다. 수많은 유도의 기술 중에서도 그 선수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기술을 제대로 구사하기 위해 10년에서 20년 동안 밥 먹고 유도만 한 사람들이겠죠? 지금 막 유도를 시작한... 태릉선수촌의 전설인 불암산을 걸어서도 끝까지 못 올라갈지 모르는 사람이 몸쓰기, 근력, 타이밍 삼박자가 맞아야 하는 유도 기술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 참 많이 했습니다. 사실 맨날 합니다. 어제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왜 오늘도 안 되지? 지난 주에 열심히 했는데 왜 이번 주에도 안 되는 것 같지?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간사해서 객관적으로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았어도 내가 쫌 열심히 했다는 기분만 들면 그 이상의 아웃풋을 바라게 되는 것 같아요.


해도 발전이 없는 것 같고, 실력이 늘지 않아 답답한 것 같을 때는 함께 운동하는 주변인과 이야기를 나눠 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어떻게 하면 이게 잘 되는지 조언도 구하고, 뭘 잘못하고 있는지 피드백도 받고요. 이렇게 발전을 도모하며 도장에 열심히 간 날이 일 주일, 한 달, 반 년, 이렇게 쌓이면 스스로는 몰라도 실력은 점점 늘 수밖에 없습니다.


- 언니 처음에 이 기술 연습할 때보다 훨씬 늘었어요

- 잡기 장난 아니게 늘었어요

- 근력 진짜 세졌다


하다 보면 언젠가는 주변인들에게 이런 피드백이 돌아오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끝내는 본인도 실력이 늘었다는 걸 체감하게 됩니다. 정말 기쁜 순간이죠.)


초보가 못 하는 것은 당연하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존버가 필요하다... 그러니 과정 자체를 즐기자. 생체를 위해 필요한 건 체급, 빠르기, 힘, 이런 재능보다도 해당 종목을 향한 사랑이다. 제 생각을 요약하자면 대충 이렇습니다.



3. 그래도 인간적으로 저는 너무 느린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의 발전 속도가 같을 수는 없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는데 저 녀석은 벌써 업어치기 쑥쑥 하고... 그런데 나는 업어치기가 뭘 하란 소린지도 모르겠고... 그럴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트위터에서 본 이야기가 있는데(출처 없음...까먹음...ㅠㅠ)


어떤 체육 교사가 학생들의 달리기를 지도하는데, 정말 느리게 달리는 한 아이가 있었다는 거예요. 평소 같으면 왜 그렇게 대충 하느냐고 한 마디 했겠지만, 당시 학생들의 심박수를 체크 중이었어서 그 학생의 심박수를 보니 해당 학생의 심박수는 그 나이에서 나올 수 있는 가장 높은 심박수를 기록 중이었다는... 다시 말하자면 그 학생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였어요.


저는 이 이야기가 정말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가장 잘 하는 사람이 될 수 없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충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노력을 하는 사람!


저희 도장 신입 중학생 중 힘이 진짜 약한 친구가 있는데, 처음 들어올 때 저는 이 친구를 <종잇장>이라고 불렀지만 매일매일 꾸준히 나오니 진짜 한 주가 다르게 힘이 강해지는 게 느껴져서 지금은 <종잇장>에서 <수수깡>으로 승격한 상태입니다. 이 친구의 목표는 수수깡에 이쑤시개 꽂은 게 최종 발전한 형태인 <선인장>이라고 해요. 남들보다는 약해도 가장 즐겁게, 열심히 수련하며 큰 발전을 이루고 있는 정말 멋진 친구입니다. (그래서 저도 더 열심히 하고 있어요!)


체급, 힘, 속도, 이런 것도 물론 재능이지만... 생체 레벨에서 최고의 재능은 운동 자체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분들, 가볍든 무겁든 유도하러 오세요. 정말 재미있어요! 현재 유도경력 2년인 저... 시작은 늦었지만, 체중도 많이 안 나가고 고인물이나 유도 전공자들을 이기기엔 멀어도 한참 멀어서 맨날 날라다니지만... 유도가 너무 재밌기 때문에 한 20년 정도는 계속 유도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번외:


저의 익명 질문함에 유도를 하려고 하시는 분들이 메시지 남겨 주시고 있어서 참 기쁩니다. 오세요 유도장! 유도인들은 다 맨날 보는 얼굴들이... 그 얼굴이 그 얼굴이고 다 아는 얼굴들인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뉴비의 존재 자체가 고무적입니다.


거기다가 넘치는 힘도 맘껏 써볼수있고?? 안되는걸 되게하는 성취감을 계속해서 쌓아갈수있다?? 안오고는 못배기죠???


그럼... 저는 오늘도 유도장에서 여러분을 기다릴게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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