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저질러 버렸다.
22년이 끝나갈 즈음부터 슬슬 내년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올해는 어떻게 보냈지, 내년에 어떨 것 같지에 대한 매번 하는 듯한 그런 고민들.
직장인으로 회사를 다니면 으레 연말이면 하는 그런 고민들.
한 해가 끝나갈 즈음이 되면 이상하게도 당연하다시피 생각이 드는 그런 고민이 역시나 다시 찾아왔었다.
그렇게 매일의 출근과 퇴근 그리고 업무를 보며 문득의 고민 중에 느껴지던 무언가의 회의감.
올해는 분명 바쁘게 보냈고 해야 할 것을 하며 보냈고 쉽지 않은 시간들을 보냈었다.
그런 시간들이 쌓여 마침내 끝나버리기 위해 채워진 12개월의 시간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의 끝에는 '내년에는 뭔가 다를까?'라는 의구심이 나에게 떨어졌다.
'오늘 하는 일을 내일도 할 거고 내일 하는 일은 모레도 하겠지? 그렇게 내년을 맞이하고 내년도 비슷하겠지?'
그리고 이어진 생각은
'그거 재밌을까?'
사실 이건 배부른 생각과 욕심이었다.
거의 대부분을 재택으로 할 수 있는 업무와 회사 분위기, 좋은 사람들, 나쁘지 않은 월급 등등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그런 곳은 아니었지만, 주변에 회사에 대해 얘기했을 때 "그런 회사가 있다고?"라 할 정도로 워라밸을 잘 지켜가며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럼에도 나에겐 첫 직장이었던 이곳에서 4년의 끝을 채워가는 시간에는 이런 고민이 들었다.
'이제 별로 재미없는 것 같아, 이제 그만할 때가 된 것 같아'
비슷하고 같은 내년을 맞이하기엔 그럴만한 자신이 없었다.
그게 번아웃일 수도, 지겨움일 수도, 단순히 흥미가 없어졌던 걸 수도, 재미가 없어졌던 걸 수도 있지만
같은 내년의 시간을 보낼 순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건 아마 나의 나이 때문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내년이면 33이 되는 시기에 나는 34는 진짜 안될 것 같아, 못할 것 같아라고 느껴지는 무언가가 다가왔다.
34. 서른 넷이라 불리고 불리우는 시기가 되면 무언가의 더 큰 벽이 나를 막아설 것 같은 느낌.
그 느낌이 너무 싫었다.
그때가 되면 뭐든 무언가를 시도하지 못할 것 같았고 무언가에 대한 도전을 욕심내지 못할 것 같은 무언가의 느낌.
그래서 그 느낌이 날 집어삼키기 전 지금에 무언가를 해야 했다.
그리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외국에서 살아보는 것'
여행을 좋아한다고 느꼈던 나에게 여행을 넘어서 살아본다는 것.
잠시의 시간이 아닌 삶이라 느껴질 수 있을 시간을 보내보는 것.
현지인들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시간을 보내보는 것.
바쁘게 여기저기 보러 다니는 것이 아닌 그곳에서의 시간을 살아보는 것.
찍먹이 아닌 조금은 더 딥한 그런 것.
그것을 하고 싶었고 해보고 싶었다.
버킷리스트라 할 수도 있을, 오래도록 해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저질렀다.
퇴사를.
같은 시간을 다시 맞이하기엔 싫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