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7. 푸시킨과 톨스토이

최고의 여행(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

by 정달용

17. 푸시킨과 톨스토이


☞2016.10.07(금)


오늘은 모스크바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크램린궁, 버스투어, 성바실리 성당, 톨스토이 박물관 관람 등, 게다가 선물구입 등 많은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먼저 붉은광장에 가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투어버스 승차장에서 기다리자 잠시 후에 2층으로 된 붉은색 1번 버스가 온다. 우리가 첫 손님인 모양이다. 안내하는 아가씨가 이어폰을 한 개씩 나누어준다.


시내를 관광하는 투어버스는 두 개 노선이 있는데, 1번은 시내 중심가 위주로 돌고, 2번 버스는 비교적 먼 곳으로 도는 노선이다. 2층 제일 앞에서 시내를 구경하는 것도 색다른 재미가 있다. 일반주택의 2층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이 제법 높다.


붉은광장에서 출발해서 모스크바강 다리를 지나 좁은 골목으로, 그리고 다시 모스크바강 다리를 건넜다.


조금을 달리자 큰 건물 앞에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는 모습이 보인다. 저기가 어디일까?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푸시킨 박물관이란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인가 보다. 남해안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친구들과 어느 절 입구의 기념품 가게에 들렀었다. 무슨 좋은 것이 있을까 구경하던 중 벽에 걸려있는 통나무로 된 목각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목각은 손바닥 크기의 통나무를 비스듬하게 잘라 두 개를 끈으로 역은 모양이었는데 그 납작한 두 개의 판때기에는 바로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푸시킨>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좋은 글귀가 내 눈을 멈추게 했다. 나는 그것을 수학여행의 소중한 기념으로 여기며 내 책상 앞 벽에 걸어두고 가끔씩 읽어보곤 했었다. 그 글귀는 내가 성장하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힘들 때 나를 격려해 주었고 새로 힘을 얻는 계기가 되곤 하였다. 때문에 그 수학여행 시 사 왔던 기념품은 성장기를 거치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이 이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보관했었는데 언젠가부터 내 주변으로부터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문득문득 그 시구가 떠오를 때마다 창고 어디엔가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시인의 박물관을 지나가는 버스 속에서 만나게 되었다. 여지껏 서유럽 어느 나라의 유명한 시인으로 알고 있었던 "푸시킨"이란 시인이 러시아인이란 것에 놀랐고 또한 러시아에 문학적으로 뛰어난 학자가 많았다는 것에 러시아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 중세부터 유럽의 변방으로만 알았던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뜻밖에 푸시킨 박물관을 보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푸시킨 박물관에서 한 정거장을 지나면 톨스토이 박물관 가는 정류장이 나온다. 그곳에서 투어버스를 내려서 큰 대로를 내려가자 교차로 한편에 동상이 서있었다. 톨스토이 동상이다. 기념사진을 찍고 좁은 길을 얼마쯤 올라가자 오래된 조그만 건물이 나온다. 톨스토이 박물관이다.

입장료를 구입하고 실내에 들어서자 소장된 미술품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아마 지인들로부터 선물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방과 방이 이리저리 이어지며 걸려있는 그림들은 톨스토이의 유년시절부터 노년까지의 시대별 그린 사진이 걸려있다. 작품사진부터, 부인의 젊은 모습, 가족사진, 지인들과의 사진 등, 그때는 사진기가 없을 때이니까 화가가 그린 인물사진으로 추억을 담은 모양이다.


거의 마지막에서 톨스토이의 노년 흑백 동영상이 카트별로 tv화면으로 나온다. 머릿속으로만 그려왔던 톨스토이의 실제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워진다.


거창한 이름의 유명한 전시회보다 더 알찼던 톨스토이 박물관의 관람이었다.


다음은 어제 못 갔던 크렘린 궁의 관람, 먼저 햄버거로 점심을 대신하고 크렘린 궁에 들어갔다. 밖에서의 어마어마한 규모와 높은 성채에 과연 무슨 귀중한 것이 있을까? 기대를 하며 들어섰으나 비싼 입장료만큼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없었다.



어마어마한 대포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사진을 찍게 했지만, 주변을 둘러보고, 역대 황제들을 모신 관이 있는 대천사 사원도 나에게 큰 감흥을 주진 못했다. 우리 경복궁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큰 궁전이지만 이름만 거창한 크렘린 궁이었다.


궁궐에서 나와 다음엔 붉은광장 옆에 있는 바실리성당, 역시도 여느 성당과 다른 특별한 것이 없다. 여러 곳의 거대한 성당건물을 보니 이제는 식상한 모양이다. 성직자 등의 진실한 신앙심보다는 자신을 알리고 종교를 알리려는 지나친 과욕과 허세와 욕망만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하는 생각과 자신을 오래오래 기억해 달라는 황제들의 부질없는 욕망이 넘쳐나는구나! 하는 씁쓸함이 뒤 켠에 남게 된다.


이제 버스투어 2번 버스 관광을 할 차례다. 성바실리 성당을 나와 모스크바 다리 쪽으로 내려오면 2번 버스 타는 곳이 나온다. 오랜 기다림 끝에 버스를 탈 수가 있었다.

강변을 타고 한참을 지나고, 어제 유람선관광을 하던 모습이 반복된다. 강남엔 길게 늘어선 공원이 얼마를 지나도 이어지고 시내와는 다르게 녹지가 많이 조성되어 있다. 이 모스크바는 생페테르브르크와는 다르게 중심가에서 약간 벗어나자 현대식 빌딩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상가마다 밝게 안을 비추는 것이 여느 우리 도시와 다를 게 없었다.


이곳 모스크바도 교통체증이 보통이 아니다. 현재도 이런데 아직 차량이 우리보다 많지 않은 이곳의 내일이 걱정된다. 너무 밀린 차량들 때문에 중도에서 내려 걸어가서 선물을 사기로 했다. 아들은 선물을 사고, 저녁은 돼지고기 꼬치를 사서 저녁 겸 보드카로 마지막 모스크바의 밤, 이번 여행의 끝자락을 장식하기로 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