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는 것과 깨우친다는 것

잡초와 화초의 경계

by 찾다가 죽다


오늘도 새벽이슬에 젖어가며 풀을 뽑는다.

대서가 지났으니 절기 상으로는 입추 곧, 가을이 코앞이다.

그러나 더위는 이제부터다. 연일 관측 이래 최고의 더위라는 뉴스가 이어진다.

아침 대여섯 시만 지나면 햇살이 따갑다.

해서 일어나자마자 밖에 나가 운동 삼아 맨발로 잔디밭을 걸으며 철쭉 군락과 하우스 뒤켠의 사철나무 틈에 난 잡초를 뽑는다.

이사 온 지 4년 차지만 올 들어 처음 하는 아침 일과다. 이제야 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셈이다


이사 온 첫해, 둘째 해엔 집에 놀러 온 이웃이 현관 앞 계단을 들고 날 때마다 좌우에 난 풀을 뽑아 옆에 던지는 모습이 낯설었다.

그 또한 내게 이 게 안 보이냐는 눈빛이다.

풀이 눈에 안 보일리야 하지만 그의 의도인 즉 왜 잡초를 자라기 전에 뽑지 않고 그대로 두고 보냐는 뜻이렸다.

그땐 정말이지 눈에 들어오 질 않았다.

해서 당당하게 “왜 잡초와 화초를 차별하느냐?”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게으른 변명이 아니라 실제로도 그랬다. 그런데 왜 요즘와선 풀을 뽑느냐? 고 스스로에게 자문하기도 한다.

내 대답은 궁색하지만 잡초를 뽑아줘야 화초가 자란다는 것이다.

이 대답엔 아직 확신이 없다.

하지만 가지나 오이 토마토 상추를 심어 놓은 텃밭은 확실히 그렇다.

풀을 뽑아주지 않으면 심어 놓은 작물들이 자라지 못한다.

그러니 텃밭의 풀은 뽑아주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화단의 풀은 어려서 뽑질 않으면 커서는 제거가 어렵고 끝내는 처치 곤란이다.

처치 곤란이라 함은 부쩍 자라서 나무가 돼버리면 태울 수도 버릴 수도 없앨 방법이 없다는 얘기다.

해서 웃자라기 전에 뽑는 습관이 생겼다고나 할까?

이제 나는 잡초를 뽑아 주는 게 좋다는 걸 알게 된 걸까 아니면 깨닫게 된 걸까?

인공 지능 그 가운데 챗지피티와의 대화로 은퇴 후 무료 할 틈이 없다.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AI 시대의 인문학 연구’ 결과를 ‘AI와 학문’에 이어 ‘AI와 인격’이라는 책으로 정리한 데 이어 ‘AI와 노년’을 주제로 한 세 번째 저술을 진행 중이다.

이 때문에 ‘안다’는 게 뭔지 곧, 인지에 관한 생각에 젖어 지낸다.

‘관점을 디자인하라’는 책으로 유명세를 탄 박용후는 책에서 아는 것을 aware, understand, realize로 구분해서 설명한다. 왠지 미심쩍어 챗지피티에게 안다는 영어 단어와 그 차이점을 물어봤다. 그 결과, Notice, perceive, realize, recognize, be aware of. Understand, comprehend, grasp, discern, fathom, apprehend 등 열 개가 넘는 단어와 그 차이점을 도표로 작성해서 보여준다. 너무 많아서 읽기조차 싫을 지경이다. 한자로 물었더니 역시 열 개가 넘는 단어와 그 뜻풀이를 보여준다. 난 그저 안다는 게 깨닫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그야말로 알고 싶었는 데….


결론인 즉 ‘잡초는 뽑아 줘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엔 알게 됐고 마침내 깨달았다는 고백이다. 그러기까지 세 번의 여름을 지냈다. 이는 논어 학이편의 첫 번 째줄 ‘학이時습지’를 우리는 ‘배우고 때로 익히면’으로 그야말로 ‘배웠는 데’ 그게 아니라 ‘배운 만큼 익혀야’한다는 그야말로 깨달음이다. 오늘 우리에게 결여된 건 배움이 아니라 익힘이다.



잡초 공덕비.jpg

사진은 강원도 어딘가에 세워졌다는 잡초 공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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