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건네는 말

생각하다

by 피아노

최근 직장에서 <글로벌 국제 교류>에 관한 연수를 다녀왔다. 경기도에 있는 교육청, 직속기관, 학교등에 근무하는 교직원들이 모여 함께 받는 연수다.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2박 3일 동안 양평에 있는 숙소에서 함께 지낸다. 20명가량이 모여 첫 시간에 자기소개의 시간을 갖는다. 모두 소속과 이름을 이야기하고 이 연수에 오게 된 계기를 말한다. 목소리도 다르고 풍기는 분위기도 다르다. 프로그램은 다 함께 듣는 연수와 분반하여 받는 수업으로 나뉘고 내가 지정된 반엔 연령대가 다양한 7명이 영어 말하기 수업을 함께 한다. 여기서도 영어로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 시작한다. 두 명의 젊은 친구들이 뛰어나게 영어 말하기를 잘한다. 그래서 유심히 관찰하게 된다. 그중 한 명은 전체 소개시간에서도 목소리 톤이 인상적이어서 눈에 띄었다. 이십대로 보이는데 목소리에 무게가 있고 말에 뜻이 깊다. 계속되는 영어 수업에서도 역시 그렇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원어민 교사는 법학을 공부했고 책 읽기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수업은 계속되는 질문의 연속이다. 나는 영어가 짧아 깊은 생각 없이 표현할 수 있는 한에서 별 고민 없이 대답한다. 그녀는 그렇지 않다. 원어민교사의 끊임없는 질문에 잠깐 생각을 멈추고 꽤 일리 있는 대답을 영어로 잘도 말한다. 아름답다.


둘째 날은 하루 종일 영어수업을 받고 마지막 시간에만 건강에 관한 짧은 강의를 듣기 위해 다 같이 모인다. 우리 반 사람들하고 조금 익숙해졌다.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건넨다. 자연스럽다. 인상 깊게 봤던 그녀가 건네는 말이라 듣는 순간, 기분이 좋았고 우리의 즐거운 대화가 조금 길어진다. 대화가 즐거운 사람을 만나면 좋은 기분이 든다. 나이차가 많은데도 거리낌 없이 말을 건네고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이끌어나간다. 영어수업시간에는 단어가 막힐 때나 컴퓨터 프로그램이 안될 때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


셋째 날 마지막 수업의 영어 미션은 자신이 친구가 되면 좋은 점을 어필하는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어 발표를 한다. 그녀는 프랑스어도 조금 한다고 하고 생각이 많아서 생각을 멈추고 집중할 수 있는 운동을 즐긴다고 한다. 쾌활하고 예술을 좋아하고 주변사람들을 기분 좋게 한다고 말한다.


맞다. 그녀는 그랬다. 성숙하고 자유롭고 깊이 있는 이십 대 청춘이다. 연수를 마치고 크게 웃으며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봄비가 내린다. 봄비가 내리는 양평의 평화로운 풍경길에 음악을 들으며 처음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을 생각한다. 나는 낯선 이에게 먼저 말을 건넨 적이 있었던가. 낯설지 않은 이에게도 선뜻 말을 걸기가 쉽지 않았다.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일. 나를 확장하는 일.


타인에게 말걸 용기를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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