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 살아낸 14년. 다시 나를 찾다.
어느 더워지기 시작한 날,
여행에서 돌아온 지 몇 달쯤 지난 어느 날.
오랫동안 마음속에만 품어왔던 나만의 프로젝트를
드디어 시작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냥, 갑자기, 문득…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조금 한가해 질 즈음 소중했던 그 때의 추억을 다시금 상기하고 싶었고 오랜 숙원이었던 ‘나만의 책’으로 엮어보고 싶었다.
지난 여행은 내게 너무 강렬했고,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고마운 순간들이었다. 그 감정을 다시 꺼내어 정성껏 엮어보면, 우리 가족에게는 더 깊은 향기로 남을 것이고, 나와 같은 엄마들에게는 조금은 새로운 용기와 활력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이랄까..
한 때는 세상과 활발히 소통하며 진짜 나 답게 살던 그녀들이, 엄마가 되며 삶의 중심을 내려 두고 아이들을 위해 '배려하는 삶'을 살아간다. 어쩌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선택 속에서.
그 모습이,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은 더 특별한 장기 여행을 권하고 싶었다. 그만큼, 우리에게도 그 여행은 특별했고, 소중했기에.
사실, 나도 몰랐다. 아이들이 이렇게 소중하고 귀한 '족쇄'일 줄이야. 하지만 언젠가, 그 소중한 족쇄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스스로 풀고 훨훨 날아갈 것이다.
그리고 모든 어른들처럼, 나도 그렇게 말하게 되겠지.
“아, 아이들 어릴 때가 제일 좋았지…”
하지만 사춘기 두 아이를 키우는 지금은 자꾸만 생각이 복잡해진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적당히 분리된 삶을 꿈꾸며 아이들에게 은근한 독립을 바래보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아이들 진학을 고민하며 기숙학교 정보를 자꾸 찾게 되는 내 모습이랄까.
물론 대부분의 기숙학교는 경쟁률이 치열하다.
초등 고학년 시절을 ‘기숙중학교’라는 희망으로 버텼듯,
이젠 기숙고등학교를 꿈꾸며 중학 시절을 견뎌내고,
또 대학 기숙사를 꿈꾸며 고등 시절을 살아내겠지.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도 소중하면서도,
선천적으로(?) 자유를 갈망하는 내 안의 나는
또 다른 방향으로 끊임없이 손짓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어느 날 문득, 아이들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며 “그때가 진짜 예뻤는데…” 하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그 시절을 추억하며 내심 놀란다. 어른들이 말하는 '애들 어릴 때, 그때가 가장 좋은 때여' 하는 그때가, 이런 거였구나 싶어서…
그때 왜 더 예뻐해 주지 못했을까..
뽀동뽀동 귀여운 볼로 옹알거리던 아기 시절,
빠글빠글 파마머리에 매니큐어를 바르고 깔깔 웃던 그 모습,
말문이 터져 종일 수다를 떨며 온 집안을 어질렀던 시절까지—
사진 속에 남겨진 그 모든 순간들이 너무도 귀하고 소중하다.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아이들이 모두 독립한 뒤엔
우리 집이 생기를 잃고 조용해질까 봐 문득 두렵기도 하다.
티격태격 다투면서도 에너지가 넘치고,
웃음이든 고성이든 요란함이 끊이지 않는 지금 이 시기가—
어쩌면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 됐든 나는 지금,
아이들과 함께 내가 상상도 못 했던 ‘엄마’로
벌써 14년째 살아가고 있다.
엄마지만, 아니 엄마라서 더 즐겁고 싶었다.
아이들과 함께 놀고, 부대끼고, 경험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경험만큼은 꼭 부자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자연과 독서를 중심에 둔 육아를 선택했고, TV도 없이 살던 우리 집은 산으로, 들로 아이들과 뛰놀며 각자의 방식으로 놀이를 만들어 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도 해방감을 느꼈고,
정말 ‘열심히 논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됐다.
빠듯한 살림, 외벌이의 한정된 예산 속에서도 우리는 ‘잘’ 놀았다.
근교의 산과 들에서 시작된 놀이가 중고 캠핑 장비를 만나면서 캠핑으로 진화했고, ‘사교육비 아껴서 캠핑 가자’는 우리의 모토는 장박 캠핑으로 이어졌다.
텐트를 별장 삼아, 계절 따라 옷가지와 먹을거리를 챙겨 다니며 우리는 그렇게 진짜 별장놀이를 했다.
큰 아이의 초등학교 첫 여름방학에는 차에 온갖 살림을 싣고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 사려니 숲길에서 소꿉놀이를 하고, 김녕과 협재를 오가며 수영을 하고, 한라산에도 올랐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에, 우리 막내 오복이(멍멍이)도 함께였다.
알뜰히 준비한 덕에 예산은 놀랍게도 평소 한 달 생활비 수준이었지만 그 어떤 사치보다 풍요로운 시간이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에는 1년 반 전부터 특가로 발권해 둔 싱가포르발 크루즈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싱가포르까지 간 핑계(?)로 그 곳에서 한 시간 거리의 조호르바루로 자리를 옮겨 친구 가족과 만나 한 달 살이도 했다. 엄마2, 아이4, 총 6명이 6인승 승용차를 빌려타고 용감하게 시작한 특별한 경험이었다. 아이들에게도 어학원이 아닌, 수영과 근교 여행과 놀이로 새로운 자극과 자신감을 심어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시절이 지나고 중학교 입학을 앞둔 큰 아이를 바라보며 우리는 깨달았다.
“이젠, 정말 오랫동안 같이 놀기는 어렵겠구나…”
그래서 다시 한 번,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대형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이 몹시 궁금한 엄마,
파리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를 보고 싶다는 큰 아이,
크루즈면 어디든 좋다는 작은 아이.
세 사람의 마음을 모아 기획된 내 평생 최대의 프로젝트, 우리 세 모녀의 특별한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 글은 ‘세 모녀 대서양 횡단기’ 시리즈의 프롤로그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0일차, 여행이 시작되기 전의 설렘과 준비 과정을 담아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