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을 잇는 대항해를 기획하다.
큰 아이가 어느덧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초등학생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하는 시간이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더 많이 놀아주고, 더 자주 부대끼며, 더 풍성한 경험을 쌓게 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개인적으로 나는 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까지는 정말 최선을 다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꼭 어떤 ‘과목’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무엇이 되었든, 스스로의 길을 찾고 꿈을 향해 전진하는 시간이길 바란다. 물론 그 이전의 시기엔 다른 것이 더 중요한 부분이라 느꼈다.
그래서 아이들의 어린 시절엔 사교육 대신 '독서와 자연'이라는 뚜렷한 모토를 가지고 키워왔다. 자연주의 육아, 독서 습관 만들기, 다양한 체험 시켜주기 등 지금 돌아보면, 나름대로는 꽤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더라.
이젠 많이 자라 손이 갈 일도 거의 없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은 시판 냉동식품도 아니 그보다 더한 것도 크게 죄책감 없이 먹인다.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자꾸 편한 길을 찾는 스스로가 조금 우습기도, 또 짠하기도 하다.
둘째는 유난히 빠르게 자랐다. 언니가 있어서 일까. 저학년인데도 고학년처럼 의젓하고, 자립심도 강하다.
문득, 함께 한 시간보다 앞으로 함께할 시간이 더 짧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무 살이 되면 무조건 독립! 그게 우리 부부의 오랜 원칙이니까.
그래서 일까. 최근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아이들이 스스로 식사를 해결하고 혼자서도 잘 지내게 된 덕분이었다.
요즘은 갓난 아이를 키우는 지인들을 보며 ‘나는 이제 다시 못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어떻게 지나왔는지 모를 그 시간들, 밀착 육아라는 세계에서 겨우 빠져나와 이제야 조금의 자유를 얻은 듯한 기분이다.
그리고 문득문득, 너무 고맙다. 무탈하게, 건강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이. 그 것 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이번 방학은 아이와 보내는 마지막 초등 시절 방학.
그 시간을 ‘끝내주게’ 보내고 싶었다.
조금 거창하지만, 우리 가족만의 방식으로 아주 특별하게.
대서양 횡단 크루즈 여행!
중학교에 들어가면 이런 긴 여행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알기에,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용기를 내야 했다.
누군가 그러지 않았나. “여행은 시간과 돈이 아니라, 용기의 문제” 라고.
그리고 타이밍! 가격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지난 겨울, 싱가포르에서 경험한 첫 크루즈 여행이 너무 마음에 들었던 터라 이번엔 동부 지중해 크루즈를 꿈꿨었다. 하지만 겨울엔 운항하지 않았고, 비용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높아졌다.
그런데 고맙게도, ‘리포지셔닝 크루즈’라는 조금은 낯선 이름의 크루즈가 눈에 들어왔다. 해상일이 길고, 대신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그래서 우리 세 모녀가 조심스럽지만 기꺼이 도전해보기로 했다.
TIP. 리포지셔닝 크루즈란? 이동을 위해 운항하는 크루즈로, 일반 크루즈보다 훨씬 저렴하다.
장점: 여유 있는 일정, 비교적 저렴한 가격
단점: 기항지가 적고 해상일이 길다
항구는 마이애미,
종착지는 바르셀로나.
총 12박 13일의 여정.
하지만 마이애미까지 직항이 없기에 늘 가보고 싶었던 뉴욕을 경유하기로 했고,
유럽에 가는 김에 루브르 박물관이 가고 싶다는 큰 아이의 소망을 담아
파리 아웃으로 여정을 설계했다.
그렇게해서 총 일정은 이렇게 짜였다.
뉴욕 4박
마이애미 1박
크루즈 12박
바르셀로나 2박
파리 2박 → 총 23일간의 여정으로 2월 한달을 거의 모두 태웠다.
이 긴 여정이 부족한 애미의 역마살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나는 꽤나 자신이 있다.
이 여행은 아이들에게 평생 기억에 남을 값진 경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크루즈의 긴 해상일은 사색과 창작의 시간으로 채워질 테고,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 속에서 학교에선 배울 수 없는 귀한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또한 두 대륙을 무려 바닷길로 횡단한 것에 대해 스스로 큰 자부심을 가질 것이고, 해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대신 당당한 자신감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리고, 살면서 지치고 힘들 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큰 아이에겐 세상의 다양한 감각을 오감으로 흡수할 기회가 되고, 나에겐 다시 없을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될 것임을 안다.
물론, 남편이 함께하지 못해 아쉽지만… 아이들이 크면 부부만 남게 될 날도 오겠지. 그 시기가 그렇게 멀지 않았다는 게 조금은 시원하고, 또 살짝은 서운하다.
그간 아이들 앞세워 다양한 경험치를 쌓게해준다며 내 사심도 겻들여 같이 많이도 다녔는데 이제 거의 막바지인듯 한 기분도 들고 내심 아쉽긴 하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성장과정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의 경험치가 있었다면 앞으로 어른이 되기까지 또 다른 경험치를 같이 쌓아가야 할테지. 그 과정과정 또 함께 치러가야 할 것이고, 끊임없는 성장과정이 될 것이다.
그렇게 아이도 자라고, 엄마도 자라고... 한 평생을 같이 엮여 살아내겠지...
금번 여행은 정말로 특별한 여행이 될 것 임에 틀림이 없다.
뉴욕에서 마이애미로, 마이애미에서 크루즈를 타고 스페인령의 소도시들을 거쳐 바르셀로나로, 그리고 그 곳에서 기차를 타고 파리로 향하기까지...
오롯이 우리 세 모녀가 준비하고 감당해야 하는 일정이다.
그것도 영어도 짧은 엄마를 중심으로, 예산도 한정된 상황에 난생 처음 향하는 유럽인 것이다.
묘한 쾌감과 함께 내 안의 무모한 도전욕구가 되려 머리를 맑게 한다.
신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니 삶에 활력도 돋고 일상에 감사가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