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차 현장] "경찰이 오고 나서도 맞았다"는 시민들

'힘든 상황에서도 경찰분들은 프로더라'고 하는 대한민국을 바라며

by 우영

지난달 경기 김포시 장기동의 한 아파트에서 입주민이 경비원 둘을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다. 한 분은 코뼈가 부러져 수술을 받았고, 한 분은 갈비뼈에 심한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맞았다. 이런 류의 '갑질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키기에 사회부 기자 입장에서는 긴장해서 취재해야 할 주요 사건이 된다. 특히나 폭행 이유가 비상식적인 것이었을 경우 우리가 느끼는 공분은 더 커진다. 그래서 현장에 도착하면 폭행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피해자는 얼마나 큰 피해는 당했는지를 먼저 취재하게 된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술에 취한 채 미등록 차를 타고 와서는 "차단기를 왜 열어주지 않느냐"며 경비원들에게 침을 뱉고 욕을 하며 때린, 정신 나간 가해자의 행동 외에도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었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들의 대응이다. 피해자들의 말에 따르면 당시 장기지구대에서 4명의 경찰관들이 출동했다. 하지만 이들은 20분 가까이 이어진 폭행 현장에 도착해서도 적극적으로 가해자를 말리거나 체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경찰이 도착한 이후에도 계속 폭행을 당했다는 게 피해 경비원들의 말이었다. 당시 아파트 CCTV 영상을 자세히 살펴보니, 명확히 구분할 순 없지만 폭행이 이어지는 동안에 근처에서 찍힌 경찰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경찰은 범죄가 일어나는 현장을 목격한 경우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현행범 체포를 할 수 있다. 술에 취해 다른 사람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을 날리는 이번 사건같은 경우 말이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단순히 상황을 종료시킨 뒤 가해자를 사건 현장에서 좀 떨어진 상업 지구에 내려다줬다. 뒤늦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가해자는 경찰이 내려다 준 곳 근처의 호텔에서 잠을 잤다. "체포는커녕 가해자를 호텔로 모셔다줬냐"는 비판성 보도가 이어지자 김포경찰서 청문감사관실은 이들을 감찰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현행범 체포 등 현장 대응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징계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사회부 생활을 하다보면 경찰의 안이한 대응에 분통이 터진다는 제보자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러면 공보관 역할을 맡은 담당 경찰서 과장에게 전화를 해 당시 상황을 물어보면 좀 더 대응이 적극적으로 되는 경우도 많다. 임시방편일 뿐이지만. 여론에 떠밀려 뒤늦은 뒷북 징계를 하기로 한 이번 경우처럼 말이다.



이럴 땐 고등학생 때 겪은 사건이 가끔 떠오른다. 당시 구반포 근처의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일요일 점심이 가까운 시각까지 집에서 혼자 자고 있던 나는 누가 현관문을 부수는 듯한(?) 무시무시한 소리에 잠에서 깼다. 영문을 모른 채 나가보니 누군가 진짜 전기 드릴로 현관문 자물쇠를 부수고 있었다. 이게 무슨 80년대같은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당시는 2006년이었다. 너무 놀라 휴대폰으로 112에 신고를 했더니 수화기 너머로는 못 믿겠다는 듯이 "예? 지금 누가 드릴로 문을 부순다고요? 무슨 드릴이요? 문이 부서져요?"라는 반응이 들려왔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출동 명령은 빨리 내리지 않고 경찰이 이상한 대응만 하는 사이 문은 부서졌고, 비니와 마스크를 쓴 남성 2명이 내 얼굴을 보고는 우사인볼트보다 빠른 속도로 달려서 도망치는 걸 목격했다. 당시 그 두 명이 강도로 돌변했을 경우 나는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15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아 저쪽으로 도망쳤어요? 키가 얼마나 되던가요? 여기는 CCTV가 없는 단지구나. 이거 못 잡겠네"라고 하더니 가버린 기억이 난다.


현장에서 만난 경찰들을 항상 피곤한 얼굴로 격무에 시달린다고 토로한다. 실제로 맞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민들의 안전이 직결된 사건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걸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현장의 고충과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우를 장기적으로 개선해 나가기 위해서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직업 정신을 발휘하는 게 대한민국 경찰이더라'는 공감대를 만드는 게 우선일 수밖에 없다.



P.S

방송국 사회부 기자들은 사건 현장에 도착하면 사건 당시 CCTV 영상이나 차량 블랙박스 영상부터 찾게 된다. 당시 상황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객관적 자료일 뿐더러 시간이 지날수록 입수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나 카페 주인 등 CCTV를 관리하는 쪽에서 공개를 꺼리지 않아 보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경찰이 수사를 시작한 뒤 "기자들 몰려올텐데 절대 주지 마세요. 여기 집 값 떨어져요"라는 식으로 제공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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