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하게 웃고 있는 정인이의 사진을 본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며 눈물 흘리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 그 사진이다. 일부러 웃는 사진들만 보고 있지만, 멍이 든 채 슬픈 표정으로 양부모에게 안겨 있는 사진도 떠오른다. 잊혀지지 않는다. 가끔 이럴 땐 '처음부터 그 사진은 보지 말걸. 그러면 떠오르지도 않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취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사실 보기 싫다고 해서 안 볼 수는 없다. 현장에 가면 놓치지 말아야 할 장면들을 촬영하느라, 기사에 꼭 넣어야 하는 것 중 빼먹은 것은 없는지 긴장 상태로 일을 하게 된다. 감성에 취해 사건을 바라볼 여유를 갖긴 사실 쉽지 않다. 일이기 때문에 실수하면 안 된다는 부담감도 크다. 그래서 자주 일이 끝난 뒤 퇴근하는 지하철에서, 혹은 집에 와서 지금처럼 다시 현장을 회상한다. 지금 정인이의 사진을 다시 보는 것처럼.
18일 청와대 앞 기자회견에서 김도현 뿌리의집 목사님이 절규했다. 내가 "오늘 청와대가 아동 학대에 대해 어떤 언급을 해야 했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한 뒤다.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 회견에서 '입양 후 아이가 맞지 않으면 반품(?)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취지의 아주 부적절한 말을 했다"고 참석자들 여럿이 강한 비판을 한 직후였다. 이 회견에는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미혼모협회 아임맘, 국제아동인권센터, 뿌리의집 등 여러 단체가 참여했다.
발언엔 참여하지 않았던 김 목사는 이 질문이 나오자 옆의 다른 사람의 마이크를 뺏다시피 가져가더니 분노와 흥분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오늘 정말 충격적인 발언을 하셨는데요. 입양은 아이에게 가정을 찾아주는 것이지, 가정을 위해서 아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몇 년 전 학대로 숨진 은비 이야기도 꺼냈다. "2016년에 은비가 죽었습니다. 이쪽에서 두들겨 맞고 온 아이를 저쪽에 보냈습니다. 그때도 못 막았습니다. 이번에도 못 막았습니다. 회의 한 번 하고 집에 가는 사람들이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아이는 마음에 안 들면 취소하고 반품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신년 기자 회견에서 한 말이 청와대의 해명처럼 단순한 표현 실수였는지 아닌지는 이 말을 들은 수많은 시민들이 판단할 일이다. 사전위탁보호제 의무화가 우리가 가야 할 적합한 길인지도 전문가들의 조언과 다양한 해외 사례 분석을 통해 신중하게 결정하면 된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이 다시 불을 지핀 여론에 떠밀려 생긴, 이 뒤늦은 소중한 반성의 기회를 놓치게 해서는 안 된다. 분노는 강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뜨거웠던 만큼이나 빨리 사그라들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취재를 하다 보면 자주 느끼는 점이다. 뜨거운 분노를 냉철한 법적 제도적 개선과 시민들의 의식 변화로 바꿔놓아야만 하는 이유다.
지난주에 열린 정인이 양부모의 첫 재판 날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수많은 시민들의 분노는 남부지방법원 앞에 깔린 흰 눈 바닥 위에 빨갛게 퍼졌다. 눈길에 드러누워 양모가 탄 호송 버스를 막아 선 한 여성은 "야 이 미친년아. 도대체 왜 그런 소중한 아이를 네가 죽여. 차라리 입양을 하지 말지 왜 입양을 해서 죽여"라며 자지러졌다. 눈썹에 묻은 눈물은 추운 날씨에 살얼음이 되어 붙어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나도 코 끝이 찡했졌지만 그 살얼음을 기사로는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P.S
참고로 정인이 사건을 '양천 아동 학대 사건'으로 불러야 한다는 지적에 동감한다. 언론사와 기자들은 정해진 짧은 분량에 가능한 많은 내용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매번 어떤 표현을 쓸지 많은 고민을 한다. 실제로 이번 사건에 대한 호칭을 찾아보면 언론사마다 다 다르다. 피해자인 아기 정인이의 이름을 쓰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전 국민이 정인이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 흘리는 상황 속에서 생기는 전달력의 차이 때문에 언론사는 고민에 빠진다. 뒤늦게 경찰청장을 사과하게 만들고 양천경찰서장을 대기 발령 냈으며, 청와대까지 바짝 긴장하게 만든 이번 일이 정인이의 저 환한 웃음이 가져온 힘이라는 걸 알기에 기자들도 저마다 고민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