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잘나 봐야 고작 지구에서나 잘났지
내 인생에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은 손에 꼽는다.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하는 순간에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잃었던 순간에도, 심지어 영화 ’ 신과 함께‘를 봤을 때마저도 나는 울지 않았다. 참은 것이 아니다. 그냥 눈물이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나에게도 방 안에서 혼자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있다. 칼 세이건의 13부작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를 보던 도중, 보이저 1호가 지구를 촬영한 사진 ‘창백한 푸른 점’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생각에 잠겼다. 점차 눈시울이 붉어졌고 이내 눈물 한 방울이 베개를 적셨다. 이 사진은 나에게 꽤나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이후에 왜 내가 눈물을 흘렸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고 보잘것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인 걸까, 넓은 세상에 두려움을 느꼈던 탓일까, 아직도 이유를 잘 모르겠다. 다만,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나는 그저 우물 안 개구리 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내가 아무리 잘나 봐야 작은 우물 속에서 잘났다는 것.
나는 항상 자신감이 넘쳤다. 어려서부터 늘 영재라는 말을 듣고 자랐고, 대학생 시절엔 내 힘으로 꽤 큰돈도 벌어봤으며 회사에서도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내가 틀렸다는 생각을 쉽게 안하는 것 같다. 흘러넘친 자신감은 오만이라는, 채워선 안될 곳을 채워나갔다. 성과를 내지 못하는 동료를 보면 게으르다고 생각했고, 잘못된 투자로 돈을 잃는 사람을 보면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했다.(지금은 내가 그렇다) 나는 항상 옳고 내 판단은 늘 합리적이고,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그르고 비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가끔 그렇게 생각한다. 그때마다 나는 ‘창백한 푸른 점’을 떠올린다. 우주의 먼지 같은 조그만 점 속에 한없이 작은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하찮은 인간일 뿐인지 생각한다. 나는 늘 그렇게 겸손하려 노력한다.
겸손은 참 어렵다. 나 자신을 낮추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우월함을 입증하려는 인간 본연의 습성인 것일까. 이전 글에서 본능을 쫓으라 말했던 나지만 내가 유일하게 거스르고 싶은 본능이다. 나는 모자랄지언정 오만한 사람이 되고 싶진 않다. 그래서 오늘도 ‘창백한 푸른 점’을 되뇐다.
내가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다른 이를 보면서 한심하게 느낀 적이 있는가. 그럴 수 있다. 정말로 내가 남들보다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일 수 있다. 하지만 뛰어나봐야 얼마나 뛰어날 것이며 잘나 봐야 얼마나 잘났겠는가. 그러니 유난 떨지 말고 겸손하자. 우리는 모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점 속에서 살아가는 개구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