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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양 Nov 25. 2021

[책] 리틀 브라더

#8

리틀 브라더


 겉표지만 보면 가벼운 청소년 소설같다. 그래서 다루고 있는 내용도 가벼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읽고 나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리틀 브라더'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에서 따온 제목이다. 작가는 '1984'를 좋아해서 몇십번 읽었다고 하는데 '리틀 브라더'는 조금 더 현대적인 버전의 '1984'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는 비슷해보인다.


<줄거리>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17살 소년 마이키는 친구들과 함께 '하라주쿠 펀 매드니스'라는 게임을 하기 위해 학교를 빠진다. 거리를 돌아다니며 친구 세 명(버네사, 졸루, 대릴)과 즐겁게 게임을 하던 마이키는 베이교 폭발과 함께 국토안보부에 잡혀들어간다. 국토안보부는 테러범을 잡기 위한 조사라고 주장하면서 갖가지 협박과 고문을 가한다. 마침내 마이키는 자신의 핸드폰 비밀번호와 인터넷 활동기록 등의 개인정보를 국토안보부에게 넘겨주고 감옥에서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해 함구할 것을 약속한 후 풀려나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마이키는 더 이상 국토안보부를 믿지 못하게 되고, 가장 친한 친구였던 데릴이 여전히 갇혀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우울해한다. 한편, 베이교를 폭파한 테러범을 잡고 시민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목 하에 국토안보부는 시민들의 이동기록, 카드 사용 내역, 인터넷 활동 기록 등등을 수집하고 감시 경찰들의 수를 늘린다.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마이키는 온라인에서 감시를 받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인터넷망을 구축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패러노이드 엑스박스, 일명 엑스넷을 이용하는 것이다. 마이키는 패러노이드 엑스박스 CD를 구워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RFID 태그에 혼선을 빚어 감시경찰들의 업무 집행을 방해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자유를 위한 공연과 집회에도 참여한다. 인터넷과 보안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마이키는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정부에 저항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와중에 국토안보부는 감시망을 좁혀 마이키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마이키는 다시 감옥에 들어가 고문을 받을까봐 두려워한다. 마침내 그 공포가 극에 달하자 가족들에게 감옥에서 있었던 사실을 털어놓고 폭로전문기자인 바바라를 찾아가 국토안보부의 만행을 전부 이야기한다. 바바라는 마이키의 이야기를 듣고 국토안보부가 시민들을 대상으로 무슨 폭력을 자행하고 있는지에 관한 기사를 쓰게 된다. 바바라의 기사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된 시민들은 국토안보부를 몰아내고 원래의 미국을 되찾게 된다.

<끝>




<감상평>


 재밌다. 그리고 무섭다. 주인공 마이키가 겪는 일들은 지금 현재에서도 충분히 일어날만한 일들이다. 책에서처럼 베이교 폭발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현재의 세상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언제든지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감시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신용카드나 gps가 연결된 기기의 경우 동선 추적이 얼마든지 가능하고, 인터넷 검색 기록과 거리에 깔려 있는 CCTV 등등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감시당하기 쉬운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지 알게된다. 마이키가 겪은 일은 생각보다 아주 먼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 '1984'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리틀 브라더'


 '리틀 브라더'에서 주인공 마이키에게 닥친 일이 굉장히 디스토피아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현실적이기도 하다. '1984'에서는 '무지는 힘, 자유는 예속, 전쟁은 평화'라는 문구를 통해 사상 교육이 이루어지며 사람들의 집에는 '빅 브라더'라는 커다란 스크린이 사람들이 감시한다. '1984'의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교육에 의해 철저히 세뇌당하기도 하지만 빅브라더가 그들의 삶을 감시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리틀 브라더'에서 사상 교육은 없다. 사람들은 여전히 자유가 존재한다고 믿으며, 단지 일시적인 상황으로 인해 정부에게 권한을 조금 더 주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마이키처럼 경계하고 저항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당연하게" 그럴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테러범은 사회의 악이고 정부의 의무는 테러범을 잡는 것이니까 시민의 일시적인 자유쯤은 제한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책에선 마이키의 아빠나 학교의 앤더슨 선생 혹은 찰스같은 사람들이 그런 부류다. 이들은 '빅 브라더'가 넘쳐나는데도 오히려 나서서 반갑게 맞이한다. CCTV에 대해서 매우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는데, CCTV를 통해 학교의 안전, 거리의 안전, 사회의 안전이 지켜진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CCTV는 결코 강제적으로 설치된 것이 아니며 사회와 단체들의 협의 그리고 부모들의 동의에 의해 설치된 것이다. 


 사실 감시와 억압이라고 하면 엄청나게 폭력적이고, 경험하기만 하면 한번에 깨닫거나 알 수 있는 그런 형태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그 형태가 굉장히 기묘하다. 가시적이지만 인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책 속의 터키 커피집 주인과 마이키의 대화 내용을 살펴보자. 신용카드 사용 강제화를 두고 커피집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정부 말이야. 이제 정부가 전부 감시해. 신문에 나왔어. 2차 애국자법. 어제 국회가 통과시켰어. 이제 카드 사용하면 다 감시할 수 있어. 나는 반대해. 우리 가게는 손님들 감시하는 거 안 도와줄 거야.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해? 네가 커피 사는 거 정부가 아는 거 문제없어? 카드로 계산하면 정부는 지금 네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어. 네가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는지도 알 수 있고.


 커피집 주인이 말한 신용카드 사례는 단적으로 감시가 작동할 수 있는 방식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만 살펴봐도 그렇다. 정부가 감시할까봐 신용카드 사용을 걱정하는 사람을 보거나 만난 적 있는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신용카드의 이용내역이 정부의 손에 들어가 잘못된 방식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편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지불해야하는 당연한 대가로 생각한다. 이렇듯 감시가 거의 대놓고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지만 아무도 인지하지 못한다. 


- 코로나 시대, '자유'가 가지는 의미 


 2020년 코로나가 터지면서 대한민국은 방역 모범국이 되었다. 시민들의 동선 추적을 통해 어떻게 바이러스가 퍼져나갔는지 역학조사가 잘 이루어졌고 여기에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도 있었다. 한편, 유럽과 미국에서는 정부의 봉쇄 조치나 마스크 착용 권고사항에 대항하는 많은 시위와 저항이 있었다. 또 한국의 동선추적을 통한 역학조사를 '사생활 침해'라고 비난하는 일각의 해외 목소리도 존재했다. 


 나를 포함해 많은 한국 사람들이 외국의 사태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이런 전국가적인 위급 상황에서는 일부 희생이 필요하지 않은가? 마스크를 쓰지 않을 자유보다는 당연히 공공의 안전과 국가의 안보를 우선시 하는게 옳지 않은가?


 하지만 외국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에 대항한 다양한 시위와 폭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 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정부가 시민의 자유를 제한한다며 시위를 하는데 한국에서는 시위는 커녕 오히려 수긍하면서 잘 받아들이는 걸까?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리틀 브라더'를 통해 대답할 수 있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번째는 미국의 독립선언문이고 두번째는 히피와 70년대의 시위대이다.


(중략)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런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인류가 정부를 조직했으므로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피통치자의 동의에서 비롯한다. 또 어떤 형태의 정부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인민은 정부를 바꾸거나 폐지하고,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원리를 바탕으로 그런 형태의 권력을 조직해서 새로운 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 미국 독립선언문 중


 이처럼 미국의 독립선언문을 살펴보면 애초에 미국이라는 나라가 건립될 당시 자유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미국이라는 나라가 추구하는 최우선적인 가치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에 있다는 것이다. 또 미국의 교육 역시 '자유'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어져 왔고 그 결과 미국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자유는 침해해선 안되는 절대적인 가치로 여겨진다.


 '리틀 브라더'에서 국토안보부가 거리마다 커다란 흰색 트럭을 배치해 시민의 행동을 감시하고 잠복 경찰을 풀어 시민들을 잡아들이는 행위는 미국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마이키는 미국 독립선언문에 따라 자유와 행복의 추구를 파괴하는 정부를 '바꾸거나 폐지하고,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정부를 수립'해야한다고 말한다. 


 미국이 이렇게 '자유'에 대해 예민하게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히피와 70년대의 시위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저항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1960,70년대 미국에서 베트남 반전 운동이 확산되면서 기성세대의 사회통념, 제도, 가치관을 거부하고 자유와 인간성의 회복하고자 하는 수많은 시위들이 있었다. 이 시기에 반전운동이나 다양한 시위에 참여하며 도로에서 생활하고 성생활과 마약 등등 자유를 즐기는 사람들이 생겨났는데 이들을 '히피'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나중에는 '히피문화'라는 것이 일종의 고정관념처럼 미국 사회에 자리잡았다. 어쨌든 이런 '자유'를 추구하고자 하는 저항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아마 그 신념이 지금의 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이 아닌가 싶다. 


*참고 : 유럽에서도 비슷하게 프랑스의 68혁명을 시작으로 다양한 국가에서 이런 기성세대의 문화와 가치관을 거부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6,70년대를 지나 80년대로 들어서면서 세계가 점차 글로벌화되고 자유민주주의가 퍼지면서 이런 이념들 역시 세계로 퍼져 결국 1991년 미국과 소련 간의 냉전 체제가 끝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 우리의 현주소, 그리고 미래에 우리가 추구해야할 권리, '데이터권'


 미국의 전 NSA(미국 국가안보국)요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2013년 미국이 민간인을 사찰할 뿐 아니라 외국 정치인을 도청 및 감청했다고 폭로했다. 고작 2013년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 IT 기술이 훨씬 더 깊이 일상 속으로 들어온 2021년에는 얼마나 더 많은 정교하고 방대한 정보와 데이터가 정부의 손으로 흘러들어가게 될지 상상도 할 수 없다. 미국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민간인을 사찰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어디있는가? 국가의 안보와 시민의 안전이라는 미명 하에 우리의 개인정보는 충분히 국가의 손아귀 안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지금 정부가 그렇게 하는 중이라고 해도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닐 것 같다. 


 만약 우리나라에 독재 정권이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 몇년 전, 계엄령 문건 사건이 실제로 터졌더라면 어땠을까?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정부는 바로 언론 통제부터 시작해서 시민들을 감시하고 억압하지 않았을까? 과거 역사를 보면 알다시피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이 전개되었을 때도 당시 독재 정부는 언론부터 막았다. 광주에서 시작된 민주항쟁을 막기 위해 군부가 시민학살을 자행했다는 사실은 나중에 시간이 더 많이 흐른 뒤에야 밝혀졌다. 2020년대에 이런 항쟁이 벌어진다면 디지털 독재는 필연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완전한 디지털 독재는 아니지만 비슷한 형태의 모습을 현재 중국 사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은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는 '빅브라더 정책'에 대해서 많은 비판과 비난을 한다. 고성능 카메라와 AI를 이용한 안면인식 기술을 통해 사람들의 얼굴을 식별하고, 등급을 매기고, 그로 인해 사회 공공 시스템을 이용을 제한하는 행위가 비인간적이고 부당해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사회도 한 순간에 중국의 '빅브라더 정책' 못지않은 감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 정부에서 '빅브라더 정책'을 실행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는 이미 그런 감시 시스템을 실행하기 위한 최적의 상태에 있다. 또한, 코로나시대를 맞아 증명되었듯이 정부는 '역학조사'든 '전염병 예방'이든 얼마든지 갖가지 이유를 붙여 시민들의 안전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사생활과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또한 앞으로 다가올 세상은 더 사생활과 자유가 존중되지 않을 사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인공지능 기술은 데이터가 한 곳에 모여 중앙집권화될수록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이용할 수 있눈데, 이런 데이터를 관리하고 분석할 수 있는 역량, 인적자원, 그리고 자본을 가진 것은 주로 기업이나 정부이기 때문에 시민 개인이 원하든 원치 않든 데이터는 계속해서 어디론가 모이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민은 자신의 정보 데이터를 내주면서도 그 소유권에 대해서는 주장할 수 없게 된다. 즉, 한 사람의 개인 신상정보부터 감정, 신체, 행동 정보까지 다방면으로 수집된 데이터의 소유권에 대해 지금부터 정책/법률적으로 논의하지 않으면 우리는 모든 행동과 선택을 감시받고 통제당할 위험이 점점 커지는 세상에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런 세상이 도래하기 전에 미리 생각해봐야할 문제들은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 글을 마치며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국가가 안보를 이유로 시민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일방적인 의견만 개진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 의견(안보를 위한 시민의 감시는 불가피) 역시 함께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마이키와 아빠의 갈등, 학교에서 갈베스 선생과 앤더슨 선생의 토론 수업 등을 통해 각 진영이 가지는 '자유'를 바라보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으며 쉽게 타협될만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더 많은 기술의 발전, AI, 과학과 로봇 등등 우리가 맞이할 미래가 흥미진진하고 기대가 되기도 하지만 마냥 밝지만은 않아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데이터의 소유권, 개인정보의 침해, 안보를 위해 정부가 시민의 자유를 침해할 권리 등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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