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은 여행의 선물
인생은 기준은 있을지 몰라도 정답은 없다. 정답이 있다면 모든 사람의 삶이 똑같아질 것이다. 고민도 시행착오도 없을 것이다. 그저 제시된 답안대로 살면 되니까.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은 개성이 없는 인형들이 움직이는 풍경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하느님은 그걸 아셨기에, 이 세상에 같은 사람 하나 없이 모두 다르게 빚으신 게 아닐까. 그러므로 정답이 없는 삶, 스스로의 의지와 운명에 따라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진정한 답에 가까울 것이다.
쌍둥이라 해도 서로 다르다. 겉보기엔 닮았어도 속을 들여다보면 모두 다르다. 사람에게 같은 환경이 주어져도 각자의 운명을 다르게 흐른다. 물감을 주고 그림을 그려보라 하면 하나같이 다른 그림이 나오듯이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이를 두고는 “행운아”라 하고, 또 다른 이를 “불운하다” 말한다.
둘이 함께 여행할 때도 문제가 생기듯, 가족이 늘어나면 그만큼 풀어야 할 문제도 많아진다. 자녀가 결혼해 독립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그 이후에 더 복잡한 일들이 기다린다. 자녀의 삶이 부모의 인생에 큰 변수가 되기도 한다. 세상 사는 게 본인 혼자만의 여정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삶의 중반쯤에 이르면 "다 살아 봤니?" "무자식 상팔자지" 하는 어른들의 말을 듣게 된다. 그때는 그 말의 뜻을 모르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 말이 단순한 푸념이 아니라 삶의 체험에서 나온 진리임을 알게 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결혼과 독립으로 끝나지 않는다. 며느리, 사위, 손주가 더해지며 기쁨도 많아지지만 그만큼 근심도 늘어난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자식을 생각하기 싫다고 해서 생각이 멈추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평안은 자식들이 편안할 때야 비로소 찾아온다.
일찍 고통을 겪은 사람이나 늦게 시련을 맞는 사람이나, 다만 그 시점이 다를 뿐 인생의 굴곡은 누구에게나 있다. 내가 소년기였을 때 부모는 장년기였고, 내가 노년이 되면 내 자식이 장년이 된다. 세대만 다를 뿐, 인생의 희로애락은 순환한다.
어느 집이든 사연이 있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이 없는데 불만으로 가득해 결국 노년에 이혼하는 부부가 있고, 그 부모의 삶을 본 자녀는 결혼을 두려워 하다가 혼기를 놓쳐 독신으로 지내는 것을 보았다.
-지인 부부는 뇌성마비를 앓는 딸로 인해 평생의 시련을 겪는 것을 보았다. 아이를 시설에 맡기기 전, 더 큰 불행을 막기 위해 불임수술을 시켜야 했다는 그 부모의 고백을 듣고 함께 마음이 아팠다.
-또 아파트 이웃 중 10년 사이에 두 집이나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고 비통해하는 것을 보았다. 한 어머니는 걸어다니면서도 아들 생각에 눈물이 줄줄 흘러 견딜 수가 없다하였다.
-어떤 부부는 아들과 며느리가 이혼해 늙은 나이에 손자를 키우느라 고단하다고 씁쓸해 했다.
이렇듯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없는 집은 없다. 인생은 한쪽이 채워지면 다른 한쪽이 비어간다. 교우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을 한다. “내 십자가가 힘들다고 내려놓으면, 더 큰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다”
세월이 흐르며 이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문제가 없으면 인생이 아니다”라는 말이 저절로 입에서 나온다. 인생 전체를 보면 결국은 공평하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남의 불행에도 마음이 쓰이고, 내 고민도 한결 견뎌낼 힘이 생긴다.
힘든 일을 겪지 않았다면 교만해지고, 남의 아픔을 이해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결국 인생의 시련은 나를 낮추고,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나에게 주어진 여정이 고맙다. 인생은 여행과 같다. 비행기의 일등석을 타고 일류호텔에 묵는다고 해서 꼭 행복한 여행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배낭 하나를 메고 떠난 여행에서도 더 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낯선 이들과의 만남, 예기치 않은 사건 속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시야가 넓어진다. 젊어서의 고생이 훗날 인생을 단단하게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인생은 여정만 있을 뿐이다. 그 여정에 감사하며 걸어가는 것이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