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시 3편) 사계로 건너는 삶

-삶은 언제나 내가 서 있는 계절은 묻는다-

by 배니할


1. 철은 계절처럼 온다


철은 계절을 아는 것이다.

자연의 순환을 몸으로 이해하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을 사계절에 비유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되돌아오듯

사람의 삶도 정해진 순환 속을 걷는다.

이 이치를 깨닫는 것을

사람들은 ‘철이 들었다’고 말한다.


철은 억지로 드는 것이 아니다.

계절이 때가 되어 오듯

철도 삶의 시간 속에서 스며든다.


다만 상황이 돌변하면

봄에 갑자기 가을바람을 맞듯

사람은 생존 본능에 따라

갑자기 철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인생의 깊이는

조급하게 앞당긴다고 생기지 않는다.

사고와 깨달음은

시간 속에서 숙성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철이 드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나면

사람은 또 한 번 철이 든다.


부모와 자식은

서로 거꾸로 가는 존재다.

자식이 봄일 때

부모는 이미 가을을 향해 가고,

자식이 가을이 되면

부모는 낙엽이 되어 흙으로 돌아간다.


일찍 부모를 여윈 사람은

빨리 철이 들고,

부모가 오래 곁에 있는 사람은

그만큼 절실함이 늦게 온다.


‘철이 든다’라는 것은

단순히 어른스러워지는 일이 아니다.

자신이 지금

삶의 어느 계절에 서 있는지를

깨닫는 일이다.


부모가 걸어간 길 위에

나도 어느새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비로소 철이 든다.


그 깨달음은

자연의 순리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알게 하고,

인간의 유한함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리고 겸허해지는 마음까지 함께 데려온다.



2. 당신이 떠난 뒤에야


젊은 날 부모님을 잃고 나면

계절은 제 순서를 잃은 채

마음 속에서 오래 헤맨다.

봄도 여름도 오지 못한 자리에서

가을과 겨울이 먼저 찾아온다.


아직 기대어 울고 싶은 날들,

부르기만 해도 힘이 되었을 그 이름.

그토록 귀찮게만 들리던 잔소리조차

이제는 바람처럼 스며와

가슴을 적신다.


그제야 알게된다.

흘러보내던 말 한마디,

무심히 받던 눈길 하나가

모두 사랑이었다는 것을.


위에서 아래로 흐르던 사랑은

멈출 줄 모르던 강물처럼

내 삶을 적시며

오늘의 나를 길러냈다.


부모님,

당신들이 떠난 뒤에야

나는 철을 배웠습니다.

받을 수 없게 된 그 사랑 앞에서

비로소 사람이 되었습니다.



3. 떠남을 준비하는 품위


요즘 주변의 지인들이 하나둘 떠나는 것을 보며

나는 알게 된다.

이제는

언제 가더라도

억울할 나이가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생각한다.

남은 내 삶은

오히려 내 식대로,

명은 하느님이 부르실 때까지

당당히 살고 싶다고.


약간의 외로움은 괜찮다.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것이

그보다 더 중요하다.


노년에 건강을 챙기고

운동을 하는 이유도

오래 살고 싶어서가 아니다.


병들어 눕고,

자식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다.


사람은

자기 몸과 마음을

스스로 돌볼 수 있을 때까지만

사는 것이 좋다고

나는 믿는다.


가장 두려운 것은 치매다.

자신의 의지와 생각을

서서히 잃어가는 병,

그것은 죽음보다 더 두렵다.


그래서 삶은 아이러니하다.

치매든 부모를 정성껏 돌본 자식들이

시간이 지나

가장 깊은 깨달음에 닿는다.


인간의 본성,

생의 무게,

돌봄의 의미까지도.


그럼에도 나는 바란다.

너무 오래 살아

자식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다.


그럴 바에는

적당한 때

하느님께서

나를 데려가 주시기를 바란다.


자연의 순환 속에서

나도 내 자리를 알고

조용히

떠날 준비를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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