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가 대학 합격한 날

by 배니할

짬뽕으로 축하하다


띠 리 리 릭~
퇴근헌 남편이 방문키를 누르는 소리다.
나는 일어서 들어서는 남편에게
“축하합니다.”라며 말했다. 그리고 가방을 받아놓고는 대뜸 ,


“여보 우리 저녁 안집에서 짬뽕시켜 먹어요.”
“응, 왜?”
“우리 손녀 대학 합격 통지서 받은 기쁜 날이잖아요. 잔치국수 대신 짬뽕으로라도 축하해야죠. 대구 애들한테도 한 턱 쏘았어요. 좋은 날엔 국수 먹는 풍습이 있다고 아이들에게 의미를 가르쳐 주라했지요.
“잘했어. 아까 전화해서 알려줬어. 참 기특하고 기쁜 일이야.”


남편의 일 때문에 잠시 따라와 원룸에 묵고 있다.

주인집이 중화요리집을 하고 있다.
나는 냄비를 들고 주인아주머니께 짬뽕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주방에서 요리하던 아저씨가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국물을 조금 더 넣어드릴게요.”
카드를 내미니 손사래를 치신다.
“그러면 또 못 오죠.”
지난번 짜장면도 ‘환영’이라며 돈을 안 받으셨던 분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꼭 결제했다.


일 인분은 딴 그릇에 덜어놓고, 볶음밥과 김치에 짬뽕을 곁들여 의미를 생각하며 먹으니 맛이 더 좋은 것 같다. 배가 부른 포만감만큼 오늘 손녀의 합격은 우리 부부 마음도 가득 채웠다.


외손자 석이는
“누나, 공부 좀 했네.” 하고 웃었고,
그 옆에서 미나는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나 대학 갈 때 할머니 없으면 어떡해요?”
“걱정마. 할머니 앞으로 십 년은 거뜬해. 네가 대학 갈 땐 내가 여든여덟인데도 팔팔할 거야.”큰소리를 치고 나서야, 아이가 벌써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마음에 와 닿았다.


손녀는 수능 점수로 세 곳에 지원했는데 두 곳에서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정작 원하던 학교에서는 소식이 없어 차선의 학교에 등록금과 기숙사비를 보냈다 한다.


그런데 오늘, 기다리던 학교에서 합격 통지서가 왔다. 반수를 생각해 기숙사도 1인실로 신청했었다니, 그 마음이 얼마나 조마조마했을까. 무엇보다 이제 입시의 긴 터널에서 벗어나, 원하는 곳에서 마음껏 공부할 수 있게 되어 더 기쁘다.


도서관에 있을 때 손녀가 전화로 소식을 전했다.
“네가 태어났을 때 그렇게 기뻤는데, 오늘도 그만큼 기쁘구나. 지금 옆에 있으면 꼭 안아주고 싶다.”


그 말을 하고 나니 더는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도서관을 나왔다.
이미 등록한 학교에서 환불을 받으려면 며칠 걸린다 하며, 다시 등록 기한을 맞출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어 기쁨을 나누며 물어보니, 다행히 결제는 가능하다 하여 마음을 놓았다.


손녀가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시간이 영화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며느리의 고생이 특히 컸다.
학원을 운영하며 딸을 뒷바라지했고,
따님 곁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고 사랑해 주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또 얼마나 기쁘실까.
아빠가 중요한 시기에 정서적으로 곁을 지켜주고, 학원 라이딩을 해 준 것도 큰 힘이 되었으리라.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온 시간이 오늘의 결실로 이어진 것이다.


내 손녀는 아기 때부터도 특별했다.
세 살 무렵부터 인성이 행동에 자연스럽게 드러났고, 차분하고 고운 태도는 자라면서도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조신하기만 한 아이인 줄 알았는데, 학교 행사에서 무대위 사회를 보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또래들 앞에서도 능숙하고 당당한 모습이었다.
선생님들께도 칭찬과 사랑을 많이 받고 학교생활을 했는데, 이 소식을 들으시면 다들 기뻐하실 것이다.
3년동안 기숙사 생활을 해서 사제간과 친구들과의 관계가 돈독했다.
그런 손녀니 양가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이 당연하다.


어찌 이 많은 좋은 인자만을 한 몸에 받았는지, 하느님의 축복이라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아이가 내 손녀라니,
우리 부부는 그저 감사할 뿐이다.


첫 방에 허락하지 않으신 하느님의 뜻을 내 나름 생각해 보았다.
좌절과 겸손과 기쁨이란 맛을 보게 하려고 하느님이 한번 들었다 놓았다고나 할까.
아마 이 약을 먹은 손녀는 남보다 더 학창생활을 즐기며 보람있고 행복하게 지낼 것이다.
물론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중심을 잃지 않으며 신앙 안에서 살아가기를.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량없는 주의 은혜
어찌 이루 말하랴


2026년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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