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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자 Mar 07. 2024

가라앉고 싶은 사람들

어둡고 깊은 바다 아래로 가라앉으면 괜찮아질 수 있을까.















  평소 주변의 것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그저 바라보다가 시간이 지나면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떠한 감상이나 느낌, 생각도 휘발성이 강해졌다. 주변인의 감정표현도, 바람에 실려 오는 숲속의 향기도, 맑은 하늘에 떠가는 구름도 어지간해서는 마음 까지 스며들어 자신들만의 고유한 색을 입히지 못한다. 이래도 괜찮은 것인지에 대해 한참을 고민했던 적이 있었지만, 나의 이런 상태를 조금이나마 예전처럼 되돌릴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니,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져서 고민을 멈추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점차 가라앉고 있었다.


  나를 가라앉게 만든 무언가가 있었는지 아니면 그저 내가 스스로 가라앉고 싶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후자에 가깝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더 이상 무언가에 마음을 다하는 일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마음드는 것들을 발견할 때마다 내 기준에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미성숙이 원인이 되어 실패를 거듭했던 경험은 더 이상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게 되어버리기 충분했다. 얼마나 준비되고 얼마나 성숙한 사람이어야 그토록 바라왔던 그 모든 것들이 내 곁에 머물 수 있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어느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을 때, 마음속 깊이 남겨진 공허를 피부의 살갗 아래로 느끼게 되었지만, 동시에 일정 수치 아래에서 고요히 일렁이며 선을 넘지 않는 평화가 찾아오기도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넘치지 않고 외려 모자란 듯한 감정과 그로 인한 평화가 마음에 들었다.


  이런 방식으로 가라앉기를 바라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몇몇 사람들은 저마다 크기는 달랐지만 대개 엄지손가락 넓이의 구멍이 뚫린 나룻배를 바다 한가운데 띄워 놓은 듯했다. 개중 J는 기억에 특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었다. 심리상담을 주제로 모인 오픈 채팅방에서 알게 된 J는 육지라고는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작은 배를 침대 삼아 편안히 누워있을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 배에도 구멍이 있었지만, 그 위로 몸을 누인 J 덕에 빠르게 바닷물이 차오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라앉고 있음은 분명했다. 가끔 보이는 J의 이야기에는 자신을 포함해서 주변에 대한 관심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J의 일상은 그저, 보통 멍하니 공기를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거나, 침대에 누워 유투브 쇼츠를 보는 것을 낙으로 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직업이 있는지, 가족이나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있는지가 궁금했지만 보통 새벽 시간에 깨어있는 것을 보면 그런 것들은 별 의미 없을 것 같아 묻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J는 그저 시시때때로 자신이 오늘 먹은 것을 이야기하거나 좋아하는 노래, 인스타그램 쇼츠 주소 따위를 채팅방에 올리곤 했다. 보통 J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답변을 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는 편이어서 그것을 대화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J도 누군가가 대꾸해주기를 바라면서 그런 것들을 채팅방에 올리는 것 같지는 않았다. 드물게 누군가가 J의 메시지를 보고 흥미를 가져도 J가 그것에 대해 성심성의 껏 답장하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런 J와 보다 깊은 내용으로 대화를 나누고 지금까지 기억에 남길 수 있게 된 것은 우연한 대화 중에 나온 ‘윤도현-박하사탕’이라는 노래 때문이었다.     



열어줘 제발 / 다시 한번만


두려움에 떨고 있어


열어줘 제발 / 다시 한번만


단 한번만이라도     



  어떤 대화로부터 이 노래와 가사가 나왔는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J는 이 노래에서 이 부분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게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는지도 물었다. 많은 생각이 교차되는 질문이었기에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잠들어있을 새벽 4시, 우리의 대화 속에서 나의 작은 고민과 망설임도 화면을 들여다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보이지 않는 침묵이 매서운 긴장감을 연출하기도 한다. 미처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도로 삼키는 나의 표정을 읽을 수 있을리 없는 J는 대화가 끊어질새라 잠깐의 공백을 서둘러 메우려 애쓰면서, 자신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언제든 어떤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도 이야기했다.


  이미 많은 시간을 후회로 보냈고 그 시간동안에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서 내린 결론은 여전히 알 수 없다고 했다. 유일하게 이 괴로움과 후회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그저, 그날의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부딪쳐보는 것뿐이지만 사실 그런 것은 불가능하니 마음에 생긴 구멍 위에 드러누워서 최대한 생각을 멈추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나는 J의 후회되는 순간이 정확히 무엇이냐고 묻지 않았다. 경험을 바탕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그것을 남에게 설명하는 것은 이미 수없이 많이 해봤을 것이었고, 동시에 자신의 감정도 여러 차례 용기를 내어 입 밖을로 꺼내 보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마음은 여전히 과거의 끔찍한 악령에 사로잡혀 고문을 당하고 있을테고, 누군가의 공감이나 위로, 나의 이야기 같은 것들로 괜찮아질 수 없다는 것도 오랜 시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질문 대신 부디 행운을 빈다고 말했다. 어설픈 위로가 J에게 도움은커녕 괴로움만 더 가져다줄 수 있다는 생각에 다른 말은 일절 꺼낼 수가 없었다. 그저 예상치 못한 불행으로 오랜 시간 고통받았듯이, 예상치 못한 행운으로 불행을 덮고도 남을 만큼 행복하길 바랄 뿐이었다. 나나 J나 우리는 모두 가라앉고 있었지만 실은 느닷없이 닥쳐온 불행으로부터 제발, 다시 한번만, 단 한번만이라도 간절히 빌고 빌었음에도 일말의 자비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무력함에 잡아먹히고 만 것이 아닐까.


  J는 행운을 빈다는 나의 말에 고맙다고 짤막하게 답했다. 그 뒤로 J는 가끔 차를 타고 지나가며 본 나무들이나 숲과 구름의 풍경 사진을 오픈채팅방에 올렸고, 그것이 가끔 눈물 나게 아름답다고 이야기했다. 그때는 그것이 점차 회복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2024년 1월 27일, 지난 한주 중에는 가장 따뜻했던 날 J는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부디 그곳에 신께서는 내가 아직 머무는 곳의 신보다 자비로워서 누군가의 말처럼 견뎌낼 수 있는 시련만 주시길 간절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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