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일이다. 앞으로 어떤 가정을 꾸리고 싶은지 각자 생각을 나누는 상황이었다 나는 "가고 싶은 집"이라고 답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내 대답을 오래도록 기억했다. 나는 가고 싶은 집을 꾸리고 싶었다.
집에 가고 싶지 않을 수 있다니? 내 경험 상, 그럴 수 있다. 더불어 나는 집을 떠나 있어도 집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내가 학교에 있는 동안, 부모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아파트 앞에 서면, 1층에 놓인 술병을 하나둘 세곤 했다. 간밤의 피해를 가늠하고 현재 상황을 예측하려는 자연스러운 노력의 결과였다. 집은 폭력의 공간이자 전쟁터였고, 가고 싶지 않은 곳이자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살기에 돌아가야 하는 곳이었다. 또한 미성년자에게 달리 갈 곳이 있던가. 집은 내가 가진 유일한 선택지였다.
네 살배기 천둥번개를 품에 안고 가끔 생각한다. 너희는 집을 어떻게 여길까. 집은 너희에게 가고 싶은 곳일까? 나는 이제 가고 싶은 집을 꾸렸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우리 집이 가고 싶은 집이 되기를 소망한다.
몇 주 전 천둥이가 돌봄 선생님 집에 살 거라고 했다. 그 말은 진심이었다. 아이는 금요일 밤 퇴근하는 돌봄 선생님을 졸래졸래 따라가, 하룻밤 자고 왔다. 나는 네 살배기 반항에 어이없으면서 웃음이 났다. 네가 우리 집에 살기 싫다는 거지? 라며 심술도 났다. 하지만 엄마인 내가 먼저 숙이기로 했다. 천둥이가 없으면 제일 아쉬운 사람은 바로 나니까. 영상통화로 천둥이에게 말했다. "엄마가 앞으로 화 안 낼게. 요새 엄마가 바쁘다고, 화 많이 내서 미안해. 천둥아 엄마랑 같이 살자. 사랑해" 천둥번개가 독립하는 날까지, 부모와 사는 일을 편안하게 여기면 좋겠다. 우리에게 맑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겠지만, 어떤 날에도 집은 여전히 가고 싶은 장소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