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정도 내려오던 머리카락을 단발로 싹둑 잘랐다. 보는 사람마다 어떻게 과감히 변신했는지 물었다. 나는 "탈모 때문에요"라며 웃었다. 정말이다. 탈모 때문에 잘랐다. 그리고 이제는 '탈모' 때문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탈모를 이야기해야겠단 생각은, 남은 머리카락에게 고마움을 느낀 후로 자연스레 생겨났다. 당시 임상심리전문가가 되기 위해 병원 수련을 받던 중이었는데,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내 내담자들에게 상담에서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좋아질 것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나는 어디에도 탈모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는다니 언행불일치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담자들이 부럽기도 했다. 내담자들은 상담에서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던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지고 더 이상 문제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탈모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다. 나는 이야기할 대상과 기회를 골랐다. 친구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다가, 탈모 때문에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친구는 깜짝 놀랐고,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하나 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실 주변에 탈모 이야기를 한다고, 탈모가 좋아지진 않는다. 하지만 그간 탈모 때문에 느꼈던 고립감과 외로움, 부적절감이 줄어들었다. 친구가 내 이야기를 따라 아파하고 속상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소중한 존재라는 느낌을 받았다. 더불어 친구 앞에서는 내가 부끄럽지 않았다.
하루는 연구실 맞은편에 앉은 선배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나 탈모 심해져서 상담 못하면 어쩌지? 내담자들한테 부끄럽고, 내담자들도 탈모인 상담자에게는 안 올 거 같아." 언니는 답했다. "뭘 그걸 걱정해. 가발 쓰고 하면 돼." 우리는 함께 웃었다. 나는 탈모가 심해지면 가발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았다. 그저 언니는 가발을 쓰기까지 내 마음 부침을 알아주겠구나, 가발 쓴 나도 평소처럼 대해주겠구나 싶어서 고맙고 울컥했다. 어디에도 하지 못하던 이야기를 소중한 대상에게 털어놓는 일이 가져오는 효과가 놀랍지 않은가? 상담자로서도, 일상인으로서도 나는 '비밀을 털어놓을 때 벌어지는 기적'에 자주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