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게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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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전혀 몰랐던 내가 MS-DOS도 알게 되고 D-BASE로 프로그램을 짝서 팔 수도 있었던 것도 근 몇 개월간 저녁과 밤 시간을 몽땅 희생시켜 얻은 결과였다.
(* 얼마나 재밌으셨을까? 나도 내가 모르는 것들을 혼자 사부작 알아가고 적용해 보는 재미에 홀라당 빠져버렸다. 그랬더니 세상에 못 할 일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전부는 아니더래도 잘 못 알고 있었구나를 깨달아버렸고, 모든 것에 no를 외치라고 하셨던 것처럼 생각을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고 이건 왜 안 되는 건데? 이건 왜 되는 건데? 그 이유를 하나씩 뜯어보니 세상이 놀이터가 되어버렸다. 이 재미를 누가 알까? 일단 세이노 어르신은 알아버렸고, 그 밖에 다른 사람들도 안 사람들이 있겠지. 그 사람들은 아마 지독하게 알겠지. 이 세상이 쉽지 않지만 마냥 어렵지도 않다는 걸)
명심해라. 내가 믿고 있는 원칙은 단 하나. 모르면 괴롭고 알면 즐겁다는 것이다.
(* 일이 괴로운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다. 스킬이 부족해서 그렇다. 알고 나면 능숙해지면 그보다 쉬운 일은 없고, 점점 머리가 확장되어 간다. 물론 변수들도 있지만 이제는 그 변수마저 틀어막는 게 아니라 그 변수를 가지고 놀게 된다.)
무엇인가를 잘하면 재미를 느끼기 마련이고 잘 못하면 재미고 뭐고 없지 않겠는가, 즉 재미를 느끼느냐는 것과 잘하느냐 못하느냐 하는데 비례관계가 있다. 무엇인가 잘한다는 건 그것에 대해 많이 알고 있기에 가능하고, 잘하니까 재미도 생기는 것이다.
(* 내가 퇴사 후 재밌어서 무아지경이 된 일은 블로그에 글 쓰고, 글을 쓰다 보니 이름도, 사는 지역도 모르는 사람들이 글을 써보라고 몇 가지 링크를 던져주기도 하고 먹는 브런치만 알았는데 글쓰기 플랫폼도 알게 되고 글을 쓰는 게 하나도 어렵지가 않다. 누가 딱히 평가를 하지도 않고 수익을 내고 있지도 않으니 그냥 술술 나온다. 수익을 낸다고 하면 또 망설여지겠지 이런 글을 누가 볼까? 또 얼마나 있어 보이는 단어들로 포장을 해야 할까? 그래야 얼마나 팔릴까? 그런 고민은 이제 딱히 하고 싶지가 않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이 취미가 나한텐 수익화 작업으로 덕지덕지 도배돼서 멈춰지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10분 만에도 줄줄 글을 쓴다. 잘난 척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쓰는 거랍니다. 저는 잘나지 않았고, 그냥 평범합니다. 평범 그 자체지 제가 무슨 특별하겠습니까.)
재미는 그 일에 대하여 얼마나 관심을 쏟고 관련된 지식을 얼마나 많이 갖고서 경험하는가에 따라 좌우되는 문제이다.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의 구조 전체를 파악하는데 필요한 지식을 흡수하고 경험을 하다 보니 점점 더 많이 알아가게 되고 더 많이 알기에 재미도 느끼고 돈도 벌게 되니 즐거움도 배가 된다.
(* 재밌게 되면 그 일과 관련된 지식들을 흡수하는 재미에 빠져버리게 된다. 내가 책이 좋았고, 책이 이전엔 잘 안 읽혔는데 참 이상하게도 스트레스가 그렇게 나쁜 것인지, 스트레스 요인들을 제거하고 나니까 내 뇌는 깨끗해지면서 책을 읽는 족족 머리에 박히던 게 아닌가. 거기다 플러스 내가 어린 나이가 아니다. 반 육십이 조금 넘는다. 그러면서 내가 경험했던 사회생활들까지 접목시켜지니 이해가 더 잘되는 것도 있었다. 그래서 결국 연륜 또한 아무리 지식이나 이론이 많아도 세월을 못 겪었으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았겠지만 20살 때부터 나는 열심히 굴렀다. 물론 진짜 피를 토하는 만큼 구른 건 아니고 혼자 아르바이트도 쉴 새 없이 했고, 직장에 취직하면 남들이 보던 안 보던 똑같이 했다. 물론 마지막 직장에선 아무도 없는 그 구조에서 답답해서 전화기를 돌려놓고 낙산사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자살이 없다고? 좋아해야 할까? 나에겐 업무량이 없는데? 업무량이 많은 곳이 싫어서 없는 곳 자살시도자 4회기 면담 후 종결되니까 괜찮지 않을까? 이런 마음이었다. 근데 실상 현장에 가보니 그렇지 않았다. 1년 간 진행한 사업 평가를 해보게 되면 그 결과가 드러난다.
자살시도자 분들의 자살률이 그래서 얼마나 낮춰지게 됐는지, 그 지역사회뿐만이 아니라 병원도 119도 경찰도 다 자살실무자들이다. 자살예방센터에게만 탓할게 아니라 모든 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급성기나, 자. 타해 위험성이 높은 대상자들을 안정시키고 나서 다시 재시도가 발생되지 않게 어떻게 조치를 취했는가. 그들과 라포를 쌓기 위해, 신뢰를 쌓기 위해 몇 번을 들여다 보고 몇 번을 설득했는가. 왜 그는 자살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됐나. 정신질환 60%, 그 외 사유 40% 정신질환이 없어도 자살로 돌아가는 사람이 열 명 중 네 명이라는 것이다. 낮은 수치가 아니다. 직장 내 괴롭힘. 그건 정신질환이 사유가 아니고 그 외 사유에 먼저 선행돼서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보통 여성은 결혼해서, 남성은 군대에서 정신질환이 초발 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변화된 인생 굴곡과 스트레스 환경에 놓였기 때문이다. 결혼하면 남성들도 고생하긴 하지만 요즘은 시대가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요즘은 며느리들이 더 무섭다고들 하지만 뭐 요즘 이론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
싹박가지없는 며느리 외에 웬만하면 자기 자신을 참고 희생하는 며느리도 많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제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기에 이제는 참지 않기도 한다. 인생이 한 번 뿐이고 그 여성 또한 귀하게 자란 딸이기 때문에 며느리라는 타이틀이 딸려왔다고, 며느리라는 업무만 죽어라 고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돈으로 유모나 집안일 아주머니나 고용하지 않는 이상 며느리로의 역할도 딸려오는 게 있다. 이건 사위들도 마찬가지겠지. 사위들은 어떤 역할들이 딸려오게 될까? 요즘은 외벌이가 아닌 이상 맞벌이라면 남성들은 집안일을 똑바로 해야 할 것이며 생활비를 두둑하게 주지 않는 이상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두둑하게 줘야만 대우를 해주네 마네는 아니겠지만 바람, 도박, 폭력, 그 외 본인의 아버지 시절과는 전혀 달라졌다는 말이다.
내 친구 중엔 맞벌이하는 친구가 있고, 그 남편이 집안일을 거진 재밌게 도와주는 모습을 보고 "우와, 진짜 다정다감하시고 집안일도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내 친구가 힘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던진 말이었다.) 그랬더니 그 남편분이 하시는 왈 "요즘에 다 맞벌인데 집안일까지 안 하면 큰일 나요."라고 하셨다.
아무리 매일 열심히 해도 눈에 띄지 않는 일이 집안일이다. 그러니 우리 엄마는 평생을 집안일을 손에 놓지 않고 하셔서 그런가. 손이 일찍이 쭈굴쭈굴해지셨다. 핸드크림을 습관적으로 바르고, 물도 자주 마셔야 된다고 누차 말씀드려도 쉽지 않다. 전주시에서 만난 도인도 엄마 손을 보고 그랬다. 아니 지금 나이면 아직 이럴 나이가 아닌데 손을 좀 관리를 해야 하는데 우리 엄마도 스스로의 관리는 무딘 편이다.)
일을 사랑하지도 않으며 즐기지도 못한다. 그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억지로 한다는 생각을 한다.
(* 일을 사랑해라.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이 당신을 어떤 길로 인도해 줄지 모른다. 일을 왜 하는가? 물었을 때 그냥 먹고살라고 하는 일이죠. 월급 받고 월세 내야죠. 하는 것에서 그친다면 평생 그 굴레에서 계속 쳇바퀴처럼 지낼게 뻔하다 거기서 멈추지 말고 점프할 생각을 갖고 쳇바퀴를 재밌게 굴려봐라. 천천히 수레바퀴는 움직이고 있다고 하니, 그 과정에서 대신 이상한 놈, 착한 놈, 나쁜 놈 포지션도 생각하고 굴러가면 더 재밌다.
똑똑한 머리를 갖고 어떻게 써먹을지도 고민하란 말이다. 화이트 해커를 할지 블랙해커를 할지. 그 똑똑한 머리를 갖고 범죄자가 될지 아님 보이지 않는 영웅이 될지를 돈은 어느 정도 모으고 나면 흥미나 감흥이 떨어진다고 한다. 그러니 돈이 절대적 행복을 끌어다 주지 않는다는 것. 그럼 당신은 무엇에 행복한지 행복함의 피라미드는 무엇인지를 고민해라.)
경고 : 일을 완전히 알려고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문직 종사자들도 면허증이나 자격증 하나를 따면 어이상 공부를 하지 않는다.
(* 나도 그랬다. 정신건강전문요원은 수련이 끝나면 공부할 일이 없는 줄 알았다. 그래서 4-5년 차에 동기들이 대학원으로 빠지기도 했다. 머리에 집어넣는 지식들은 많은데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지식, 새로운 이론, 새로운 진단 용어들 참 사람들은 대단하기도 하지, 매일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하니까 새로운 지식들도 쏟아져 나온다. 거기에 무방비에 노출되는 사람들. 왜 현대사회에 불안장애들이 많이 생겨났는지 원인을 살펴보니, 알지 않아도 될 것들을 너무 알게 되어버리니까 불안도가 덩달아 높아져버렸다는 것이다.)
(* 그러니, 너무 많은 것들을 몰라도 문제겠지만 적당히 알아만 둬도 괜찮을 정도로만 찾아서 봐야지. 그 이상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것 또한 시간낭비에 불안감을 적립하는 셈이다.)
예 : 내 친구 중 육아하는 친구는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고 우리 아기도 어쩌지? 어쩌지? 금쪽같은 내 새끼에 중독되었다. 그래서 그 불안감이 느껴져서 내가 내린 처방은 금쪽같은 내 새끼를 매일 들여다보지 말고 정이나 그 프로그램으로 도움을 받고 싶다면 그냥 한 달에 한 편정도 봐라. 주 1회 시청도 너무 많다.
본방 챙겨보지 말고, 그냥 정이나, 제목만 보고 비슷한 내용만 골라서 봐야지 매일 들여다보니 이것도 불안 저것도 불안.
내 처방 : 금쪽같은 내 새끼를 한 달에 한 번, 아니면 분기별 한 번 봐도 충분하다. 생각보다 애기들, 어린 친구들은 알아서 또 잘 자란다. 마치 네가 잘 자랐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