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날, 하늘을 제대로 볼 수 없다. 눈부심 때문일까, 아니면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일까. 그럼에도 하늘은 아무 말 없이 나를 품어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가슴이 답답할 때, 하늘은 언제나 탈출구처럼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때로는 천둥과 비를 내릴지라도. 아이들에게 나도 그런 하늘이 되고 싶었다. 답답할 때 올려다보면 위로를 주는, 그저 곁에 있어주는 존재.
그래서 멈췄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이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도 갔겠다” 혼자 중얼거리며, 유명한 육아서를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읽을 때마다 반성의 눈물이 나고, ‘이번엔 이렇게 해봐야지’ 다짐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마트에서 바닥에 드러누워 우는 아이 앞에서, 책 속 문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이의 하늘은 늘 맑지 않았다. 때로는 비가 내리고 천둥이 쳤다. 나 역시 아이에게 천둥처럼 소리를 지르고, 지지 않으려 싸우기도 했다. 그리고는 아이 몰래 눈물을 삼키며, 먹구름 낀 하늘을 혼자 지워내야 했다. 책 몇 권 읽었다고 아이를 다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착각이었다. 아이들끼리 다투는 상황에서, 책 속 구절은 떠오르지 않았다. 남은 건 본능적인 내 반응뿐이었다.
그때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아이 키우는 건 한 번에 끝나지 않아요. 가랑비에 옷 젖듯, 천천히 배우고 익히는 거예요.”
그 말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래서 다시 책을 펼쳤다.
이번에는 아이가 아니라 나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언제 화를 내는지, 무엇이 힘든지 적어 내려갔다. 상황이 같아도, 내 태도에 따라 결과가 달라졌다. 결론은 분명했다. 아이를 바꾸려 하기보다, 나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는 것. 나는 왜 항상 맑은 하늘이 되지 못했을까. 타인에게 받았던 상처가 아이에게 전가되기도 했고, 과거의 기억이 아이를 ‘아이’가 아닌 ‘작은 어른’으로 보게 만들기도 했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 깨달음에 덜컥 겁이 났다.
아이와 나는 같을 수 없다.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다른 사람을 만나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갈 것이다. 나는 다만 열린 자세로, 아이의 다름을 다름으로 인정해야 했다. 나는 여전히 서툴고 부족한 엄마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게 하늘이고 싶다. 힘들 땐 올려다볼 수 있는, 편안한 하늘. 완벽한 하늘은 아니더라도,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는 하늘. 언젠가 아이들도 작은 구름이 되어, 내 하늘에 함께 어울려 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