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예쁜 사람을 좋아할 것이다. 나 역시 거리를 다니다가 예쁜 사람을 보면 다시 한 번 뒤돌아본다. 자연스럽게 눈길이 머문다. 물론 ‘예쁨’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눈에 띄는 아름다움 앞에서 시선을 멈추는 일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은 아닐까.
나 또한 예뻐지고 싶은 욕망이 참 많았다. 무슨 모임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면 ‘이쁜이’라는 닉네임을 스스럼없이 붙여 사용하기도 했다. 외모를 가꾸기 위해 운동도 꾸준히 했고,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기 위해 인터넷 쇼핑몰을 둘러보며 옷들을 유심히 살폈다. 어떤 옷이 더 날씬해 보일지, 어떤 색이 내 얼굴빛을 살려줄지, 그런 고민도 자연스럽게 따랐다. 겉모습이 곧 나를 설명해주는 가장 빠른 언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겉모습만 바꾸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다. 아무리 외적으로 아름다워 보여도, 그 안에 담긴 사람이 비어 있다면 결국 금세 들키고 만다. 내면의 아름다움이 동반되지 않는 외모는 결국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조금씩 달라졌다. 겉을 꾸미는 시간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이지 않는 나를 채우는 데 쓰고 싶어졌다. 책을 읽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했다. 진심으로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고, 나를 돌아보며 다듬는 시간들이 쌓여가면서.
물론 지금도 나를 가꾸는 일은 소중하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건, 나만을 위한 ‘만족’이 전부는 아니라는 점이다. 외모를 가꾸는 일이 결국엔 나를 바라보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조금 늦게야 알게 되었다.
얼마 전, 우연히 학교에 근무하시는 선생님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보다 훨씬 연세가 있는 분이셨는데, 대화 중 문득 염색 이야기가 나왔다. 선생님은 자신의 흰머리를 가리키며, 너무 흉하지 않냐고 나에게 되물었다. 나는 진심으로 “괜찮아 보이세요”라고 답했다. 자연스럽고 멋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생님의 생각은 달랐다. “상대가 학생이잖아요.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너무 나이 들어 보이면 아이들 눈에는 또 다르게 보일 수도 있잖아요. 조금은 더 젊고 단정하게 보여야죠.” 그 말씀을 들으며 마음속 어딘가가 찌르듯 울렸다.
그 순간, 나는 지난날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항상 어른의 시선으로만 나를 바라봤다. 정작 나도 아이들을 상대하며 강의를 하면서도, 흰머리가 늘어나는 걸 보며 ‘아직은 괜찮겠지’ 하고 염색을 미루고, 나 혼자 편하다는 이유로 어른들의 옷차림을 고수해왔다. 아이들의 눈높이나 시선은 생각하지 않은 채, 나만의 기준으로 외모를 가꾸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의 말은 그저 외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안에는 타인을 향한 세심한 배려와 존중이 담겨 있었다. 외모를 꾸미는 일이 단순히 예뻐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마주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위한 준비일 수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나를 가꾸는 일이 결국 누군가에게 편안함을 주고, 신뢰를 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깊어진다는 걸 배웠다.
나는 여전히 외모를 가꾼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진 마음으로 거울을 본다. 나를 위한 것을 너머 나와 마주하는 사람을 위한 것으로. 그 마음의 변화가 내가 찾고자 했던 진짜 ‘아름다움’에 가까운 것 아닐까. 이 작은 깨달음이 또 다른 아름다움을 향한 여정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