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야 쫄지마

동상이몽의 두번째 버스킹

by 쌀집아들

다시 기타를 메고 눈을 들었다. 어두운 카오산 로드를 점점이 밝히는 불빛들과 헤드라이트를 켠 채 달리는 자동차들, 술에 취한 행인들, 도로 건너의 식당 야외테이블에서 우리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었고 택시를 기다리거나 카오산 로드를 오가는 사람들이 흘깃흘깃 호기심을 보였다. 오후 때와는 완전히 풍경이 달랐다. 내 시야의 풍경이 달라지니 기분도 완전히 달라졌다. 막상 그 풍경을 마주하니 아무렇지 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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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시 시작하자~~”

“가자~~”

생각보다 떨리는 마음으로 거리 공연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도중에 우릴 막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생각보다 사람들이 반응을 해주었다. 지나가는 길에 박수를 쳐주기도 하고 장난스럽게 몸을 들썩이며 걸어가기도 했으며 손을 들어 관심을 표현해주기도 했다. 한밤의 불빛들 덕분인지 한 낮보다는 축제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그런 풍경의 한 귀퉁이에 우리가 있다는 사실이 나를 흥분 시켰다. 우리는 그 곳의 밤으로 녹아 들기 시작했다.


공연이 이어져지만 발걸음을 멈추고 지켜보는 이는 없었다. 술에 취해 키득거리며 지나가거나 우리가 설치해놓은 카메라에 손을 흔들거나 장난스러운 제스쳐를 취하는 것이 전부였다. 소심한 나는 그런 반응에 약간 흔들렸지만 다행스럽게 우린 셋이었다. 만약 둘만 되었어도 나는 아마 시작도 하지 못했거나 중간에 포기 했을 것 같았다. 셋이라는 사실에 안도감과 든든함을 느끼며 계속 기타를 치고 노래를 했다.


그러던 중 공연의 중반 정도에 다다랐을 때 한 백인 커플이 길을 건너오더니 우리 앞으로 와 섰다. 너무 없다가 별안간 관객이 생기니 내가 눈을 어디 둬야 할지 오히려 민망했다. 표정 관리도 잘 안됐다. 사람 좋은 얼굴로 노래를 듣던 비쥬얼 좋은 커플은 노래 한곡이 끝나자 저 길 건너 멀리서부터 들었다며 우릴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리스펙트’라고 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우리는 잘 모르지만 저 먼 곳에서 누군가 우리의 노래를 들어주고 즐겨준다는 사실이 짜릿했다! 그 때의 기분만큼은 우리도 유명 뮤지션이었다.


“이 봐. 우릴 리스펙트 한다잖아!” 신이 난 내가 말했다.

“그냥 한 소릴 껄?!” 상민이 형이 말했다.

“아, 먼데? 흥브레이커가? 아니야 멀리서 우리 노래 들었다잖아. 우리 보고 잘한데.”

“앰프 키고 하는데 들리는 게 당연하지. 제대로 들리기나 했겠어? 나는 흥브레이커다~.”

“머야 왤케 냉정해?”

“리스펙트해도 팁은 안주고 가네.ㅋㅋ”

“립팁 주고 간거지.ㅋㅋㅋ”

공연을 계속했고 준비한 것들을 차근차근 해나갔다. 후반으로 가니 관객과 주변 상황에 초월해졌다. 오롯이 우리를 위해 연주하며 서로의 실수를 서로 채워주며 이어나갔다. 우리를 위한 연주라니... 먼가 낭만이 느껴지는 말이다. 근처에 있던 노점 상인이 쑥스러워 하는 듯한 발걸음으로 부리나케 우리의 팁 박스에 팁을 놓고 엄지를 세워 주고 돌아갔다.

“와~ 코쿤카~~압!”

“땡큐! 땡큐!” 노래하다 말고 말했다. 정말 눈물 나게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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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한 모든 곡을 마무리하고 공연을 끝냈다. 다시 한 번 뭔가 했다는 성취감과 짜릿함으로 기분이 한껏 떠오르고 있었다.

“너 왜 노래하는데 자신 없게 하냐?” 내 노래에 대한 형의 평에 상승하던 내 기분이 급격히 추락했다.

“아니 좀 부끄러워서...ㅋㅋ근데 아까보다 오히려 엄청 편하게 하긴 했어요.” 형의 예리한 지적에 정곡을 찔렸다. 자신감이 늘 좀 부족한 나다.

“재미없었지? 사람이 너무 없어서?”

“아뇨. 난 괜찮았는데. 그건 전혀 신경 안 쓰였는데?” 난 강하게 부정했다. 오히려 어느 때보다 들뜨고 신나있던 나였다.

“에이 거짓말!”

“아니예요, 진짠데. 자꾸 왜 그래 형? 여기선 우리가 관객 모으기는 힘들어. 우리가 진짜 끼깔나게 노래나 연주를 하지 않는 이상...보니까 다들 어디 가느라 바쁘구만...”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은 이해하지만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형이 나는 조금 답답했다.


펼쳤던 악기들을 아쉬움과 함께 어깨에 얹고 숙소로 향했다. 뿌듯한 마음은 있었지만 관객 없는 공연에 대한 형의 섭섭함과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나의 현실 판단이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충돌했다.


“좀 더 신나고 자신 있게 불러야지. 그래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나도 아까보다는 훨씬 신나게 불렀어요. 노래하는 것도 편했고 연주도 편하게 아주 기분 좋게 했어요.”

“공연하는데 관객들이 좀 있어야 할 꺼 아니야. 이게 머야?”

“여기 분위기 보니까 우리가 생각한 분위기가 전혀 아닌데 멀... 저런 사람들을 어떻게 붙잡아 놓겠어? 진짜 끼깔나게 부르거나 연주가 죽여주거나 하지 않으면 사람들 안 본다니까.”

서로가 답답했다. 결국 관객이 없는 상황에 대한 받아들임의 차이였는데 형은 그 상황이 많이 속상한 듯 했다. 람부뜨리 거리를 지나는 내내 우리의 논쟁은 이어갔다.

“그래 사실 우리가 생각보다 공연이 괜찮게 나오는데 관객이 너무 없으니까 속상해서 그랬다.”

“나도 그래요. 사실 내가 꺼낸 얘기고 카오산도 내가 얘기했는데 분위기가 이래서 나도 좀 미안하고 안타깝고 그래요. 근데 머 어떡해? 할 수 없지 머...”

결국 길의 끝에 다다를 무렵 우리의 언쟁은 사람들이 더 많이 봐줬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 때문이란 것임을 서로 이해하고 마무리 했다. 마무리 할 때쯤 이런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 지 뒤따라오던 마냥 신나 보이는 재영이가 카메라를 들고 영상을 찍으며 우리 사이로 들어왔다.


“이 사진 봐봐. 진짜 멋있지?” 재영이가 뒤에서 우릴 찍은 사진이었다. 우리의 대화 내용과 상관없이 람부뜨리의 밤거리와 악기를 메고 돌아가는 우리의 뒷모습이 너무도 멋지게 어울려 마치 멋진 공연을 끝낸 후 돌아가는 낭만 뮤지션의 모습이었다.

“키야~~~~이건 진짜 인생 샷이네.” 정말 멋진 사진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숙소로 가는 내내 다시 웃었다. 셋이라 정말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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