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야 쫄지마

다시 집으로...

by 쌀집아들

* 3월 5일


타국의 밤은 농염하다. 타국에서 맞이하는 밤은 농염하게 다가온다. 그 농염함은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이다.

*8AM


8시 쯤 잠에서 깼다. 언제 잠 들었는지 모르겠다. 숙취는 없었다. 두통도 없었고 속도 괜찮았다. 모든 것이 깔끔하게 날아갔고 게다가 완벽했다. 기분 좋은 허탈함과 나른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다시 눈을 감았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다시 눈을 떴다. 이제 몸을 움직여야만 하는 시간이다. 짐정리를 하고 떠날 시간이다. 방을 나가보니 형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부산히 체크아웃 준비를 했다.


“악기들은 어떡하지?” 힘들게 준비한 악기들이다. 하지만 한국으로 가져갈 순 없다.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막막했다.

“나 아는 사람들한테 부탁을 좀 해볼게. 좀 맡아 주실 수도 있어.” 역시 상민이 형! 언제나 길을 열어 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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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AM


오전 11시 모든 짐을 다 싸고 마지막 체크아웃을 했다. 숙소를 나서기 전 아쉬운 마음에 악기들을 한데 모아 놓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악기들의 모습이 위풍당당하기도 애잔하기도 했다. 또 다른 동지들 같아 애틋했다. 짐이 많았다. 악기들의 부피가 상당했다. 일단 숙소 건물 지하에 있는 푸드 코트에서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괜한 욕심에 먹지도 못할 콜라 1.5리터짜리 페트병을 하나 샀다가 절반도 마시지 못하고 두고 나왔다.


“아직 연락 없어요?”

“어 아직 메시지를 안 읽으시네.”

“할 수 없다. 걍 저 구석에 살짝 두고 갑시다. 아니면 숙소 베란다 구석에 짱 박아 놓고 오자. 거기 어차피 잘 쓰지도 않는 창고 같은 공간인 것 같던데...” 난 답답한 마음에 이런 저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했다.

“어디 가서 팔려고 해도 시간이 너무 없고.”

“산 데 가서 3분의1 값만 받아도 좋은데 진짜 시간이 없다.”

식사 중에도 줄곧 악기 처분에 대한 궁리를 했다. 구하기도 애먹었지만 처리하기도 애먹는다. 오후 4시 비행기라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다. 공항에 갈 때까지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면 정말 어디 길바닥에라도 버리고 가야할 판이었다.


*1PM


오후 한시쯤 식사를 마치고 그대로 건물 1층으로 올라가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악기 처분에 대한 바쁜 마음에도 마지막 방콕에서의 여유를 느끼고자 하고 있었다. 이제 한 시간 정도 뒤면 공항으로 출발해야 한다. 평소에 먹지도 않는 카페 모카를 주문했다. 더운 나라라 찬 음료를 많이 먹는데 난 습관적으로 뜨거운 음료를 주문했다. 후후 불어가며 커피를 홀짝이며 머릿속으론 다른 생각을 한참하고 있는 와중에 상민이형이 반갑게 외쳤다.


“연락 왔다!”

“오! 머래 머래?”

“일단 상황 설명 중이야. 맡아 주실 수 있겠냐고.”

몇 분간 메시지를 주고받은 상민이 형이 밝은 얼굴로 말했다.

“맡아 주신데.”

“어제 그 분이야?”

“어.”

“히야~~~진짜 한시름 놨네...아~~ 끝까지 너무 고마우신 분이다. 머라도 진짜 해드려야 할듯!”


메시지로 주소를 받아 우리는 부랴부랴 움직였다. 기타, 마이크 스탠드, 카혼. 자잘한 것들은 모두 가방에 우겨 넣은 후에도 손에 들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게다가 각자의 짐까지 포함하니 입에라도 물고 가야할 지경이었다. 낑낑대며 택시를 겨우 잡아타고 알려준 주소로 향했다. 비행기 시간에 늦을까 걱정이 앞선 상민이 형이 조급해 했다.


“아직 괜찮아 형.”


형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 했다. 골목골목을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공사현장이 걸려 길이 더 막힌다. 너무 식상한 설정의 영화처럼...한참을 제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걸어서라도 가려고 했지만 무더운 날씨와 많은 짐들을 생각하고 생각을 바로 고쳐먹었다. 급한 우리에 비해 너무나도 태연한 기사를 보니 참 성격이 좋구나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달했다. 어제 건전지를 주신 그 분이다.

“안녕하세요, 아 정말 끝까지 신세를 지네요. 이것 참 면목 없습니다. 은혜를 정말 어떻게 갚아야 할지.” 고마움과 송구스러움에 말했다.

“하하하. 아니예요. 이쪽으로 오세요.” 사람 좋게 웃으며 안내해 주셨다.

멋들어진 오피스텔 건물이었다.

“넌 여기 짐 지키고 있어. 내가 올라갔다 올게.”

“네 다녀오세요. 형.”


1층 로비에 나머지 짐들과 나는 머무르고 형은 지인분과 함께 악기들을 들고 올라갔다. 10여분쯤 뒤에 다시 내려왔다.


“조만간 찾으러 올게요. 그때까지만 부탁드려요.” 기약 없는 약속의 말을 했다.

“네네. 편하게 생각하세요. 안 그래도 어제 같이 있던 형들이랑 술 한 잔 하면서 얘기했는데 어제 공연 너무 좋았어요.”

“아 그래요? 아하하! 다시 생각해도 쑥스럽네요.”

“사실 여기 현지 생활에 약간 힘들어 하고 있었는데 한국 사람들이 와서 공연하는 거 보면서 힘도 좀 얻었어요.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잖아요?” 부끄럽고 황송했다. 우리 좋자고 한 일에 누군가가 위로를 받고 응원을 얻었다니 너무 황송할 따름이었다.

“아 네. 그러셨다니 너무 너무 감사하네요. 사실 저희 좋자고 한건데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아니예요. 정말 그랬어요. 진짜 힘이 좀 됐어요.” 오히려 어제보다 더 많은 말을 해주셨다. 훈훈한 인사를 나누고 확신할 수는 없는 다음을 기약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2PM


오후 2시를 갓 넘겨 우리는 돈무앙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보인 엄청난 줄에 기겁했지만 다행히 그 줄은 우리가 탈 비행기 줄이 아니었다. 의외로 우리가 탈 비행기의 항공사 쪽엔 대기자가 별로 없었다. 수월하게 티켓팅을 마치고 출국 심사대를 지나고 비행기를 기다렸다. 각자의 자리로 가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들어가요 형. 한국에서 봅시다.”

“그래, 이따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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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이륙하며 멀어져 가는 도시를 내려다보는 기분이 좋다. 이 기분 때문에 비행기를 타는 것 같기도 하다. 방금까지 내가 머물렀던 곳이 발 아래로 멀어지면, 그 속에서 나와 엉켜 있던 모든 것들이 벌써부터 아득한 추억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아득함과 해방감이 비행이 나에게 주는 속삭임이다.

2018년 3월 5일 오후 3시 40분 돈무앙에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가 출발했다. 상승감을 온 몸으로 느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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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머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