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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산의 카프카 Feb 02. 2023

아버지의 유리컵

생활 에세이 모음 #1 (고양특례시 청년공감스토리 공모전 우수상)

정규직 전환을 꿈꾸며 시작했던 인턴생활이 5개월 만에 다른 미래가 없이 끝났을 때 부서 내의 담당자가 내게 종이컵에 커피를 타 주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열심히 했는데, 아쉽다. 네가 타 주던 믹스커피가 참 맛있었는데” 

내 눈물과 땀을 갈아 넣었던 5개월이 고작 믹스커피 한 잔으로 기억되는 걸까. 다 먹고 쓰레기통에 구겨져 버려진 종이컵처럼 그날 나는 구겨졌고 또 버려졌다.      


종이컵 인간. 오랫동안 쓸 수 없고 필요할 때 잠깐 썼다가 필요 없어지면 그대로 버려지는 일회용품 인간. 정규직 전환이 실패로 끝난 후 나는 본가로 돌아와 방 안에 칩거하며 그렇게 나를 갉아먹었다. 나는 실패했다. 남들이 다 하는 취업도 못 하고 주름진 부모님의 얼굴, 그 삶의 흔적에 더 짙은 붓칠 밖에 할 줄 모르는 인간이었다. 밥도 제때 먹지 않고 눈을 뜨면 다시 감기를 희망했으며 감은 눈이 다시 떠지지 않기를 바라는 매일매일이 이어졌다. 나는 무너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기억이란 것이 생기기 시작한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갖은 면접과 탈락을 반복하며 겨우 정규직 전환형 인턴쉽을 잡던 순간을 지나 최종 탈락의 고배를 마셔 이 골방에 틀어박힐 때까지 지난 과거를 곱씹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취업에 실패한 지금, 그 모든 순간들이 다 실패였다는 것을. 웃음이 넘치던 고등학교 생활도, 바라던 대학에 합격하며 친구들과의 즐거웠던 캠퍼스 생활도,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으며 성공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시간들이 다 성공처럼 보였던 실패의 연속이었다. 나는 내 안으로 침잠해갔다. 망망대해 끝없는 바닷속 심해의 그 어디에서 나는 썩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거냐?”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날짜를 잊고 시간마저 잊고 살던 그 어느 날, 방문을 열어젖힌 아버지께서 이불속에서 잠수해 있던 나를 보고 말을 던졌다. 아침 햇살인지, 저녁노을인지 부신 눈을 찡그리며 답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신 투자는 실패한 투자가 됐습니다. 주식으로 말하면 반토막도 아니고 상장폐지가 됐다 이 말입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아직 한창인 녀석이 한 번 탈락했다고 아직도 못 털고 못 일어서면 어떡하냐. 다시 도전하고 또 도전해야지. 환갑이 다 된 나도 아직도 도전하는데, 네가 뭐가 무서워서!”     

“한 번이요? 수백 번 지원하고 수십 번 면접보고 정규직도 아니고 겨우 인턴에 합격했었습니다. 이제 그것마저도 떨어졌습니다. 뭐가 무섭냐고요? 다 무섭습니다. 다시 실패할 제 자신도 무섭고 저를 보는 세상의 눈도 무섭고 이미 취업한 친구들의 목소리도 무섭고 이제 아버지조차도 무섭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깊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 세상은 저를 종이컵 취급합니다. 잠깐 필요할 때 쓰고 버리는 일회용 종이컵. 부담 없이 쓰고 부담 없이 버리는 그런 일회용품. 27년 된 종이컵을, 저를 누가 어디에 어떻게 쓰겠습니까? 그러니 아버지도 이제 저를 포기하고 버리세요.”     

한참을 방 문 앞에 서 계시던 아버지께서는 아무 말 없이 방문을 닫고 돌아섰다.      


며칠 후, 그래도 숨이 붙어 있으니 대소변을 가리려 문을 나서니 식탁 위에 예쁜 포장박스와 편지가 놓여 있었다. 접힌 편지지 위에는 큰 손글씨로 ‘아들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지난번 그 한심한 모습을 보았으니 무슨 말이 적혀있을지 겁이 났다. 이제 넌 내 자식이 아니니 당장 집을 나가란 것은 아닐까? 쫓겨나면 어디로 가야 하나? 떨리는 손으로 접힌 편지를 펼쳤다. 투박한 편지지 위에 꾹꾹 눌러쓴 검은색 글씨가 눈이 아닌 마음에 박혔다.


“아들아. 며칠 전 스스로를 종이컵이라고 말하던 너를 보며 목이 메어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했어야 할 말을 늦었지만 부족한 글로 전한다.     

넌 내게 늘 곁에 두고 싶고, 바라만 봐도 행복해지는 예쁜 컵이었다. 행여 금이 갈까, 혹 손 떼라도 묻을까 고이 찻장에 모셔두었다가 귀한 손님이 오실 때야 겨우 꺼낼 수 있는 그런 컵이다. 27년간 넌 늘 내게 그런 존재였다. 네 조막만 한 손을 처음 잡아보았을 때부터 그리고 지금 네가 잠깐 숨을 고르고 있는 이 순간까지 넌 내 인생의 일회용품이 아닌 평생용품이다. 세상에서 네가 있고 싶고 있어야 할 그 공간을 찾기 전까지 조금만 더 내 찻장에서 같이 있으며 내 기쁨이 되어 주려무나. 사랑한다. 아들”     


한참을 그 짧은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어린 짐승처럼 목 내어 울었다. 그리고 풀어본 포장박스 안에는 투박하지만 단아한 유리컵이 들어 있었다. 화려한 장식이나 눈에 띄는 그림이 그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을 것 같고 무엇을 안에 품더라도 그 용도에 자신을 맞춰줄 것 같은 그런 유리컵이. 이 컵을 고르기 위해 고민하고 또 망설였을 아버지의 모습이 자연스레 눈에 그려졌다. 인간의 언어로는 차마 표현하지 못하는 그 부정(父精)이 이 유리컵에 가득 담겨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와 같다면 그 이후로 단번에 취업에 성공했겠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았다. 나는 그 이후로도 몇 번의 실패와 좌절을 맛보았다. 그러나 책상 한편에 놓여 있는 아버지의 컵을 보며 마음을 다 잡았다. 나는 더 이상 일회용품 종이컵이 아니라고. 나는 세상 그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하고 가지고 싶은 유리컵이 되겠노라고. 그리고 마침내 난 날 원하는 새로운 찻장을 찾았다.     


“여보, 아버님 커피 한 잔 드리게 찻장에서 컵 좀 꺼내 줘”      

오랜만에 아버지께서 우리 집에 방문한 날, 부엌에서 후식을 준비하던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찻장에 고이 아껴두었던 아버지의 그 유리컵을 다시금 꺼냈다. 그리고 아버지께 내 마음을 담아 드린다. 아버지의 평생용품인 컵은 이렇게 이쁘게 잘 있다고. 당신이 사랑으로 빚어낸 컵은 그 사랑만큼 가치 있는 컵이 되었다고. 양손으로 컵을 잡고 커피를 마시는 아버지의 흥겨운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아들, 커피가 참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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