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세이모음#3 좋은생각
27살, 그해 여름은 유난히도 덥고 길었다. 졸업과 동시에 곧장 취업할 것이라는 나의 호언장담과 달리 취업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몇 차례의 인·적성 시험과 또 몇 차례의 면접을 거듭하며 문고리를 잡고 늘어졌지만 끝내 그 문을 열지 못했다. 어느덧 상반기 공채가 마무리되어가고 그저 송구스러운 마음에 고향에 계신 아버지께 안부 전화도 드리지 못할 때쯤에 면접 안내 문자가 도착했다. 그야말로 긴 가뭄 끝에 내린 단비였다.
그러나 그 시원함도 잠시, 면접을 준비하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면접복장이 일반적인 정장이 아닌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옷”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그 누구인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옷은 무엇일까? 가장 나다운 순간, 오롯이 나로서 존재했던 때는 언제인가? 오랜 자아 성찰과 고뇌 끝에 면접 당일 나는 한복을 입고 갓을 쓴 채 현관문 앞에 섰다.
이유는 있었다. 그 복장이 “FREEBOW”라는 캠페인을 기획하고 실행했을 때 입었던 옷이었기 때문이다. 6개월간의 인도 생활에서 느낀 점을 바탕으로 종교, 계급, 성별 등의 차이를 넘어선 상호존중의 가치를 알리고자 기획한 이 캠페인은 세계인들과 한국전통의 맞절을 나누며 차별 없는 세상, 더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고자 했던 나의 날갯짓이었다. 세상에 대한 나의 가치관과 사고를 펼쳐낸, 내 인생의 가장 빛났고 찬란했던 순간이었다. 그렇기에 그 어떤 옷보다도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옷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집을 나서는 그 순간까지도 정장으로 갈아입어야 한다는 내적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면접, 실낱같은 희망을 괜히 별난 옷을 입어서 면접관들의 심기를 거슬러 망쳐버리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다. 그것은 이십 대 중반을 훌쩍 넘겼음에도 여전히 아버지의 등에 업힌 나, 아들이면서 또 다른 이름으로는 그의 삶의 무게가 되어버린 내 처지에 대한 부끄러움이었고 죄책감이었다. 그런데도 끝내 나는 한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아버지께서 수화기 너머로 인사 대신 건네준 이야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삶에 당당해라. 꾸며낸 마음은 티가 나지만 진실한 인생은 태가 난다. 나는 그때의 네가 가장 자랑스럽다.”
현실은 영화나 드라마와는 달랐다. 나는 나의 복장에 관해 설명하기도 전에 면접관으로부터 꾸중과 핀잔을 들었다. 어디에 합격하고 온 것이기에 그렇게 입고 왔느냐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를 제외한 면접자의 대부분이 멀쑥한 정장 차림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배낭여행을 하며 수천 번의 절을 하느라 꾸깃꾸깃해진 갓과 낡고 때 묻은 두루마기 도포는 그들이 원했던 정답이 아니었다. 면접은 실패했으나 다행히도 귀갓길이 후회스럽지는 않았다. 다시 꺼내 입어본 그 옷을 통해 나는 내 인생의 정답, 삶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를 되찾았기 때문이다.
살면서 길을 헤맬 때, 나라는 존재에 대한 자신이 없어질 때마다 옷장 속에서 한복과 갓을 꺼내본다. 여전히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이 옷이 당당한 내 청춘을 응원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