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은 기본적으로 독이다. 식물은 자기 방어를 위해 향정신성 염기를 발전시켰다. 이는 무자비한 초식 동물로부터 생존을 지키는 방어 수단이었다. 마약 식물을 섭취하는 동물은 현기증을 느끼거나 환각을 경험하게 된다. 우발적인 흥분 내지 중독은 흥분 식물을 다시 섭취하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이다. 우리가 자연에서 채취한 나물을 데치는 것은 이러한 독을 무력화시키는 지혜이다.
마약을 통한 행복과 안도는 우연한 진화의 산물이다. 극소수의 식물 염기만이 두뇌의 보상 시스템과 통증 관리 센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 다. 자연은 행복에 인색하다. 행복을 주는 신경전달물질은 생존 또는 종족보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행동에 지극히 적은 양이 분비된다.
소량의 행복 물질 또한 오래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연기처럼 사라진다. 마약은 기쁨을 유도하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를 촉진시켜 이 시스템을 교란하여 인위적으로 행복을 느끼게 한다.
마약은 과거 문명이 가져온 질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됐다. 인류는 마약을 불안감, 권태, 만성피로, 통증, 불면증, 설사의 치료에 사용했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수면을 위해 아편을 사용했으며 로마와 인도에서는 아편을 설사, 소화불량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했다. 아편은 우리나라에서도 가정 상비약이었다.
고대 종교도 마약을 사용했다. 결백을 주장하는 힌두 승려는 소마라는 약물을 사용했으며 이슬람은 대마를 허용했다. 이 현상은 문화적 배경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성경에서 포도주가 허용되듯이 힌두는 시바신을 경배하면서 대마 사용을 허용했다. 반대로 힌두교는 음주와 흡연을 경계한다. 대마를 허용하는 이슬람은 포도주를 도박으로 비유하면서 파괴적인 악이라 한다. 잉카 제국에서 코카인은 신과 교감하는 성스러운 물질로 사제들이 많이 사용했으며 왕들도 애용했다. 코카인은 잉카 고산지대에서 피로와 배고픔을 이기고 힘을 발휘하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에 장거리 운반 노동자, 라마(Ilamas) 등에 먹이기도 했다.
프로이트는 코카인을 기적의 약이라 믿고 자신은 물론 주변인에게 이를 추천했다. 당시 코카인은 불법 약물이 아니었으며 코카인은 그의 저술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프랑스 약사 마리아니(Angelo Mariani)는 보르도 와인에 코카인 잎을 넣어 자양강장제로 특허 판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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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트라이트(David Courtwright)는 《습관의 힘, Forces of Habit》에서 마약을 다른 관점에서 보고 있다. 마약 단속과 처벌은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최근의 현상이다.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 각국의 지도자들은 마약을 금지하는 것보다 과세에 관심이 많았다. 이들은 마약 금지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결과적으로 헛수고의 낭비라고 생각했다.
국가는 마약에 다양한 세금을 부과했다. 국가는 아편 생산량을 기준으로 농가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증류주 기기의 용량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고, 심지어 커피 구매자의 종교에 따라 세금을 차별하여 부과했다.
오스만 제국 술레이만 대제는 기독교인이 커피를 구입할 때 이슬람보다 25% 더 많은 세금을 부과했다. 1783년 영국은 특허 약물의 소비 증가에 관심을 가지고 인지세를 부과했다. 이들 약물의 구매자는 이중, 삼중으로 세금을 납부했다. 향정신성 물질의 소비자는 물품세는 물론이고 인지세와 다른 세금이 포함된 가격을 지불해야 했다.
프랑스 인도차이나 총독 폴 두메르는 아편을 포함한 여러 가지 세금을 부과했다. 세금을 납부하지 못하는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사람들은 집을 압류당하고 길거리 노동자로 전락했다. 그는 재정수입을 확보하기 위해 인도차이나 사람들이 아편을 계속 사용하는 것을 지지했다. 미국은 1883년 아편 수입에 파운드당 6~300달러의 세금을 부과했다. 이후 입법에 의해 아편의 수입 및 유통을 금지했지만 세금은 금지를 대신하는 매력적인 대안이었다.
유럽 제국은 19세기 이전 아시아에서 마약 전매권을 판매했다. 마약의 수입, 제조 및 판매 권한을 민간에게 주는 전매권은 경매로 판매됐다. 네덜란드는 참가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 경매 전 샴페인을 공짜로 제공했다.
마약의 전매는 재정수입을 가져오지만 많은 문제가 있다. 우선 전매는 강력한 처벌규정이 필요하다. 전매는 농부가 아편을 몰래 생산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어기는 경우 처벌해야 한다. 이는 자유시장 원칙에 반하는 제도이며 강제집행 비용 또한 상당하다. 또한 전매는 이윤을 극대 화하고자 하는 권리자의 탐욕을 제어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유럽 식민제국은 1910년대 사인을 통한 전매를 국가 전매로 전환했다. 이는 마약 남용을 억제하고 확산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됐다. 그러나 영국은 인도에서 아편 전매를 통해 상당한 이익을 챙겼다. 식민제국은 시민 건강을 위협한다는 명분으로 아편의 전매 가격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실제 재정수입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로 현재 담배가격 인상 명분과 비슷하다.
식민제국은 현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아편 가격을 너무 높이면 불법 공급자가 시장을 잠식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재정수입을 늘리기 위해 가격을 급격히 인상하면 재정수입과 고객 모두를 잃을 수 있는 도박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식민제국은 가격을 인상하고 싶은 유혹을 잘 억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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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된 술은 알코올 함량이 낮아 쉽게 부패한다. 기술적으로 맥주는 알코올 함량이 7%까지 와인은 최대 14%까지 가능하다. 알코올 함량이 낮은 술은 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이 적다. 반면 증류주는 강력한 알코올 함량을 자랑한다.
발효된 술에서 증류주로의 변화는 마치 활과 화살을 사용하던 전쟁에서 갑자기 총포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고농도 알코올은 부작용을 일으키기 쉬우며 기존 사회의 경제적 지평을 바꾸어 놓았다. 담배도 피우기 불편한 시가와 파이프 담배에서 1880년 이후 궐련 담배가 대량 보급되면서 부작용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과거 남미에서 코카인 잎을 씹어서 섭취하는 시절 그리고 동양에서 아편을 비상 상비약으로 사용하던 시절에는 마약의 부작용 문제가 크지 않았다. 문제는 정제 기술의 발전으로 마약의 순도가 높아지면서 발생했다. 증류주와 같이 정제된 마약은 순간적으로 더 강력한 향정신성 효과를 발휘한다.
유럽에서는 초기 증류주를 생명을 구하는 기적의 약물이라고 생각했으며 약제상에서 팔았다. 사람들은 매일 아침 브랜디 반 스푼을 섭취하면 절대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믿었다.
국가는 증류주를 의료용으로 제한했지만 일반인의 소비를 막을 수 없었다. 이후 증류주는 대신 과세되기 시작했다. 1904년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힉스(Thomas Hicks)는 피로감을 이기기 위해 경기 중 알코올을 마셨다. 그의 기록은 3시간 28분이었다.
국가는 알코올과 담배에 대해서는 과세를 선택했지만 아편과 같은 마약에 대해서는 의료용으로만 사용하도록 제한했다. 매스암페타민은 최초 소화제로 판매됐으며 헤로인은 기침억제제로 판매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규제에도 이들 물질을 쾌락을 위해 사용했다. 각국은 19세기 중반 이후 이들 약물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것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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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거래와 사용을 금지하는 문제는 역사적으로 오랜 갈등이 있었다. 국민 건강을 이유로 마약을 금지해야 한다는 도덕적 견해와 사실상 금지가 어렵기 때문에 이를 허용하고 재정수입을 가져와야 한다는 현실적 의견의 대립이다. 현재 각국은 소수의 사람이 사용하는 약물에 대해서는 금지를 강화하고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술과 담배는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비용과 해악은 술과 담배로 인해 더 많이 발생한다는 문제가 있다.
많은 국가는 금주령(禁酒領)을 실시한 경험이 있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 금주령은 국민건강, 국가 생산성, 공공 윤리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정부는 두 가지 압력에 무너졌다.
첫째는 암시장이 가져오는 거대한 사회비용이다. 불법 주류를 취급하는 조직폭력이 번성하고 이를 단속하는 비용이 많이 든다. 비용이 들더라도 단속에 성공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비효율과 부패가 항상 발목을 잡는다. 숨어서 제조되는 알코올은 더 많은 불순물을 가지고 있어 오히려 국민건강을 위협한다.
집행이 불가능한 법은 정부를 허수아비로 만들며 정부의 권위가 무너지는 위험도 있다. 정부가 현실과 타협하고 알코올을 허용하는 이유이다. 이는 다른 종류의 마약에 대해서도 통제하에 일부 허용하자는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두 번째 이유는 국가가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국가가 알코올을 허용하는 중요한 이유는 세금이다. 알코올은 자발적 과세를 가져온다. 국가가 강제로 세금을 징수할 필요가 없고 세금에 대하여 불평하는 사람도 없다.
국가는 항상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알코올 금지로 감소하는 재정수입을 다른 곳에서 보충하기도 어렵다. 불경기에 모든 재정수입이 감소하여도 알코올에 대한 세수는 줄어들지 않는다. 미국에서 알코올 산업은 4백만 명의 고용과 700억 달러의 조세수입을 가져온다.
미국은 마약과의 전쟁에서 매년 350억 달러 이상의 세금을 지출하고 있다. 이 액수는 마약의 불법 판매 금액으로 추산되는 500억 달러의 2/3 이상이다. 강력한 단속과 처벌에도 헤로인과 코카인은 싼 가격으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마약을 금지하고 강력하게 처벌하는 법이 정의로운 것인지 또는 지혜로운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 곧바로 이상한 사람이 되며 거센 반대에 부딪치게 된다.
국가는 개인이 스스로 자기의 신체에 가하는 해악을 처벌할 수 없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해악이 없다는 가정 하에서 말이다. 가령 건강을 망치는 편식, 과식, 과로를 국가가 처벌하기 어렵다. 밤새워 술을 마시는 일 또한 처벌하기 곤란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개인이 자기 몸을 버리면서 마약을 사용하는데 국가가 처벌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잠을 잘 자기 위해 프로포폴을 사용한 연예인도 이러한 경우에 속한다. 현실에서 마약 연예인은 사회적으로 매장되지만 국가는 해악이 더 심한 술과 담배를 금지하는 대신 과세하고 있다. 마약의 중독성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에서 영국과 프랑스 군인들을 술로 참혹함을 이겨냈고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은 헤로인의 도움을 받았다. 미국은 귀국한 병사들의 약물 중독을 우려했으나 전쟁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대부분 병사들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일부 병사들은 약물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마약의 중독성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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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의 소비자 가격은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마약 가격은 일반 상품과 다른 변수가 있다. 마약 가격은 산지의 공급과 시장의 수요 이외에도 국경 통과의 어려움, 다른 조폭 및 법집행기관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된다.
세관에서 대규모 단속에 성공하면 공급이 제한되어 마약 가격이 올라간다. 반대로 마약 가격이 낮아지면 범죄 조직은 새롭게 시장에 진입했거나 고리가 약한 경쟁자를 밀고하여 제거한다. 제보를 통해 마약 신고 포상금도 두툼히 챙길 수 있다. 경쟁이 사라지면 시장 가격은 다시 올라간다.
법집행기관은 제보를 통해 마약 단속의 실적을 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청부를 받아 마약 가격을 높게 유지시켜 주는 기능을 한다. 마약거래에는 수요공급의 원리 이외에도 범죄조직의 폭력과 법의 강제가 상호작용하는 특수성이 있기 때문이다.
강력한 단속에도 마약 밀거래가 계속되는 이유는 수백 배에 이르는 불법 이익때문이다. 가령 국가에서 1억 원 상당의 마약 밀매를 적발했다고 발표하더라도 실제 마약 밀매상이 받는 원가 손실은 300만 원 정도이다. 마약 거래 조직은 유통 마약의 70~80%를 압수당하더라도 이윤을 남길 수 있다. 엄청난 이윤이 보장되는 한 마약 밀매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마약과 전쟁을 선포하고 50년 동안 천문학적인 돈을 쓰면서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지금껏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미성년자가 맥주를 구입하는 것보다 마리화나를 구입하는 것이 더 쉽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미국 교도소의 51%가 마약 범죄자로 채워져 있다. 2019년 18만 명의 재소자 중 9만 5천 명이 마약사범이다. 이들을 교도소에 격리시키는 비용만 연 20억 달러가 넘는다. 이 돈은 재소자 1인당 22,000달러로 가난한 청년 10만 명을 대학에서 무상 교육 시킬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이다.
미국은 최근 세금 낭비에 대한 비난 여론과 특수 질환의 치료에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마리화나를 합법화했다. 금주령의 경험과 마약 단속 실패에서 보듯이 도덕적인 이유로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이 반드시 바람직하지는 않다. 인간 본성에 반하는 금지와 처벌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세리의 입장에서 보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세금을 납부하고 사용하겠다는데 굳이 이를 마다하고 처벌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의문이 든다.
우리도 이제는 마약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인지, 금지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부작용은 무엇인지, 그리고 대안은 무엇인지 개방적으로 논의해 보면 좋겠다. 도덕적 정당성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해악이 가장 적은 방안을 모색하자는 것이다. 협의해서 품목을 정하고 술 담배처럼 과세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이 글은 "세금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가져온 내용입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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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ces of Habit (David T. Courtwright, Harvard College 2002), Licit and illicit Drugs, page 199-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