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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금만사 Jul 31. 2023

국가가 선서를 강요하는 이유

세종대왕은 훈민정음, 과학 발전, 대마도 정벌과 육진(六鎭) 개척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조세분야에서도 합리적 개혁으로 민생을 도모했으며 이는 세종 최고의 업적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조선의 토지세는 답험손실법(踏驗損實法)이었다. 논 1 결마다 조미 30두와 같이 미리 세금의 기준을 정하고(답험, 踏驗), 작황에 따라 조세를 감면(손실, 損失)하는 제도였다. 세율은 수확의 10%였으나 실제 수확량을 정하는 것이 어려웠다. 경작면적과 작황을 고려하여 수확량을 확인하는 것이 어려웠고 복잡한 평가 과정에서 자의와 부패가 개입했다.


세종 이전에는 공정한 평가를 위해 제1차 다른 지방 관리의 현장조사, 제2차 마을 관리의 재검사, 마지막으로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가 확인하는 3심제를 도입했다. 행정 비용을 감수하고 3심제를 도입한 이유는 사욕과 정실에 치우치는 판정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3심제라도 시스템이 공정하게 운영된 것은 아니었다. 


국가는 지방에서 일어나는 부패와 편법을 막을 수 없었다. 세종실록에는 현장을 조사하는 관리는 물론 수행 하인에게 앞다퉈 술과 음식으로 대접하고 세금을 낮추어 달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제도가 부패하면 3심제를 유지하는 국가의 행정 비용뿐 아니라 세 번 접대해야 하는 농민의 비용이 세금보다 커지게 된다.


세종은 풍흉작에 관계없이 일정액을 거두는 공법을 도입하고자 했다. 이는 매년 관리를 보내 수확 예정량을 조사하고 기록하는 행정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 관리의 부패도 줄이고 조세 징수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실제 수확량과 관계없이 미리 정해진 세금을 거두는 것은 인류 공통의 징수제도였다. 세종은 이러한 조세 개혁안에 17만 명을 대상으로 유례없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조세 제도가 국가의 기본이고 민심을 이반하기 어렵다는 것을 왕이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황희는 새로운 공법이 ‘부자에게는 다행이고 백성에게는 불행’이라며 반대했다. 타협의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전분6등(田分六等)과 연분9등(年分九等법)’이다. 이는 토지를 비옥도에 따라 6등급으로 나누고, 해마다 수확 량의 변화에 따라 9등급으로 세금을 조정하는 것이었다. 


경국대전은 이 제도가 시행되고 100년이 지나 곡식 창고가 다 차고 쌀을 저장할 곳이 없다 했다. 하지만 이 제도 역시 관리의 주관적 판단이 중요하다는 맹점이 있다. 관리는 토지의 기초 등급을 정하고 매년 수확량을 결정하는 재량이 있었다. 이러한 제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타락한다.


단순해 보이는 농산물에 대한 세금에도 공정한 평가는 어렵다. 수확을 평가하는 비용의 효율성까지 고려한다면 공정한 평가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쌀 등 주요 농산물의 실제 파종 면적, 소유주, 수확 예정량을 매년 계산하는 것은 많은 행정력을 필요로 한다. 


부패가 없더라도 이는 힘든 일이다. 여기에 논두렁에 심은 콩, 화단에 심은 상추, 뒷산에 심은 감자 등의 수입을 포함하면 계산은 더 어려워진다. 농부는 닭 몇 마리를 키워서 계란을 수입으로 챙길 수 있으며 약초 채취, 민물고기잡이, 사냥, 땔감 채취와 판매 등으로 다양한 부수입을 가져갈 수 있지만 이 모두를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농산물에 대한 과세기준을 정하는 일이 이럴진대 눈에 보이지 않는 소득에 대한 평가는 오죽했을까? 금융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 소득을 파악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은 한계가 있었다. 상인들의 소득은 높았지만 과세하기 어려웠다. 


동서양 모두 상인을 천시한 이유는 소득을 속이고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인만이 알고 있는 정보의 비대칭에서 국가가 세금을 걷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세리는 폭력까지 행사하여 정확한 신고를 확보하려 했고 여기에 서 한 단계 발전한 것이 선서와 서명이다.


국가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소득을 신고할 때 선서를 강제했다. 선서는 진실만을 말하겠다는 자발적인 약속이다. 선서는 신성한 상징물 앞에서 했기 때문에 허위로 선서하면 신에게 처벌을 받겠다는 엄중한 의미가 있다. 


선서 기록은 기원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중동 지방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성경을 사용하기 전 로마인들은 칼과 같은 무기에 손을 얹고 전쟁의 신에게 선서했다. 소가 신성한 영물인 인도에서는 소똥에 손을 얹고 선서했다.


19세기 소득세율은 나폴레옹과 전쟁 중이던 영국과 남북전쟁 중이던 미국에서 최대 10%였다.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소득세를 혐오할 이유가 하나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소득세를 신고하면서 신에게 선서하도록 하고 세리가 허위신고 했다 처벌한다면 이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탈세의 의도가 없더라도 다양한 원천에서 나오는 소득을 모두 파악하여 신고하는 것은 까다로운 일이다. 세리 또한 정확한 기록없이 심증만으로 허위신고를 주장했을 것이다. 신고가 진실임을 선서하도록 하는 것은 신고를 더 두렵게 만들었다. 신성한 힘이 하늘에서 자기를 관찰하고 있다고 믿는 시대의 납세자들은 세리뿐 아니라 신의 처벌까지 두려워해야 했다. 


과거 영국 귀족들은 존경을 받았다. 고귀한 귀족이 평민인 세리에게 자신의 소득과 세금을 신고하고 그 내용을 변호하는 것은 굴욕이었다. 자신의 세금에 대해 질문하는 세리는 독재 심판관이었다. 그들은 납세 신고를 신사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사생활의 침해라고 했으며 소득세 자체를 원칙에 위배된 폭력이라 했다. 1815년 의회에 제출된 청원은 “소득세는 어떤 의미에서도 자유에 반하며 영국인에 혐오감을 느끼게 하고 영국 헌법과 일치하지도 않는다.” 했다.


세금 징수에 선서를 활용하는 것은 계몽주의 사상의 비난 대상이었다. 영국 시인 포프(Alexander Pope)는 “정부는 과중하고 파괴적인 세금을 부과할 수 있지만, 세금을 징수하기 위해 선서를 강요하는 것은 수치스럽고 부정한 일이다.”라고 했다. 


선서는 신성한 행위이다. 신을 경외하는 사회에서 신에게 선서한다는 것은 선서를 위반했을 경우 신의 은총을 포기하고 신의 저주를 받겠다는 의미이다. 세금 때문에 선서를 강제하는 것은 부패한 일이며 불경스럽다. 현대 사회의 도덕적 타락은 이런 나쁜 관행에 서 시작됐다 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세금 신고에 선서를 폐지했다. 과세는 선서에 의한 심문 또는 다른 강제 없이 이루어졌다. 엘리자베스의 이러한 정책은 19세기까지 살아 있었다. 미국은 선서를 포기할 수 없었다. 사실 확인의 어려움과 준법정신을 제고하기 위해서이다. 


남북전쟁 당시 세무서 직원은 납세자가 신고가 정확하다는 선서를 하지 않으면 세금을 증액할 수 있었다. 1943년 이전 미국에서 세금신고서는 공증해야 했다. 이후 미국은 공증 대신 위증죄로 처벌이 가능하도록 하는 선서 신고로 바뀌었다. 


                                                           ***


수입물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오래된 전통이다. 국제교류가 어려웠던 과거 수출국과 수입국 사이에는 엄청난 가격 차이가 있었다. 물품 가격은 수출국과 수입국에서 최대 100배까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천문학적 가격 차이는 상인들이 목숨을 걸고 국제무역에 종사하게 만든 이유이다. 이러한 가격 중에 어떤 가격을 선택하여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공정할까?


수입국 세관원은 수출국 가격을 알 수 없었다. 이는 수입상만이 알고 있다. 세관원이 수출국 가격을 알았다 하더라도 이를 과세가격으로 선택할 이유가 없다. 세관원은 가격 기준을 높여 과세하고자 할 것이다. 운송 비용과 적정 이윤 같은 비용을 더 할 수 있다. 여기에 난파의 위험과 해적으로 인한 손실 같은 보험 비용을 더 할 수 있다. 이러한 요소를 모두 감안하면 적정가격을 계산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관세는 통상 수입국이 미리 정한 가격을 기준으로 부과했다. 수입되는 물품은 한정됐기 때문에, 로마는 국내 가격을 기준으로 수입되는 물품의 가격을 공고하고 이 기준에 의해 관세를 징수했다. 로마의 대표적인 관세율은 25%였다. 


가격이 공고되지 않은 물건인 경우 수입자는 선서하고 가격을 신고해야 했다. 공고된 가격이 높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입자는 현물로 25%를 납부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방식은 근대 혁명 이전까지 계속됐다.


2000년 전 인도는 수입물품 가격 결정에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시도했다. 과세가격 결정에 공매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선장은 인도에 도착하면 항구에 모여 있는 상인들에게 큰 소리로 공매를 제안했다. “내가 가져온 물건은 무엇인데 금액은 얼마이다. 이 금액으로 물건을 살 사람이 있는가”라고 세 번을 외쳐야 했다. 


선장은 그 가격보다 높은 금액을 제시하는 상인이 있으면 물품 전체를 그 가격에 넘겨야 했다. 관세는 경매 가격을 기준으로 납부했다. 시장가격을 통해 관세를 공정하게 납부하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인도의 《아타샤스트라 arthashastra》의 관세 편에 수록되어 있다.


공매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도 오래갈 수 없었다. 인간 본능의 부패와 담합 때문이었다. 당시 인도의 평균 관세율은 20%였으나 인도에는 이미 그리스, 로마, 유대 상인들이 정착하여 살고 있었다. 이들은 20~30%의 수수료를 받고 통관을 대리했다. 인도의 관세수입보다 더 높은 수수료를 받은 이들은 일종의 통관 브로커이다. 현지 브로커들은 뇌물로 공매 상인들을 매수하여 신고 가격을 조절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제도도 부패 때문에 막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


선서는 그 유용성 때문에 지금까지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법정에서 증언할 때이다. 법정에서 허위 진술은 위증죄로 처벌받는다. 현재의 세금신고서는 공증이나 선서까지는 아니더라도 허위 신고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서명을 해야 한다. 


세금을 신고할 때 처벌은 편리한 도구이다. 법원에서 선서처럼 세금을 납부할 때 진실만을 이야기하고 관련 정보 모두를 밝히겠다 하면 국가의 일은 쉬워진다. 국가가 모든 정보를 확인하기 어렵고 가지고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국가가 각종 서식에서 사용하는 서명 제도가 과연 유용한가? 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서명이 신고의 마지막 단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일단 신고서를 작성하게 되면 일정 수 준의 부정행위가 완성되어 서명을 앞두고 마지막 단계에 마음이 변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법정에서 진술하기 전에 선서하는 대신 모든 진술이 다 끝나고 정직하게 진술했다고 선서하도록 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한 것이 행동경제학이다. 행동경제학자 애리얼리(Dan Ariely) 교수는 서식을 기입하기 전 서명을 하게 하면 ‘도덕성 환기’로 부정직한 신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실험을 통해 사후 서명보다는 사전 서명이 신고의 정확성을 높인다고 밝혔다. 


실제 보험회사에서 자동차 주행거리 신고내역을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사전에 서명한 그룹의 평균주행거리는 23,700마일이지만 사후에 서명하면 주행거리가 26,100마일로 2,400마일이 늘어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법규준수도를 높이기 위해 정직한 신고가 필요한 신청서에는 사람들이 먼저 서명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련 연구에 의하면 사전 서명은 법규준수도를 15% 이상 높이고 정직한 신고를 유도할 수 있다 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국가는 서명 제도를 다시 한번 검토해 보았으면 한다. 국가가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항에 대해서는 허위신고를 처벌하겠다는 협박성 서명을 과감하게 생략했으면 좋겠다. 서명이 예외적으로 필요하다면 사전 서명과 같이 서명의 효용성을 제고하여야 한다.




이 글은 "세금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가져온 내용입니다. 




참고 문헌

경향신문(2019.10.8, 이기환, 흔적의 역사)

The Great Tax Wars (Steven R. Weisman, Simson & Schuster 2004), Chase has no money, page 44, 

For Good and Evil (Charles Adams, First Madison Books Edition 2001), Queen Elizabeth I, page 245-246, The Enlightenment Had the Word on Taxation, page 294-295

The Honest Truth about Dishonesty (Dan Ariely, HarperCollins 2012), Fun with the Fudge Factor, page 4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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