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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금만사 Sep 11. 2023

세금에서 공정과 신뢰

사람들은 공정한 것을 좋아하며 이는 인간 본성이다. 독일 경제학자 베르너 귀스(Werner Güth)는 현실에서 공정 문제를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하는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을 만들었다. 게임은 2인 1조로 이루어지며 참가자가 서로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진행한다. 


게임 규칙은 간단하다. 게임 참가자 중 한 사람이 10만 원을 받고 다른 참가자와 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결정한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10만 원 모두를 가지거나, 반반씩 나누거나, 상대방에게 전액을 주는 것을 제안할 수 있다. 단, 제안의 기회는 한 번이고 협상은 있을 수 없다. 다른 참가자는 제안된 금액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하는 수밖에 없다. 제안을 받아들이면 참가자는 제안한 금액을 나누어 가지지만 거절하면 둘 다 한 푼도 가질 수 없게 된다. 최후통첩이 말해주듯이 두 번의 기회는 없다.


경제학자들은 합리적 인간은 9만 9천 원을 가지고 다른 참가자에게 천 원을 제안할 것으로 생각했다. 다른 참가자 또한 이성적이라면 천 원이라도 받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도움이 된다. 공돈을 받을 수 있다면 다른 참가자가 9만 9천 원을 가지는 것에 대해 신경 쓸 이유가 없다. 


학자들의 예상과 달리 대부분 참가자는 공정하지 않은 액수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다. 그들은 경제적 손실을 보더라도 바보 취급 당하는 것을 거부했다. 참가자들은 불공정을 바로잡고 상대를 응징하기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을 선택했다. 이는 합리성의 문제가 아니라 공정이라는 감성의 문제였다. 적은 돈을 제시받는 것에 대한 분노로 제안을 거절하면 사회 정의를 실천했다는 만족감이 있다. ‘공정’을 본능적으로 깨우치고 있는 대부분의 제안자는 낮은 금액을 제시하지 않았고 그들은 절반 또는 3~4만 원의 금액을 제시했다.


‘최후통첩 게임’은 전통 경제학의 기반을 허물었다. 사람은 냉철한 계산에 의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따듯한 사회적 논리에 의해 행동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감성에 지배되며 이는 과거 수렵시대부터 내려오는 복잡한 알고리즘이다. 수렵시대 사냥을 같이 했지만 상대방이 모 든 것을 다 차지하고 닭 날개 하나만을 주었다면 어떨까? 


닭 날개 하나라도 있으니 좋다고 생각할까?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불합리한 대우에 닭 날개를 집어던지고 크게 항의했을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단기적으로 배 고프고 두들겨 맞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다. 불공정한 제안을 받아들이는 온순한 사람은 생존하기 어렵다. 이러한 투쟁에서 살아남은 인류는 불공정을 견디지 못한다.


불공정은 원숭이도 참지 못한다. 영장류 동물학자 프란스 디 발(Frans De Waal)은 꼬리감기원숭이가 마주 볼 수 있도록 우리를 배치했다. 울타리 안에 작은 돌을 두고 원숭이가 이 돌을 연구원에게 주도록 훈련했다. 연구원은 원숭이가 돌을 주면 오이 조각으로 보상했다. 첫 번째 실험에서 두 원숭이는 모두 오이 조각을 받고 행복해했다.


두 번째 실험에서 첫 원숭이는 보상으로 포도를 받았다. 포도는 오이보다 맛이 좋다. 다른 원숭이는 여전히 오이 조각을 주었다. 첫 번째 실험에서 오이에 한없이 행복해하던 두 번째 원숭이는 분개했다. 원숭이는 오이를 받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오이를 연구원에게 집어던지고 소리 지르며 뛰어다녔다. “나는 바보가 아니야!”


                                                                          ***


공정의 개념은 정의하기 어렵다. 구체적 숫자로 나타나는 세금에 있어서 공정은 더욱 어렵다. 과연 공정한 세금은 무엇일까? 조세에 있어 공정하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세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 세 가지 이론은 ‘동등 대우(equal treatment), 담세능력(ability to pay), 보상 논리(compensatory arguments)’이다. 형식적으로는 위 세 가지 방식 모두 공정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납부금액으로 보면 엄청난 차이가 난다. 어떤 해석이 가장 공정할까?


‘동등 대우’ 이론이다.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세율로 세금을 내는 것을 말한다. 이는 일률 과세 정신이다. 공평하다는 것은 법 앞에서 동일한 대우를 말한다. 민주주의 국가가 1인 1투표제를 채택하듯이 모든 사람은 동일한 세율 또는 동일한 금액을 납부해야 한다.


돈을 많이 번다고 높은 세금을 내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 공정한 세금은 같은 비율로 과세하는 것이다. 부자에 대해 높이 과세하는 것은 성공을 처벌하는 일이며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동기를 빼앗아간다. 현대 조세 제도의 가장 큰 모순은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칙과 충돌하는 것이다.


‘담세능력’ 이론이다. 밀(John Stuart Mill)은 담세능력을 고려한 ‘동등한 희생(Equality of Sacrifice)’을 주장했다. ‘동등한 희생’ 이론은 경제학의 한계효용 이론을 차용했다. 가난한 사람은 조금만 과세하여도 한계효용이 극단적으로 감소하나 부자는 한계효용이 크게 감소하지 않는다. 따라서 동등한 희생을 위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한계효용감소가 같아질 정도로 과세해야 한다고 한다. 


담세능력에 따른 과세는 많은 사람이 주장하고 있으나 반대 의견도 많다. 우선 ‘동일한 희생’을 위해 부자가 얼마나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은 부자가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의 노력과 희생으로 어렵게 번 돈을 부자라는 이유로 심하게 과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순히 운이 좋아서 부자가 된 사람을 중과세하는 것은 대부분 인정한다.


부자가 더 많은 돈을 납부해야 한다는 것은 성경에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는 가난한 과부가 렙돈 두 닢을 헌금하는 것을 보고 이 과부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고 하며 부자들이 더 많이 헌금하도록 암시했다. 이는 담세능력에 따른 최대 부담을 이야기한 것이다. 이는 세금으로 얼마를 냈느냐 보다는 세금을 납부하고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보상 논리’이다. 이는 부자가 국가로부터 특혜를 받았기 때문에 이를 보상하기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 말은 셀리그만(Edwin Seligman) 교수가 만들어냈다. 보상 논리는 누진세를 적용하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논리이다. 역사적으로 국가는 소비되는 물품에 대한 간접세를 통해 재정수입을 확보했다. 간접세는 징수하기 쉽다. 소비에 대한 과세는 가난한 사람이 소득에 비해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하기 때문에 역진적이다. 따라서 소득세는 간접세의 역진 문제를 치유하기 위한 보상으로 부자에게 누진적으로 과세해야 한다.


존 롤스 John Rawls는 다른 방법으로 불공정을 치유할 수 없다면 급격하게 누진적인 소득세가 필요하다 했다. 불공정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면 두 가지 잘못을 합하여 이를 바르게 할 수 있다 했다.


보상 이론은 부자가 운이 좋아서 돈을 번 것인지 또는 노력으로 번 것 인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따라 달라진다. 유럽에서는 부자가 운이 좋았다고 보고 과세하여 불평등을 보상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노력하지 않았는데 땅값이 오르고 부모를 잘 만나 상속받은 경우이다. 


반면 미국은 부자는 노력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자 과세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기업가 정신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에 의해 부자가 만들어진 경우 보상 이론은 정점에 이른다. 정부의 특혜로 부자가 됐다면 형평성 차원에서 더 많이 과세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대규모 징병은 부자 과세를 새롭게 부각했다. 전쟁 상황에서 젊은 사람을 징병한다면 이에 상응하여 부(富)도 공정하게 징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의 징발’ 이론은 일종의 보상 논리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보상 논리의 정점으로 부자의 소득에 94%까지 과세했다. 


보상 논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대규모 동원이 끝나면서 사라졌다. 전시 강력한 부자 과세 근거였던 보상 논리는 현재 ‘담세능력’ 또는 ‘공정’이라는 말로 설명되고 있지만 그 영향은 제한적이다. 이로 인해 1980년대 초반까지 80%대로 유지되던 소득세 최고세율은 현재 30%대로 떨어졌다.


                                                                  ***


조세 제도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실제 공정한 것이 중요할까? 아니면 공정하다는 외양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할까? 유발 하라리는 공정의 원칙은 작은 집단에서는 잘 작동되나 대규모 집단에서는 작동되지 않는다 했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국가는 극도로 불공정했지만 놀랍게도 안정적이며 효과적이었다. 대규모 집단에서는 공정하다는 외양이 더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하라리는 ‘최후통첩 게임’이 두 사람이 아닌 백만 명씩 두 개 그룹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가정했다. 백만 명의 의견은 통일하기 어렵다. 지도자를 통해 의견을 조율하여야 하지만 지도자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여 금액을 나누고 당근과 채찍으로 다스린다는 것이다. 지도자는 반란이 의심스러운 사람은 처벌하여 압박하고 온화한 사람에게는 영원한 내세를 약속한다. 


이는 정권이 바뀌어도 기본적으로 불평등한 귀족 사회가 수천 년 동안 유지된 이유이다. 사람들이 종교와 같이 공통적인 신념체계를 가지고 있다면 국가는 안정적인 계층구조를 만들고 다수가 협력하는 네트워크를 더 잘 구축할 수 있다. 이는 비록 불공정하지만 국가가 잘 유지됐던 이유이고 정치가 종교를 존중한 이유이다.


정부는 공정하다는 외양을 널리 알리기 위해 홍보전문가를 채용한다. 홍보전문가는 자신이 알리고 싶은 것만 알리고 이를 믿도록 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다양한 기법으로 공포감, 애국심 같은 군중심리를 조작하 여 자발적 납세를 유도한다. 이에 비하여 고대 그리스와 로마가 더 좋은 조세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걸출한 경력을 가진 정치인을 국세청장으로 임명했다. 납세자들은 국세청장을 사랑하고 존경했으며 지도자의 도덕성이 납세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처칠, 링컨, 루스벨트 같은 사람이 국세청장으로 봉사하면서 정치 경력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 내에서도 불공정을 인내하는 예외적인 상황이 있다. 실제 게임참가자들이 불공정을 받아들이는 때는 첫째, 제안자가 나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경우이다. 시험 성적으로 제안자를 결정하면 사람들은 불공정한 제안을 쉽게 받아들인다. 과거 황제들은 신과 교감을 가지고 있거나 초인적인 능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황제가 천자(天子)라는 사실을 믿게 되면 백성들은 불공정을 인내한다. 


둘째, 제안에 대해 여러 명이 경쟁하는 경우이다. 경쟁 관계에서는 다른 사람에 앞서 천 원이라도 받아야 한다.


셋째,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컴퓨터를 통해 제안하는 경우이다. 컴퓨터 추첨도 결국 사람이 만든 프로그램에 의한 결과이지만 사람들은 컴퓨터 추첨의 공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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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 또는 법학자에게 세금은 단순해 보인다. 사람들이 세금을 납부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처벌과 세무조사 그리고 탈세가 어려운 세법을 만드는 것이다. 탈세를 제대로 단속하고 처벌한다면 탈세할 동기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집행하는 비용도 커진다. 사람의 탈세 본능은 지속해서 억누르기가 어렵다. 세법이 복잡하고 예외가 있다면 조세를 회피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만연된다. 


세금이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탈세를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세금이 과도하면 탈세의 인센티브가 증가하여 처벌을 강조하는 법으로 막기 어렵다. 국가의 조세 제도는 유능한 세무공무원의 강제와 처벌만으로는 작동할 수 없다.


미국 미네소타 주정부는 조세의 자진 납부와 관련하여 1995년 납세자를 대상으로 조사했다. 납세자의 법규준수도(Voluntary compliance)를 높이기 위해 주정부가 납세자에게 제공한 다음의 4가지 정보 중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정보가 무엇인가를 질문했다. 


(1) 조세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부담이다. 

(2) 조세를 납부하지 않으면 처벌된다. 

(3) 세무서에서 조세 납부가 쉽도록 도와준다. 

(4) 90% 이상의 사람이 납부했다. 


납세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정보는 놀랍게도 (4) “많은 사람이 세금을 납부했다.”였다. 다른 사람이 세금을 납부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세금을 납부하는 것은 사회적 준거(Social Proof)이지만 공정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이 세금을 납부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 사람들은 자진 납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도덕주의자인 미국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이 말했듯이 사람들은 납세의무를 ‘명예로운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정하지 않은 조세는 탈세를 정당화한다. 러시아에는 “모든 사람이 훔치면, 모두 도둑이 아니다.”라는 속담이 있다. 프랑스에도 “나라에서 가져가는 것은 훔치는 것이 아니다.”라는 비슷한 속담이 있다. J.P 모건은 1937년 탈세에 대하여 “의회는 세금을 어떻게 부과할지 알아야 한다. 의회가 세금을 어떻게 징수하는지 모른다면, 세금을 내는 것은 바보가 하는 짓이다.”라고 말했다.


미국 배우이자 칼럼니스트였던 로저스(Will Rogers)는 공정성을 강조하여 “사람들은 낮은 세금보다 공정한 세금을 원한다.” 했다. 사람들은 자기의 소득을 극대화하는 조세제도를 선호하기도 하지만 공정성도 추구한다. 사람들이 가진 공정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하며 일부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공정성에 더 많은 가중치를 두기도 한다.


국가와 조세는 신뢰 시스템이다. 신뢰는 개인보다 공동으로 기금을 모아서 함께 일하는 것이 좋고 정부의 역할과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다. 조세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아무리 누진적인 세금이라도 시민들이 납부할 것이며, 이러한 신뢰가 깨지면 탈세와 불법이 만연하게 된다. 신뢰가 사라지면 조세 집행에 물리적 강제만 남아 사회적으로 더 큰 비용이 필요하며 불신은 극에 달하게 된다. 최고의 조세 시스템은 처벌이 아니라 공정과 신뢰에 의하여 유지되는 시스템이다.



이 글은 "세금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가져온 내용입니다. 



참고 문헌

Home Deus (Yuval Noah Harari, Harvill Secker 2016), Beyond Sex and Violence, page 161- 167

Taxing the Rich (Kenneth Scheve & David Stasavage, Princeton University, 2016), Three ways to treat people as equals, Page 206-210, Treating Citizens as Equals, page 24, page 31

A Fine Mess (T.R. Reid, Penguin Press 2017), Taxes: what are they good for? page 28, page 44-45, 

Taxing the Rich (Kenneth Scheve & David Stasavage, Princeton University, 2016), Treating Citizens as Equals, page 33

Taxing the Rich (Kenneth Scheve & David Stasavage, Princeton University, 2016), Treating Citizens as Equals, page 37, Was There a postwar consensus? 188-189, Three ways to treat people as equals, Page 209

For Good and Evil (Charles Adams, First Madison Books Edition 2001), The Early Republic, page 82

Home Deus (Yuval Noah Harari, Harvill Secker 2016), Beyond Sex and Violence, page 161- 167

A Fine Mess (T.R. Reid, Penguin Press 2017), Taxes: what are they good for? page 28,

For Good and Evil (Charles Adams, First Madison Books Edition 2001), The Artful Dodger: Evasion and Avoidance, page 402

The Triumph of Injustice (Emmanuel Saez and Gabriel Zuckman, Norton & Company 2019), How Injustice Triumphs, page 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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