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규 Jul 21. 2024

데닛의 12가지 생각도구 12

심오로움이 뭘까?

과학자들은 종종 과학적 설명의 너머에 있는 어떤 것에 대한 심오로움(deepness)에 대하여 사유하기 시작하며, 이는 곧 그들이 과학(형이하학)의 영역에서 철학(형이상학)의 영역으로 관심을 돌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 역시 마지막 유고 이전의 <창의성의 기원>이란 책에서 현대의 위기를 창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현대의 과학적 이론과 전통적인 인문학의 사유를 새롭게 통합할 것을 제안한다.


과학적 증거들의 나열로만 인간이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뭔가 다른 영역, 철학이나 종교 혹은 예술의 영역에서 심오함을 찾아 헤맨다. 데닛의 친구인 컴퓨터학자 조지프 와이젠바움 역시 기술적인 문제에서 심오한 문제(철학적 문제)로 관심을 돌리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딸 미리엄이 이렇게 말했다. "와! 아빠 정말 심오로워 Dad just said a deeply!"


데닛은 심오로움은 중요하면서도 동시에 참인 것처럼-또한 심오한 것처럼-'보이지만' 단지 애매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인 명제라고 정의한다. 이 말은 두 가지의 용례로 사용되는 데, 첫 번째 어떻게 읽으면, 뻔한 거짓이지만 만일 사실이라면 경천동지 할 말이 되며, 두 번째 다르게 읽으면 참이지만 별것 아닌 말이 된다.


경솔한 사람은 두 번째 방식의 독해에서 진리의 빛을 포착하고 첫 번째 방식의 독해에서 이 말이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예를 들어 다음의 문장을 살펴보자. "사랑은 단어일 뿐이다." 우와 심오하다. 우와 어마어마하다. 심오하지 않은가? 이 말을 듣고 혹은 문자를 읽고 이런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첫 번째 독해에 따르면 이 명제는 뻔한 거짓이다.  

사랑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사랑은 정서일 수도 있고, 정서적 애착일 수도 있고, 인간관계일 수도 있고, 인간 정신이 도달하는 극상의 상태일 수도 있다-단어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철학자들이 무척 중요시하는 관습을 활용하면 두 번째 독해를 이끌어 낸다.


'사랑'은 단어일 뿐이다. 이 문장은 참이다. 그러나 이 문장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가를 아는 것은 쉽지 않다. 어쩌면 사랑이라는 말이 너무 애매해서 사물을 가리키는지, 관계를 가리키는지, 사건을 가리키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심오로움이 이렇게 쉽게 분석되지는 않는다. 리처드 도킨스는 데닛에게 최근 캔터베리 대주교 로언 윌리엄스의 정교한 심오로움을 알려주었다. 윌리엄스는 자신의 신앙을 이렇게 묘사했다. <고요의 진리를 기다리며 물음표의 존재 안에 앉아 숨 쉬는 것.> 데닛은 이 심오로움을 분석하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맡긴다고 하며, 철학적 사유의 기본틀이 되는 12가지 생각을 마친다.  



   

작가의 이전글 데닛의 12가지 생각도구 1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