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의 탄생과 업적 그리고 권력투쟁
한무제의 아버지는 전한의 6대 황제인 한 효경황제 유계(漢 孝景皇帝 劉啓: BC. 188-BC.141)로서 문제(文帝)의 장남이며 그의 어머니는 효문황후(孝文皇后)이다. 경제는 BC. 156년에 한나라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바로 이 해에 그의 열째 아들이 탄생하였고, 그의 이름은 체(彘)로 명명되었으나 아들이 많았던 경제는 그의 출생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왕뤼친은 당시 경제의 후궁은 3,000명이었는데, 민간 용어로 첩이라고 불리는 여인에게 태어난 류체(한무제)는 권력의 중심에서 10만 8,000리나 떨어져 있다고 비유한다. 과연 권력중심과 이렇게 먼 거리를 가졌던 그가 어떻게 권력투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중국인 학자 특유의 설명 방식으로 접근한다.
우선 그는 한무제가 중국역사에서 이룬 독창적인 여섯 가지의 업적을 나열한다. 1) 유가학설을 통한 중국의 사상과 문화를 통일시킴 2) 태학(太學: 교육기관) 설립으로 인재를 양성함 3) 중국의 국경을 크게 확장함 4) 서역과의 교통로를 염 5) 황제의 연호와 기원을 사용함 6) 죄기조(罪己詔: 황제가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는 조서)를 사용함
무제의 재위 기간도 다른 황제들에 비해 엄청나게 길었는데, 16세에 즉위하여 70세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무려 54년 동안이나 집권하였다. 그의 이런 재위 기록은 2,000년 후 청나라의 4대 황제 강희제(康熙帝: 1654-1772)가 나타날 때까지 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긍정과 부정으로 엇갈린다.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사람들은 그가 후세에 길이남을 업적을 남겼다고 하나, 반대편의 사람들은 그가 독재정치를 하고 선린외교(善隣外交) 대신에 마음대로 외국을 침략한 행적을 비판한다.
경제의 열네 아들 중에서도 무제는 평범한 비빈의 아들로 적자가 아니었다. 고대 중국의 황제 계승 제도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는데, 하나는 적자(嫡子: 정실이 낳은 아들)를 세우는 것과 장자(長子: 큰아들)를 세우는 것이었다. 이런 원칙에 따르면 열 번째 아들인 유체는 절대로 황제가 될 가능성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가 황제가 되는 배후에는 한고조 이후 왕후와 후궁들 사이에서 벌어진 엄청난 권력투쟁의 역사를 여러 증거를 들어 설명한다.
요점은 이러하다. 무제의 아버지 경제의 조모는 박희(薄姬)였던데, 원래 위나라왕의 비빈이었던 그녀는 유방의 전리품이 되어 보통의 여공 노릇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아내가 항우의 진영에 인질로 잡혀있던 까닭에 유방은 그녀의 미모에 반하여 동침을 하게 되었고, 그녀는 그날 유방에게 "소첩은 어제저녁에 푸른 용이 배를 감싸는 꿈을 꾸었는데, 오늘 성은을 입게 되었고" 말했다.
그녀는 단 한 번의 동침으로 유방의 여덟째 아들 중 넷째인 유항(劉恆)을 낳게 된다. 고황후라 불리었던 여후(呂姁)는 당의 측천무후, 청의 서태후와 함께 '중국의 3대 악녀'로 불릴 만큼 한고조가 죽은 후 권력을 장악하게는 데, 그녀는 박희를 제외한 유방의 비빈을 전부 궁중에 가두고. 셋이나 되는 황자를 왕으로 봉한 다음 살해했다.
박희의 아들 유항도 조왕에 임명하려 했으나 그는 변방을 지키겠다는 뜻을 표명하여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고후(高后) 8년(기원전 180년)에 제왕 유양이 주발, 진평, 유장 등과 함께 쿠데타에 성공을 한다. 그 후 공신들과 조정 대신은 누구를 황제로 옹립할지를 논의하다가 비교적 무능하게 보이는 유항 즉 문제를 황제로 등극시켰다.
결국 박희는 순조롭게 황태후가 되고 제국의 영광을 자신의 친정으로 끌어오기 위해 당시 태자인 경제에게 자신의 친정 손녀를 태자비로 맺어주게 한다. 그러나 박태후와 달리 후에 경제의 황후가 된 박황후는 슬하에 자식이 없게 되고, 유체의 어머니인 왕지(王娡)가 태자에게서 세 딸을 낳은 다음 다시 임신을 하게 되었는데, 그녀는 태자에게 "어제 꿈을 꾸었는데 태양이 제 배로 들어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왕뤼친은 유체가 태어난 해에 태자는 순조롭게 황제 즉 경제로 즉위하게 되었고, 소년 유체가 황태자의 자리로 가는데 세 여자가 등장하게 된다고 말하며, 마치 고대 중국의 이야기꾼들이 하듯이 '이제 본격적으로 구중궁궐의 권력투쟁이 시작되었다'라고 하면서 이 장을 마친다. 시대적 영웅의 탄생 조건에는 그의 뛰어난 능력뿐만 아니라 때(時)와 운(運) 그리고 사람(人)이 필요한 것은 어제나 오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