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시작되다

by 서월

나는 항상 시작이 어려운 사람이었다.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좋지 않을 가능성을 끝도 없이 생각했고, 그러다보면 겁이 나고 지쳐서 무언가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걱정과 불안, 그로 인해 무기력함이 가득한 마음이 절대 바뀌지 않을 나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장기간 치료를 지속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꼼꼼함을 넘어섰던 나의 강박감이 단지 병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과물을 열 번을 확인해도 안심을 하지 못했던 내가, 이제는 두 번 확인하는 것도 귀찮아서 못 견뎌한다는 사실이 때로 신기하다.


내가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것을 재미있어하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새로운 장소를 탐방하는 것, 새로운 활동을 시도하는 일에 때로는 조심스러운 때로는 저돌적인 흥미를 느낀다. 다만 무언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빠르게 끓어오르는 만큼 빠르게 식기 일쑤인 것이 문제이다. 내가 이렇게 꾸준함이 없는 사람이었다니 절망스럽기도 하다.


글쓰기 역시 그랬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만 앞서고 글쓰기 소재도 쓰는 방법도 몰라서 헤매다가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책방에서 글쓰기 모임을 꾸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다시금 타오르는, 하지만 언제 식을지 모를 열정을 느끼며 저도 하겠습니다!를 외치게 된 것이다.


그 첫 시작은 무르익는 가을의 토요일 오후, 책방에서 개최된 작은 북토크에서 비롯되었다. 독립출판을 하신 작가님이 오셔서 북토크가 열릴 예정이니 참석해보라는 책방지기님의 연락을 받은 것이다. 막상 약속 당일이 되면 으레 가기 싫어지는 귀차니즘이 올라오고는 하기에 발을 질질 끌며 책방으로 향했었다.

책방에 앉아 내다보는 바깥 풍경은 다채로운 빛깔의 나뭇잎과 그 사이를 비추는 햇살로 아름답게 빛나서 퍽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북토크 나의 오랜 낭만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50세를 맞이한 기념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자는 마음을 먹었다는 작가님은 얼떨결에 독립출판에 입문하셨다고 한다. 기르고 있는 고양이 형제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직접 삽화까지 그리시며 정성껏 책을 집필하셨는데, 독립출판을 하게 된 1년 남짓의 시간이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었다는 말이 인상깊었다. 무엇보다 무언가 도전하고 끝을 낸 적이 거의 없던 자신도 이렇게 글을 쓰고 출판까지 완성해냈으니 여러분도 하실 수 있다며 진솔하고 따뜻하게 용기를 북돋워 주셨다.


역시 언젠가 내 이름으로 책을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낭만은 항상 가지고 있었다. 다만 어떤 주제로 어떤 내용으로 글을 써내려가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고, 이렇게나 글쓰기 실력이 부족한데 무슨 책을 낼 수 있겠나 자괴감을 느꼈다.

하지만 똑같이 맨땅에 헤딩이었지만 즐겁게 그 과정을 완수해서 행복하다는 작가님의 말씀이 마음에 반향을 일으켰다. 나도 즐겁게 글을 써볼 수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희망 섞인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렇게 북토크가 끝난 뒤 함께 북토크에 참여했던 나와 동생을 포함한 다섯 명의 학생과 책방지기 선생님, 도합 여섯 명의 글쓰기 모임반이 결성되었다. 마침 한 달여간 시에서 지원하는 프로젝트성 사업이 있어 그 일환으로 좋은 기회가 마련된 것이었다. 상기된 얼굴로 집으로 돌아가던 길, 앞으로 어떤 주제를 가지고 어떤 글을 연습해갈 수 있을까, 언젠가 나도 작가가 될 수 있는 걸까? 이미 마음은 인쇄된 책들이 방안에 탑을 쌓기라도 한 것처럼 달려가고 있었다. 무언가 시작되는 순간 느껴지는 기분 좋은 두근거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