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뭐 하는 데야? 책방이라고 써있으니까 독립서점 아닐까? 유리창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며 닫힌 문 앞을 조금 서성이다 발걸음을 돌렸다. 그것이 책방과의 첫 만남이었다.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이제는 조금 멋쩍을 정도로 책을 읽는 양이 현저히 줄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책이 있는 공간을 사랑한다. 어릴 때는 주로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는데, 직장인이 된 후에는 지역의 크고 작은 서점들을 더 즐겨 찾게 되었다.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나면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물론 그렇게 사고서 진열만 해놓은 책이 숱하긴 하지만.
특히 독립서점을 좋아한다. 어차피 어딜 가든 파는 책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아무리 좋은 책도 내가 발견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특색있는 큐레이팅을 하는 독립서점을 방문하면, 유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만나지 못했던 좋은 책을 발견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래서 여행을 가도 꼭 그 지역의 독립서점을 검색해보고 들르곤 한다.
얼마 뒤 동생과 인근을 산책하다 다시 책방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책방지기로 보이는 분이 앉아서 책을 읽고 계셨다. 무슨 책이 있으려나, 동화책이 보이는데 아이들 책 위주로 파시나 생각하며 기웃기웃 건너다보는데 눈이 마주쳤다. 이윽고 환한 웃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조심스레 책을 구경하며 대화가 오가다 보니 이 공간에서 이런저런 수업도 진행하신다는 걸 알게 되었다. ‘AI 다중지능검사’라는 뭔가 흥미로워 보이는 검사도 실시하고 있다는 말씀을 들었다. 보통 초중등생들의 진로탐색에 많이 쓰이는 도구이지만 성인용 테스트도 있었다.
다중지능검사는 인간의 지능을 IQ와 같이 획일적으로 보는 것이 아닌, 8가지의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상호 보완적인 지능이 있다고 보는 다중지능이론에 기반한 검사이다. AI 기술이 접목되어 좀 더 체계적이고 정교하게 분석하는 방식으로 각자가 가진 강점지능과 약점지능을 알려주어, 강점지능은 더욱 살리고 약점지능은 보완해나가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진로에 고민이 많은 동생은 금세 흥미를 보이고 신청을 했다. 하지만 나는 어차피 내가 이제와서 직업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검사를 해서 무엇하나 싶은 마음이 앞섰다. 일단 동생의 테스트 결과를 보고 해볼지 말지 결정을 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읽기 시작한 어느 책에서 갑자기 다중지능이론을 소개하는 내용이 등장하여 전반적인 내용을 읽게 되었다. 이거 뭔가 검사를 한번 해보라는 하늘의 계시가 아닌가 뜬금없는 운명론적 흥미가 발동하였다. 그렇게 저도 한번 해보겠다며 뒤늦은 연락을 드렸다.
전송받은 검사지는 100문항으로 꽤 많은 문항수임에도 불구하고 몇 분 지나지 않아 금방 끝이 났다. 좀 더 고심하며 답변할 것을 그랬나, 검사 결과가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넌 모든 지능이 다 꽝이야 하는 결과가 나오면 어떡하나 걱정 반 기대 반의 마음을 안고 자세한 해설을 듣기 위해 다시 책방을 찾았다.
검사지를 받아들고 나란히 앉을 때만 해도 해가 내리쬐고 있었는데 끝났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있었다. 장장 6시간에 걸쳐 길고 긴 이야기의 시간을 가졌음에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고? 싶을 만큼 쏜살같이 흘러갔다.
검사결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하는 듯한 과정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능력과 미래가 고정된 것이 아니며, 나의 꾸준한 노력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려는 책방지기분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던 것 같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어쩐지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갔던 그날이 기억난다. 앞으로 가끔씩 책을 구경하러 들르거나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선명한 가을의 빛깔로 물들어가던 어느 오후, 나와 동생은 다시 책방의 널찍한 책상 앞에 나란히 자리잡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