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6.무너진 전국1등의 꿈,그리고 의대

고3때 찾아온 사춘기 -방황의 날들

by 은아

고등학교에 들어간 나는

더욱더 힘을 냈다.

첫 시험에 반에서 1등, 전교 2등을 했다.


동생들을 챙겨야 했고,

집에 와서 공부하는 게 좋은데

강제 야간자율학습이 있었다.

담임선생님께, 난 집에서 공부하는 좋다고

보내달라 요청했고,

1등을 한 덕에 전교에서 단 2명 만인

'야자 제외 학생'이 되었다.


엄마는 갑작스레 홀로 여섯 아이를 책임져야 했고,

아빠가 계실 때도 애들을 많이 나은 죄(?)로

보험영업을 하셨는데,

힘들고 험한 일을 해보신 적은 없었다.


사실, 엄마가 음악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으셔서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이, 전자오르겐을 잘 치셨다.

그런 이유로 그런 쪽의 일을 하시기도 하고,

아빠가 남기신 산재보험금으로

당시 유행하던 우표가게를 하셨다가 관두셨는데.

'나중 애들 대학등록금'이라 생각하고

돈이 되는 우표나 화폐 등으로 바꾸어 보관하셨다.


80년대.

대한민국은 온통 중산층이었다.

다들 열심히 살고,

다들 웬만큼 잘 산다고 생각하며 살던

그런 시대였다.

하지만 우리는 남들보다 힘들었다.

애들이 커갈수록

집은 점점 줄어들었고,

살림은 무너져갔다.


그 와중에 문제아였던

엄마의 배다른 동생, 즉 삼촌이 있었는데

엄마가 우표가게를 정리하며 모아둔 그 돈들,

돌아가신 아빠가 남겨놓은 마지막 재산을

식구들이 집을 비운 사이 모두 훔쳐갔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세상이 우리를 버린 것 같았다.

그때, 엄마와 언니, 나, 우리 모두 울면서

"그래도 이 일로 그 도둑놈과 앞으로 절대

안 엮이며 사는 게 더 나은 거야" 라며

애써 위로를 했다.

우린 너무 어리고 힘이 없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지만..


그러나 그런 일이 있고 나서도

우리 모두는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딸 다섯, 아들 하나.

그중 다섯째 녀석, 여자아이는

말 그대로 천재였다.

밥과 김치, 간혹 계란..그렇게 끼니를 때웠지만

우리는 절대 초라하게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교복자율화 시절이어서 외모가 곧 그 애의

집안형편을 다 알 수 있는 그런 시절이었다.

그래도 우리들은 늘 깨끗한 옷을 입었고,

도시락 반찬이 김치 하나여도

절대 주눅 들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2학년 내내

나는 늘 반에서 1등, 못해도 전교 3등 안에 들었다

그리고 믿었다.

조금만 더 하면 내가 전국 1등이 될 거라고.


그런데,

고3.

갑자기 모든 게 흔들렸다.

사춘기.

그게 뭐였는지도 몰랐는데

그 시절 나를 덮친 감정은 설명할 수 없었다.


의욕이 사라졌고,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라는 질문이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1학기부터 조금씩 떨어진 성적은

2학기가 되어 암기과목을 거의 포기할 정도로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전국 1등의 꿈은

그렇게 무너졌다.

재수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안 됐다.

우리 집엔 그럴 형편이 절대 안 되었다.


언니도 그랬다.

언니는 중학교 때 까지도 아주 뛰어난 성적이었지만

고1 때 아빠가 돌아가시고 방황하다

간호대를 갔다.

그리고 바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간호사가 되어 집안을 도왔고,

대출을 받을 수 있어 우리 모두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방황하던 고3을 보내고

학력고사를 보고 나서

간당간당 성적이 나왔다.

난 거의 포기한 상태였지만

엄마가 의대에 넣어보자 하셨다.


그렇게 나는,

전국 1등은 아니었으나

운이 좋게 의대에 합격했다.

내 안에서

한 세계가 무너진 줄 알았는데,

또 하나의 세계가 시작되고 있었다.


당시 우리는, 특히 나는

엄마와 우리 남매가 나의 모든 세상이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저 작은 방 한 칸에 옹기종기 모여 공부하다가 잠이 드는

내 가족들이, 내가 사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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