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부했던 이유 -복수
그 시절, 나는 책상 앞에
한 장의 종이를 붙여두었다.
“학력고사 전국 1등.”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학력고사 세대였다.
당시 학력고사를 보고 전국 1등을 하면
'전국 수석 x x x !!' 하고 신문에 나고
방송에도 나오고
유명세를 타게 되던 시절이었다.
난 전국 1등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책상위, 일기장, 여기저기에 그 말을 써놓고
보고 또 보았다.
볼 때마다 속으로 되뇌었다.
“내가 전국 1등이 될 거야.
신문에 나야 돼.
그래야 그 사람들이 볼 테니까.”
그 사람들.
우리 가족을 무너뜨렸던 사람들.
엄마를 울게 했고, 우리 남매들에게 아빠를 빼앗아간 그 원수들.
어린 내 가슴에
세상이 얼마나 불공정한지를 새겨놓았던 어른들.
나는 그 어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아빠 묘지앞에서 싸우던 어른들,
당신들이 틀렸다는 걸.
우리는 무너지지 않았고,
나는 끝까지 살아남아, 최고가 되었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
그래서 내 공부의 뿌리는
사랑이 아니었다.
분노였고, 복수였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책상 앞에 적힌
그 쪽지를 보고,
이를 악물었다.
다른 애들이 음악을 듣고 친구들과 놀면서
꿈을 이야기할 때
나는 신문 1면에 나가는 상상을 했다.
“전국 수석, 김은아!"
신문 가판대 앞에 서서
그들이 나를, 우리 가족을 기억해내길 바랐다.
그 짜릿한 상상은 나를 책상으로 이끌었고
더욱 열심히 공부하게 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우리는 아빠의 친척들과 단절했다.
아빠 산소에 다녀온 그날을 마지막으로
단 한 번도,
단 한 명도,
우리 가족은 그들과 다시 얼굴을 맞댄 적이 없다.
그건 선택이 아니라
자존심이었다.
그 시절, 나는 그렇게
종이 한 장 앞에서,
세상을 향해 조용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