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4.열네 살의 밤, 연필로 쓰는 복수

분노의 일기장, 나는 그 안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by 은아

나는 세상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정확히 말하면, 어른들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그 아들이라고 갑자기 나타난 사람도,

그를 앞세워 엄마를 힘들게 한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도.

나는 그들을 단순히 미워한 게 아니었다.


그들이 우리 아빠를 죽였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우리 식구를 산산조각 냈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복수심이 솟아올랐다.


그 복수는 칼이나 주먹이 아니었다.

나는 공부로 복수하기로 했다.

그것밖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우리 남매가 이 고통 속에서도

아주아주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잘 되는 것, 유명해지는 것,

신문 1면에 나올 만큼 훌륭해지는 것,

그게 나의 복수였다.


그때 나는 중학교 2학년, 반장이었다.

성격도 쾌활한 편이고, 피아노도 잘 치는 나는

늘 친구가 많았다.

하지만 아빠가 돌아가신 후,

나는 '아빠 없는 애'가 되었다.


그 시절은 지금과 달랐다.

누가 이혼했대, 누가 엄마가 없대...

아이들이 수군거렸고, 가족이 없는 건

흠처럼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나는 분명히 똑같은 나였는데,

갑자기 나를 보는 시선이 바뀐 듯싶었다.

아니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더 이를 악물었다.

나는 절대 세상에 지지 않을 거야.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

그때부터 나는 매일 밤, 일기를 썼다.

그건 내 속을 뚫고 나오는 피 같은 말들이었다.

원망, 분노, 그리고 다짐.

아빠가 없는 세상에,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글을 썼다.

그리고 이 세상에 보여주기 위해 공부했다.


그 시절, 우리 반에는 일기 숙제가 있었다.

매일 일기를 써서 제출해야 했다.

담임 선생님은 여자 음악 선생님이셨는데,

“글을 써야 문필력이 는다”는 말과 함께

매일매일 한 줄이라도 쓰라고 하셨다.


아이들은 대부분 대충 방학일기처럼 써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아니었다.

나는 매일 밤마다 책상 앞에 앉아

한 시간씩 울면서 일기를 썼다.


세상에 대한 원망,

어른들에 대한 분노,

엄마와 내 동생들을 지켜야 한다는 다짐.

“나는 반드시 잘 될 거야.

우리 가족, 내가 지켜낼 거야.”

그렇게 쓴 일기장은 때로는 몇 페이지씩 이어졌다.


그 일기를 아침에 걷어서

교무실에 제출해야 했기에

나는 항상 첫 페이지 위에 이렇게 적었다.

“선생님, 저 오늘도 일기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니 제 일기를 절대 보지 마세요.

부탁드립니다.”


남에게 읽히는 게 싫었다.

그 일기는 숙제가 아니라

내 마음속에 쌓인 눈물과 분노의 기록이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부르셨다.


“은아야,

너 일기 안 봤어.

진짜야.

안 봤지만… 그래도 난 안다.

네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얼마나 대단한 아이인지.”

그리고 선생님은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은아야,

너는 남들이 겪지 못한 큰 시련을 지금 겪고 있지만

어릴 때 이런 고통을 먼저 겪은 사람은

살면서 앞으로 그 어떤 일이 생겨도

다 이겨낼 수 있어!

넌 모든 걸 해내고 크게 성공할 거야.

난 믿는다. 은아야."


그 말은 그저 위로가 아니었다.

그건 내 인생의 다음 장을 넘기게 해 준

허락 같은 말이었다.

나를 더욱 단단하게 일으켜 세워준 주문이었다.

그리고 그 말 한마디는

지금도 내 마음속 어딘가를 받쳐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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