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자리는 여기다

자리 배치표

by 지금

오늘은 등나무 향기가 흐르는 창가, 내일은 누군가의 다정한 발소리가 머무는 복도

어떤 날은 선생님의 숨결이 선명한 앞자리, 또 어느 날은 친구들의 고단함이 머무는 사물함 앞

오늘은 선영이 옆, 내일은 지은이와 함께… 그것이 아이들이 꿈꾸는 매일의 풍경이다.


그러나 이는 아이들의 소망일 뿐이다.

‘네 자리는 여기다’라는 명 앞에서 아이는 숨이 막히고 다리가 꺾인다.


그 자리에만 앉으라는 명은

‘그 자리’라는 좁은 감옥에 아이를 가두는 일이다.

그 자리에만 머물라는 명은

‘그 자리’라는 깊은 어둠 속으로 아이를 유배시키는 일이다.


아이에게 자리는 단순히 머무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타인과 연결되고 스스로를 키워가는 관계와 성장의 토대이기 때문이다.




자리 배치표


언제부턴가

교탁 위에 아이들의 이름이 박힌 자리 배치표가 붙기 시작했다.


왤까?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려는 사려 깊은 배려일까, 아니면

‘지정석’ 이탈을 방지하려는 효율적인 감시망일까


아이들은 묻는다.

왜 이 자리인지, 왜 이 자리여야 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하다.


가뜩이나 숨 가쁜 공간이다.

별별 이름의 평가에 과제에 교실은 언제나 위태하다.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는 교실이다.

그냥 둬도 쓰러질 듯 아슬하다.

거기에 자리까지 못질이다.


스무 평 남짓한 교실, 안 그래도 숨 가쁜 좁은 공간에‘지정석’이라는 팻말을 달아 놓는 것은 아이들을 더 좁은 심리적 감옥으로 밀어 넣는 일이다.


그냥 두면 안 되는 것일까. 자신이 앉고 싶은 곳에서,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마음껏 유영하듯 머물게 할 수는 없는 걸까.


아이들의 자유가 선생의 권위를 갉아먹는다는 낡은 관성이

단 한 올의 자유조차 허용치 않는다.


“지정된 자리에서, 지정된 태도로, 지정된 소리만, 지정된 방식대로 들어라.”


이 서슬 퍼런 명령 아래 아이들의 자유는 설 자리를 잃는다. 자유가 거세된 만큼 선생의 권위는 하늘 높이 치솟겠지만, 우리는 보아야 한다.


그 권위의 실체는 아이들의 억눌린 눈물과 마른 한숨으로 쌓아 올린 위태로운 바벨탑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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