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끼리 부부가 되다.
늦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나는 뜨거운 몸뚱이를 식히기 위해 몸뚱이를 거실 바닥에 굴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투루로 투루로' 전화가 볼맨 소리를 냈습니다.
친구 녀석의 다급한 호출로 불려 나간 그곳엔 낯선 여인이 있었습니다.
흔들리는 눈동자를 의식했는지 함께 있던 친구의 여자친구가 자신의 후배라며 인사를 권했습니다.
그렇게 그녀를 만났습니다.
'그런 사람'끼리 부부가 되다.
“‘그런 사람’과 결혼하면, 평생 후회 할 거다.”
아내를 처음 본 주변 분들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과 결혼하면, 땅을 칠 날이 올 거다.”
저를 처음 본 처가 식구들 또한 부정적이었습니다.
양가는 서로의 외모를 평했고, 직업을 트집 잡고, 벌이를 꼬투리 잡고, 온갖 감을 동원해 풀이한 성격을 문제 삼았습니다.
양가는 ‘다시 생각해 볼 것’을 종용했습니다.
“그래 니 인생 네가 알아서 해라.”
그러다 어느 날 양가는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주위의 축복 대신 염려와 걱정을 한 아름 안은 채‘그런 사람’끼리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아내와 남편이라는 이름표를 단지 지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숱한 비바람과 눈보라가 지났습니다. 짧지 않은 세월, 서로는 서로에게 어른들이 우려한 ‘그런 사람’이 되어 땅을 치고 후회하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습니다. 이렇게 삶에 공을 들이는 것은‘그런 사람’을 들먹이며 ‘다시 생각’을 종용하셨던 양가 어른의 염려 덕택입니다.
양가 어른들의 염려는 서로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삶 구석구석에서 순간순간 솟구칠 때마다 그것 때문에 흉해지는 가정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방어제였음을 걱정거리 자식을 두고 나서야 조금씩 알아갑니다.
어른이 어른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